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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운동이 산전 운동이 되다

저질 체력인 엄마지만 아이만 키우고 싶지는 않아

by 다우

#산후운동이 산전 운동이 되다


첫 아이를 낳고 필라테스를 하며 체력을 되찾고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갔다. 왜 그렇게까지 퍼진 몸을 두려워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출산 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 안도하며 살아가던 나날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마침 요가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요가하고 난 후 집에 돌아오면 참을 수 없이 잠이 쏟아졌다. 요가가 원래 이렇게 힘든 운동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임신 초기 증상이었다. 첫째 모유수유 중이라 생리가 안 나오는 때라 임신 10주가 되어서야 둘째가 찾아온 것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코로나가 한창이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까지 맞은 직후였다. 백신을 맞고 필요 이상으로 몸이 으슬으슬했다. 첫째 임신했을 때 그 느낌과 비슷했다. 첫째 때는 감기약을 먹고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둘째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녹은 임신일 리 없다고 했지만 엄마의 촉은 참 무섭도록 정확하다. 임신이 맞았다.


첫째가 겨우 인생 10개월차 인데 이렇게 빨리 둘째가 찾아오다니. 원래 두 명을 낳으려고 계획은 했던 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육아 숙제를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문제는 역시 내 체력이지만 말이다.


임산부요가.jpg

둘째 임신을 알게 된 후, 산후 요가로 시작한 일반 요가를 산전 요가로 전환했다. 요가원에서는 금액대가 다른 수강권임에도 기꺼이 이해하고 변경해주었다. 살면서 그동안 못 느껴봤던 조건 없는 친절을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렇게 경험하며 아직은 사회가 따뜻함을 느끼고 있다. 나 또한 이를 기억하고 베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꾸준히 잘 지켜야 타인에게도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풀 수 있을 듯 하다.


첫째가 있다 보니 뱃속의 둘째를 오롯이 생각하는 시간은 요가를 하는 순간 뿐이었다. 첫 째 때는 배가 점점 불러오는 모습을 매주 찍어 주수 사진으로 기록했지만, 둘째는 주수 사진을 따로 찍을 겨를이 없었다. 요가 끝나고 찍는 거울 인증사진이 자연스럽게 주수 사진이 되었다.



#나의 비빌 언덕은 어린이집


돌도 안 된 아이를 키우며 둘째를 가졌음에도 꾸준히 요가를 할 수 있게 해 준, 비빌 언덕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바로 '어린이집'이었다. 36개월 이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인 양 취급받을 때도 있고 아이를 이렇게 일찍 기관에 보내는 것에 스스로도 고민도 많았지만, 첫째 아이가 9개월이 되었을 때 단지 내 어린이집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는 그때부터 보내게 되었다.


내가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며도 늘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주변에 도움 하나 받지 않으면서 씩씩하게 아이 둘을 다 키워내고야 만 친정엄마에 비하면 이 어린아이 한 명도 돌보기 힘들어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사이에 쉬고 있는 나를 보며 마냥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를 구원해주려고 둘째가 이렇게나 일찍 찾아 온 걸까. 둘째 앵두가 생긴 이후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당당하게 쉬었다.


연두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부터 동생에게 연두를 맡기는 게 아니라 마음 편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1 대 1 필라테스를 갈 수 있었다. 필라테스 이용권이 끝나고 계속 이어서 하고 싶었지만 금액이 부담돼서 요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이용권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맡길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운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또한 마을의 도움임을, 아이 키우는 데 여러 손의 도움을 받아 키워야 엄마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기에 결국 아이도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음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그리고 엄마인 나 자신 스스로도 따뜻한 이해가 필요했다.


36개월 이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대역죄인이 되는 듯한 기분. 하지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숨통이 트였던 그 시간 덕분에 아이를 웃으면서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간들을 더 마음 편하게 여기며 때로는 끝이 없을 것같이 느껴지는 육아 터널을 함께 헤쳐나갈 도움의 손길이라 고맙게 여기며 즐기는 것을 택하리라.




#산전요가를 36주차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힘


어린이집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요가는 임신 16주차 무렵부터 산전 요가로 전환했고, 임신 36주차까지 지속했다. 처음에는 임신한 것도 모르고 임신 10주차까지 요가 동작을 다 따라 했지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차마 격한 동작을 할 수 없었다. 임신 12주차부터 할 수 있었던 임산부 요가였지만, 코로나 4단계로 한동안 연두를 가정보육 하다가 16주가 되어 재개하게 되었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이를 맡기고 운동을 하러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마냥 감사하며 열심히 다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아이를 맡기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금세 당연하게 여겨졌다. 둘째 임신 후기가 되며 몸이 무거워지면서 점점 운동을 하러 가기 귀찮아질 때도 있었다. ‘오늘은 좀 몸이 무거워서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가지 말까.’ 이런 유혹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날에도 임신 16주 차부터 시작해서 36주 차까지 요가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가계부 쓰기. 가계부를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쓰며 우리 집 지출 통제를 열심히 하던 차라 나름 거액을 지불한 요가권을 가계부를 쓰면서 되뇌다 보니 요가 출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성공일기 쓰기였다. 요가를 다녀오고 나면 꼬박꼬박 성공일기에 기록했다.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소통하는 이웃이 있었기에 그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 하기 힘든 날에도 요가만큼은 꼭 갔다.


아이 키우고 뱃속의 아이를 품고 일상생활만 하기에도 충분히 벅찬 나날들이었음에도 타고난 운동을 이어가며 타고난 허약체질을 보완하려 애썼다. 요가 덕분에 둘째를 오롯이 생각하며 태교할 순간들이 있었고, 임당 판정을 받고 힘들 때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줬다.


이렇듯 고마운 요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집의 도움이었고, 이를 지속하게 해준 힘은 함께 글쓰기의 힘, 이 모두는 답정너스럽지만 결국은 '함께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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