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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우 Nov 22. 2024

백일 아이를 두고 필라테스에 가는 법

허약체질 엄마지만 아이만 키우고 싶지는 않아 

내가 첫 아이를 낳았던 2020년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아이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코로나베이비라고 불렸고 ‘쯧쯧. 코로나라 집에만 있어야 하니, 애 사회성은 어떻게 해.’라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어른들께 심심치 않게 들었다. 코로나 베이비를 가져서 안 좋은 점만 있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좋은 점도 있었다.


코로나로 경기가 안 좋아진 탓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곳은 운동 센터였다! 우연히 1대 1 필라테스인데 30회에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할인 이벤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임신 중이라 당장 제대로 운동을 할 수도 없었지만 "회원권은 지금 구매하고, 운동은 아이 낳고 할게요. 그래도 될까요?”라고 요구했다. 당장 운동을 못하면서 이벤트 가격으로 회원권을 사는 회원이 황당했을 법도 한데, 시기가 시기인터라 센터에서는 회원 한 명이 귀했을 테고, 나는 타고난 허약체질로 출산 후 골골을 이미 예약 중이기에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이때만 해도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체력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이 당시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자영업자의 폐업 소식들을 접하긴 했지만 내가 회원권을 구매한 센터에도 그런 위험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은 전혀 없었다. 그저 1대 1 필라테스 재활 운동을 미리 준비한 나 자신이 기특해 칭찬하는 마음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운동을 고민하는 순간이 왔다. 오로지 운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덜컥 회원권을 구매한 그 센터는 다행히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문제는 역시 내 몸이었다. 


자연분만하면 아이를 낳고 바로 운동을 할 수 있지만 나는 난산으로 제왕절개를 했기에 출산 후에 바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쯤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나보다 4개월 먼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아이 낳고 몸 상태가 어떤지 뻔질나게 물어봤다. 


친구는 제왕절개니까 6개월 이후에 운동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필라테스 센터에서는 출산 후 100일은 지나고 오라고 했다.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싶었지만 너무 빨리 운동해도 산후 회복에는 오히려 나쁘기에 100일 동안은 많이 자고 산후 보약을 지어먹으며 요양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출산 100일이 지나자마자 필라테스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필라테스 이용권을 사놓은 게 중요한 게 아녔다. 진짜 문제는 나는 이제 100일이 된 아이가 있는 몸이라는 것. 아이를 낳기 전처럼 내 의지만 있다고 해서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어야지만 운동을 하러 갈 수가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야근이 점점 늘고 있는 녹만 믿다가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운동하게 생겼다. 결국, 함께 사는 결혼도 안 한 동생에게 손을 벌렸다. 동생은 매주 월요일에 일을 쉬었기 때문에 동생이 쉬는 월요일과 녹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다른 요일까지 이렇게 주 2회 운동을 하기로 했다. 


내가 과연 결혼 전에 이렇게 어린아이를 돌보라고 하면 돌볼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면 두려워서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을 것 같다. 아니 놀러 나가고 싶은 그런 귀한 휴일에 어린 조카를 돌보는 게 좋을 리가 있겠나. 심지어 모유 수유 중이라 엄마 껌딱지인 그런 아가를 돌보는 일이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니 예상보다도 더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체력이 확 떨어짐을 느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사람의 몰골이라고 볼 수 없는 생기라곤 하나 없는 그런 모습이라 스스로를 보며 흠칫 놀랐기 때문에,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다. 




#최고의 운동 동기부여가 생기다 


결혼 전에 이런저런 운동을 하려고 애쓰던 당시 들었던 말 중 최고의 운동 동기부여는 “돈으로 의지를 산다.”였다. 비싼 돈으로 운동을 등록하면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이것보다 더 강력한 게 있었다. 바로 ‘아이를 두고 혼자 운동하러 갈 수 있다.’라는 사실 자체였다. 운동하러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다. 내 자유 의지로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게 불가능한 생활을 하다가 운동하러 가는 동안에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걷고, 움직이고,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었다. 운동하러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절대 빠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의 소중함과 매 순간 운동을 가기 위해 사활을 걸게 된 것, 이건 육아의 장점이라고 봐야겠다. 


동생에게 아이를 맡기기 전 모유 수유를 미리 하고 되도록 낮잠을 재우고 운동을 하러 갔다. 늘 아이의 상태가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해심 많은 내 동생은 자기 몸 챙기러 가는 언니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생이 아이를 봐주는 게 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약속이 생길 때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때는 녹이 귀한 반차를 내고 와서 아이를 봐주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을 하러 나갔다. 온 가족의 함께의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처절한 엄마의 운동이었다. 


애초에 목표했던 주 2회 운동은 막상 시작하니 엄청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주 1회로 변경했다. 자주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동작을 하다가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4개월이 지나 10번째 되던 날, 좀처럼 칭찬에 인색했던 강사님이 동작이 잘 된다며 동영상으로 내 모습을 찍어주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운동 시작한 지 6개월 차에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몸이 퍼진 상태로 평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있었는데, 몸무게가 돌아왔던 순간 아이를 돌보며 서툰 내 모습을 만나며 내가 이것밖에 못하는 사람이었나 자책하던 가운데 떨어졌던 자존감의 조각이 살짝은 채워졌다. 필라테스를 하며 근력 운동도 병행하다 보니 체력도 꽤 붙어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마냥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 예민하고 까칠한 아이를 동생이 돌봐준 덕분에 운동할 수 있어서 고맙고 미안한 시간이었다. 나만 건강해지는 게 미안해서 내 필라테스 운동이 끝나고 난 후에 그동안 아이를 봐줘서 고마운 동생에게 필라테스 1대 1 이용권을 평소 아껴 쓰는 언니 탓에 눈치 봤을 동생에게 큰맘 먹고 선물로 끊어주었다. 덕분에 동생도 일만 하다가 오랜만에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함께 살기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가능한 운동으로 선순환되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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