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 때야.”
첫째 연두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는 이 말이 어찌나 서운했던지. 임신해서 몸이 무거워서 힘들구만 지금 힘든 거는 힘든 게 아니라는 건가 싶었는데, 첫 아이를 낳아 키우며 이 말의 의미가 절절하게 이해가 됐다. 임산부에게 굳이 이 말이 필요한가 싶은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 말이다.
예민한 성향의 까칠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둘째를 임신하고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둘째가 나올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한 명도 이렇게 키우기 힘든데, 두 명은 어떻게 키우지?’ 생각에 앞으로의 나날이 두려웠다.
첫째를 낳고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며 하루 세끼를 악착같이 챙겨 먹으며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갔다. 아이 낳고 다 회복하려면 36개월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 산후 회복을 해야 할 출산 10개월 차에 둘째가 찾아오고 나니 내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첫째 때는 프리패스했던 임당 검사 재검을 받게 되었고 생각도 못했던 임당 확진을 받았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몸 관리에 진심이 되어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 임당이라니 충격적이었다. 당뇨가 있는 친정 아빠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첫째를 낳았을 때보다 내 나이가 2살이 더 먹은 이유도 있을 거고 결정적으로 첫째를 키우며 나날이 몸이 지쳐가고 있는 탓이었을 것이다.
임당 산모가 되고 가장 큰 난관은 매 끼니 후 손 끝을 침으로 찔러 피를 내서 혈당을 측정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주변에 임당인 지인들이 있었는데, 먹는 거랑 운동이 힘들겠거니 했지만 매 끼니 후, 혈당 측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 혈당측정기를 사용했을 때가 생생하다. 사용설명서를 읽고 손을 깨끗이 씻고 손가락을 알콜솜으로 한 번 더 닦았다. 한 20분 정도를 침을 찌를까 망설이다가 녹에게 전화를 했다. “무서우면 밥 먹고 측정하지 말아봐요. 어느 정도 아픈지 내가 집에가서 한 번 해볼게요.” 일하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징징댔다. 이렇게 이해해주는 녹의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났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그냥 밥을 안 먹고 싶었다. 끼니가 돌아오는 게 이렇게 두렵다니. 목이 너무 아파서 밥을 넘기기 힘들었던 때보다 밥 먹는 게 더 괴로웠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여기에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저녁 먹기 한 시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고, 저녁을 먹고 한 시간이 지나서 혈당침으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봤다. 누군가 나를 미워해서 내 손가락을 콕 찌르고 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혈당체크를 하는데 대체 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느낌이 등장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어느 누군가는 고작 혈당침 놓는 것 가지고 왠 소란이냐 하겠지만, 어릴적부터 피를 보면 기절할 것 같은 그런 체질을 타고난 탓일 듯 하다.
침으로 찌른 게 아프긴 했지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매 끼니 혈당 수치가 높지 않게 조절하는 식사를 하고 식후 아무리 짧아도 제자리 걷기 운동이라도 하며 둘째 임신 후기를 보냈다.
임당 재검을 받던 순간과 임당 확정이 되던 순간 그리고 첫 혈당 측정을 하며 덜덜 떨렸던 심정 역시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기록했다. 평소 소통하던 블로그 이웃 뿐만 아니라 나를 블로그의 세계로 처음 이끈 고등학교 친구도 깜짝 놀라며 위로의 말을 남겨주었다. 엉엉 울면서 쓴 글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위로받던 순간 몸은 힘들어도 마음 만큼은 따뜻하게 위로가 됐다.
녹은 여전히 바빴고 하루 세끼를 먹고 혈당을 체크하는 일상은 계속되었다. 일하느라 애쓰고 퇴근해서도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주는 남편에게 매일 징징댈 수는 없었다. 꾸준히 내 임당 일기를 블로그에 기록했다. 나 말고도 비슷한 시기 임당으로 식단 조절하는 블로그 이웃들이 생겼다. 서로의 식단을 보며 서로 배우고 혈당 조절이 잘 되는 날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건넸다. 함께하는 분들이 생기니 임당 생활도 꽤나 할만해졌다.
이런 노력에도 혈당 조절이 잘 안되는 날은 당연히 생겼다. 그리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식단을 조절하며 먹는 것은 엄청난 괴로움이었다. 별 생각 없이 먹던 매 끼니가 이렇게 매 순간 시험대에 올라야했다. 어떤 날은 울면서 식단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식단 조절에 성공하고 혈당이 수치 인을 하면 성공 일기를 작성했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혈당 수치 인.. 임당 산모에게는 매일이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