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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Apr 07. 2020

잊었던 본래의 나를 찾아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윌터 미티, 그가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것

16년 째, 라이프 매거진에서 근무하고 있는 월터 미티. 그는 오늘도 건물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위치한 현상실로 출근한다. 짧게 깍아내린 머리, 정갈하게 입은 푸른 빛의 셔츠와 베이지색 자켓, 마치 사회의 단편적인 모범생처럼 보이는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바로 멍 때리기. 그는 특유의 멍 때리기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에 빠진다. 블럭버스터 영화를 넘나드는 상상 속 세상에서 그는 누구보다 멋지게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누구보다 멋지게 생으로 뛰어든다. 아무런 주저없이.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겁쟁이에 의사 표현조차 시원하게 하지 못한다. 늘 상상 속에서만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행하는 그의 실제 삶은 늘 '정지 상태'이다. 사회가 만들고 다듬은 정답에 맞춰 살아온 월터 미티, 어찌보면 '왜 저렇게 살아갈까' 한심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삶의 이유가 있었다. 

영화 초반까지는,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google


월터 미티는 어느 날 우연히 이삿짐을 싸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물건을 만나게 된다.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소년. 배낭을 하나 메고 세계를 여행하려고 했던 그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월터 미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파존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한 소년의 희생. 월터 미티의 삶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역할까지 떠안으며 '희생'을 강요 받은 작은 소년의 모습이 어려있다. 


그저 유치한 판타지 영화인줄만 알았던 이 영화가 지금, 나에게 이렇게나 큰 여운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터 미티는 자의 반 타의 반, 조금씩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되지만 결국 그가 이 영화에서 그가 한 것은 단 한 가지다. 자신의 본래 모습, 즉 근본으로의 회귀이다. 


그는 마지막 인화 작업이 될 필름 한 장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 속에서 오래 전 선수급으로 타던 스케이트보드를 다시 만나고 광활한 자연을 만나며 점점 어릴 적 모험을 좋아하고 주저없이 살아가던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멍 때리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만 해오던 것들을 실제로 '하고싶은 만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주저없이. 


그러한 변화 속에서 그는 날 것의 월터 미티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사회적 희생을 강요받기 이전의 월터 미터의 모습 말이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마지막 장면, 삶의 정수란 무엇인가 ⓒgoogle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음의 시기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다. 아직 어려서, 잘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과거의 시간들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쩔 수 없이 억압 당하고 억눌렸던 나의 모습이 이제는 마치 진짜 나의 모습인냥 적응되어 버린다. 억눌린 현재의 나, 이제는 그 모습을 더욱 편안하게 느끼는 스스로가 원망스럽지만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하고 성공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욱 본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기껏 적응해온 현재를 벗어나면 무엇을 만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쩔 수 없음의 시기를 지나 본래 나의 모습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스스로 변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이러한 변화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변화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영화는 다양한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THE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LIFE(인생)의 목적이다.


기꺼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라고, 생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으라고, 상상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실제 몸으로 행하라고. 그저 평범해보였던 월터 미티가 ‘삶의 정수’ 한 장을 찾기 위해 미지의 두려움을 극복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몸도 마음도 눈도! ⓒgoogle




채자영

스토리디렉팅그룹 필로스토리 대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스토리 덕후'입니다. 8년 째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시지화하여 전달하는 국문학도 기획자이자, 못생기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쾌락주의자예요.





왓챠플레이(WATCHAPLAY) 공식 브런치 코너 '취향공복엔 왓챠 브런치'에 기고한 칼럼의 원문 글입니다. 왓챠플레이팀에서 편집한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Jan 10. 2020

글 | 채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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