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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여도 필요한 나만의 시간

허약체질이지만 아이만 키우고 싶지는 않아

by 다우

아이를 낳고 필라테스를 하며 체력이 어느 정도 길러지니 내 안에 늘 꿈틀대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나조차도 잊고 있었지만 살만하니 떠오른 못 말리는 나의 본능은 바로 '책 읽고 글쓰기'였다.


그날따라 우연하게도 한 글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한 때 열심히 개인 기록장으로 쓰던 내 블로그는 방치 중이었다. 열심히 활동하는 것도 아닌 터라 이웃도 별로 없는 블로그였다. 그런데 언제 이웃으로 추가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한 분이 경제책 서평을 쓴 것을 보았다. 아이 육아를 하며 경력이 단절된 자신의 상황을 <육아도 경력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웹툰으로 남기고 있는 동시에, 경제책을 읽고 후기를 글로 남기는 분이었다.


'아니..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엄마 나름의 공부를 이어가고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가 있다니!' 띠용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글을 읽은 날 마침, 그분이 하고 있는 경제책 읽기 모임이 새로운 기수를 모집 중이었다. 한 주 동안 자기가 목표한 책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감상평을 남기고 그 감상평을 댓글로 공유하는 모임으로, 모임 이름부터가 운명적이었다. ‘엄마발전소’였다. 아마 좀 더 전문적인 이름의 모임이었다면 신청하지 못했겠지만 엄마들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이라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책이라니. 처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부터가 난관이었다. 다른 분들의 글도 살펴봤지만 초심자인 내가 읽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마침 경제적 자유에 진심인 친구의 남편에게 건너 건너 물어서 초심자에게 좋은 책을 추천받았다. 첫 책인 <부의 인문학>을 읽고 처음으로 서평을 남겼다. 감상평을 남기기 위해 좀 더 어떤 내용을 남겨볼지 집중하면서 읽게 되었다. 그다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블로그라 편안한 마음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안 읽으면 흥이 안 나는데, 모임을 하는 덕분에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생기니 그 재미에 꾸준히 글을 읽고 남기게 되었다. 책 읽고, 글쓰기에서도 ‘함께’의 힘을 느꼈다.


아이만 키우면서 그 자체의 즐거움에 몰입하면 최상이었겠지만 나란 인간은 그런 구조로 생겨 먹지를 못했다. 동생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가서도 항상 자기만의 개인 시간이 필요해서 동생에게 우리 각자의 시간을 갖자고 했을 때, 타국에서 당황해하던 동생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다.


결혼 전 녹이 동생과 단 둘이 식사한 적이 있었다. 녹이 동생에게 나에 대한 조언을 해주라고 했을 때 동생의 한마디는 “언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였다. 이렇듯 개인적인 시간이 있어야지만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극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여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그게 바로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만의 시간을 지속하기 위해서 또다시 함께의 힘이 필요해서 책 모임을 신청한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처음에 나를 이 온라인 글쓰기 세계로 이끌었던 웹툰 작가님은 알고 보니 내 대학교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나와 동갑이었다.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첫 아이를 낳고 막막한 그 심정을 그당시에는 그 누구보다 가깝게 이해해 주는 귀한 인연이었다.


첫째가 15개월 쯤이었나. 한창 경제책 읽고 서평을 올리고, 엄마표 영어를 실천한 것을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아것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렸다. 매일 열정적으로 글을 올려대니, 웹툰 작가님이 대체 아이 키우면서 어떻게 글을 다 올리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주로 아이가 낮잠 자는 귀한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남겼다. 이 모임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하릴없이 온라인 세계를 엿보는 수용자 입장이었을 뿐이었던 내가 온라인 세상에 나의 글자취를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필라테스로는 내 몸을 살렸고, 글쓰기로는 내 마음을 살렸다. 오랜만에 내가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고, 둘째 태교는 자연스럽게 책 읽고 글쓰기가 되었다.


일기장이 아닌 블로그에 글을 남기니 보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사회와 맞닿아 있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육아휴직을 한 지 1년이 넘어가니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이 필요했는데, 내 글이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라는 무의 형태에서 글이라는 유의 형태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는 충분히 생산적이었다.


소소하게 글을 남기며 어찌나 자랑스러웠는지 글을 쓰고 나면 녹에게 내 글을 읽어보라며(경제책 읽는 대신 내 글이라도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 한 스푼 포함) 자랑하곤 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블로그에 경제책을 읽고 감상평을 글을 꾸준히 남기다 보니 의외의 보상이 있었다. 나를 지속적으로 응원해 주는 이웃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도 차마 말 못 하는 지난한 육아의 순간을 섞어 글을 올렸다. 이를 애정을 갖고 꾸준히 바라봐주는 존재가 생겼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처음보다 조금씩 늘어가고 소통하는 이웃이 늘어가니 육아를 혼자 해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이를 먼저 키운 선배들의 사소한 한 마디가 크게 와닿았다. 나에 대한 너무 큰 관심은 싫고, 그렇다고 사회에서 완전히 잊히는 것은 더 싫은 아이 키우는 엄마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온라인에서 쓴 글이 나의 현실 이웃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부끄럽지만 내 블로그를 가족과 친구, 심지어 마음이 맞은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도 알려주기도 했다. 대단할 것 없는 사소한 일상의 기록이지만 내 기록을 보며 저마다 자신만의 기록을 이어갔다. 나는 네이버가 공식적으로 정해주는 인플루언서가 아니지만, 인플루언서가 된 듯한 그 짜릿한 기분을 맛봤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늘 함께하는 데도 외로운 기분이 든다면 나처럼 굳이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꾸준히 남겨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작은 모임이라도 들어가는 용기를 내어 보기를.


온라인이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소속감'이 나에게 그랬듯이, 멈췄다 썼다 하는 그 글 속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키우고 싶은 엄마를, 아니 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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