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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16. 그 많던 항아리는 어디 갔을까

by 제이오름
KakaoTalk_20230920_233929919.jpg 제이오름이 그린 수채화

어머니의 항아리 이야기는 콩 심기에서 비롯된다. 그 넓은 밭에 메주콩 농사를 지으셨던 어머니는 콩잎이 무성해지는 여름날, 밭에 김을 매러 가자고 나를 부르셨다. 그 부르심이 좋을리 없었다. 안그래도 더운데, 콩 잎사귀들로 덮인 곳은 더위를 가둬놓은 듯 찜통 같았다. 콩밭의 잡초를 뽑는 일이 이렇게나 힘드니, 아무리 부모님이 콩을 풍성하게 수확해도 어린 아이에게는 기쁠 일이 아니었다.


콩을 수확하는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항아리는 필수이다. 시장에서 사서 가져오시기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상인을 통해 구입하기도 하셨다. 수돗가 근처 볕 좋은 곳 장독대에 항아리들이 꽤 많았다. 그렇다고 어떤 종가집에 즐비한 항아리처럼 많은 것은 아니었고,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담아놓고 1년내내 먹기에 충분한 양의 항아리들이었다. 어릴 때는 몰랐었다. 그 항아리들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찰스 램처럼 도자기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찰스 램은 <굴뚝청소부 예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오래된 도자기에 대해 거의 여성적이라 할 정도의 애착을 가지고 있다. 큰 저택을 구경하러 갈 때에도 꼭 도자기를 보관하는 진열장부터 찾아간 후에야 화랑을 찾는다. 나는 이 취향의 순위를 두고 뭐라 변명할 수 없다. 기껏해야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기 취미가 있으며 그 내력이 너무 오래되어 후천적으로 길러진 취미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어른들에게 이끌려 처음으로 가보았던 연극과 첫 전람회에 대해 기억할 수 있지만, 언제부터 도자 항아리나 쟁반 따위가 내 상상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모른다. (122)


스페인의 바로크 작가 Zurbarán이 그린 도자기 그림을 한번 보자.

Still-Life-With-Pottery-Jars-c.-1650-by-Francisco-De-Zurbaran.jpg Still Life With Pottery Jars (c. 1650) by Francisco De Zurbaran

단순한 일상의 물건들을 그린 이 그림에서 고요함, 적막감, 평안함이 느껴진다. 도자기 몇 점을 보여주는 이 그림, 누가 사용하는 물건들일까, 언제 누구에게서 구입한 것일까 등등의 상상을 하게 된다. 다른 정물 그림들보다도 도자기는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왜 그럴까.


main-image.jfif Still Life with Jar, Cup, and Apples by Paul Cézanne


세잔이 그린 정물화를 한번 보자. 사과 옆에 도자기들이 있는 그림은 단순히 사과 그림만 그린 정물보다 더 정감있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그림에 오버랩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에게 항아리는 어머니이며, 온기 그 자체이다. 내 어머니는 밭에 콩을 심어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그셨다. 대량은 아니지만 우리 식구 먹을 분량만큼은 꼭 만드셨다. 가끔씩 어머니는 흰 천으로 항아리 겉면을 닦아주시곤 했는데, 그럴때면 항아리는 마치 유리처럼 반짝반짝거렸다. 빛이 좋은 날은 더욱 반짝거린다. 항아리들이 즐비해 있는 장독대는 숨바꼭질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놀이에 열중한 나머지 어머니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항아리 하나를 깨뜨린 적도 있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면, 김소진의 단편소설 <눈사람 속의 항아리>가 떠오른다. 주인공 '나'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재개발 이야기가 오고가는 미아리 셋집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나'는 눈 쌓인 마당을 지나 변소에 갔다 오는데, 눈 밑에 숨어 있는 빠루을 밟아서 짠지 단지에 금이 가게 된다. 너무 당황한 '나'는 눈사람을 만들어 항아리를 숨기기로 한다. 혼날까봐 무서워 반나절 가출했다가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고, 이에 '나'는 혼돈스럽고, 서럽고 불안해서 울고 만다. '나'는 창이 형을 만나고 돌아가던 길에 재개발 폐허가 된 어느 집의 깨진 장독에 똥을 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산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눈사람 속의 항아리>의 '나'는 항아리를 깨고 두려움에 집을 잠시 나가 있었지만, 어릴적 나는 항아리를 깨고서 그냥 부모님께 이실직고했다. 혼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수는 금새 잊을 수 있었다.


늦가을, 오후 햇살을 오롯이 받는 항아리 등에 기대어 한참 동안 눈감고 있어본 적도 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고, 엄마의 손길을 수백번 받았을 항아리의 질감이 전해져왔다. 생각해보니, 말없이 주는 따스함, 그것은 위로였다. 부엌에서 장독대까지 이어진 그 짧은 길에 눈이 쌓여도 어머니는 변함없이 간장, 된장을 뜨러 갔었고,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은 장독대 뚜껑이 잘 닫혔는지 몇번이다 확인해보곤 하셨다. 나는 운동화를 빨고나면 꼭 항아리에 기대어 운동화를 세워놓았다. 햇빛이야 어느 장소에서건 고루게 비쳐주지만, 장독대야말로 왠지 햇살을 더 많이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선이나 고사리 말릴 때도 어머니는 가끔씩 장독대 뚜껑에 널어 놓으셨다.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이 묻어 있었으니, 장독대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은 어머니의 마음과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 삶의 위로가 있었다. 위로는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면서 겪었던 냉혹함의 경험들은 항아리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알랭드 보통도 같은 마음이었지 않을까.


만일 세상이 좀더 따뜻한 곳이라면, 우리는 예쁜 예술작품에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을테고, 그런 작품이 그리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술적 경험의 가장 이상한 특징 중 하나는 가끔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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