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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윤 박사 Sep 30. 2020

한눈에 알아보는 차(茶 : Tea)의 역사

                                                                                                        고재윤 박사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고황 명예교수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



전 세계적으로 마을 곳곳마다 위치하고 있던 커피전문점의 열풍이 식어가고 있다. 커피 대신 차(茶 : Tea)를 찾는 인구가 늘면서 차가 웰빙과 힐링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차는 인류 역사상 자연식품 중에서 최고의 음료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일상생활 속 차문화로 발전하게 됐다.     


매력적인 ‘차(茶)’ 이야기  

차는 단순한 음료의 차원을 넘어 여러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차의 뜻을 찾아보면 茶는 20+88의 숫자로 되어 있어 108의 의미이며 불교에서의 백팔번뇌를 해소하는 음료로 통한다. 또한 나이 108세까지 살 수 있는 장수 음료라는 것과 깊은 산속에 나무와 숲 사이에 사람이 살아가는 힐링과 치유의 의도를 담고 있다.   

  


“와인은 서양문화를 대변하는 기독교 문화이며 

커피는 중동문화를 이끄는 이슬람교 문화이고, 

차는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불교문화이다.”     


차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음료로 무병장수하는 식품으로 인식됐다. 인간이 차를 건강을 위해 이용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라고 한다. 이 세월 동안 차는 약용으로부터 식용, 기호음료로 바뀌면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야생의 차나무에서 시작된 ‘차(茶)’ 

야생의 차나무는 운남(雲南)·광서(廣西)에서 해남도(海南島)까지 분포되었다. 하지만 인간이 음료로 널리 마시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고(苦 : 씀바귀 고 혹은 쓴고)’라고 불렸으나 한(漢)나라 이후 사천성(四川省)에서 양쯔강 유역과 강남으로 차 마시는 습관이 전파되면서 당대(唐代)에 이르러 ‘차(茶)’라는 문자로 바뀌었다. 지금도 중국 운남성 경홍의 맹송(勐宋)과 맹해(勐海)의 노만아(老曼娥)지역에 야생 고차(苦茶)가 생산된다.    


중국 고대 설화론 ‘차(茶)’의 역사 

삼황(三皇)시대 위생 관념이 철저했던 중의학의 아버지 신농(神農) 황제가 항상 끓인 물만 마시는 중에 차를 발견했다.     


- 기원전 2737년에 신농 황제가 나무 밑에서 잠시 쉬면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던 중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 몇 개가 끓고 있던 주전자 물에 빠졌다. 황제는 나뭇잎을 꺼내지 말고 계속 물을 끓이도록 했는데, 물에서 향기가 나고 물을 마셔보니 물맛뿐만 아니라 쓴맛이 난 후에 바로 단맛이 나면서 기력을 북돋워 주는 것을 느꼈다. 주전자에 떨어진 나뭇잎이 바로 야생 차나무 잎으로 그 찻잎을 처음 마신 사람이 신농 황제였다. 

중국 역사를 거슬어 올라 가보면 기원전 3세기에 차를 약용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다. 차를 표기한 한문은 도(荼 씀바귀 도)로 표기했다. 도(荼)는 苦(씀바귀 고)의 같은 의미로 쓴맛이 강한 음료였다. 그리고 차(茶)라고 표기한 규정은 전한왕조 시대인 기원전 206년과 220년 사이라고 추정한다.     


- 차를 표기하는 옛 글자에 가(檟), 설(蔎), 명(茗), 천(荈), 도(荼)가 있는데 각 지방의 소수민족들이 소리를 내었던 말에서 유래됐다. 이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책에 차를 오래 마시면 기력을 북돋워 주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농이 하루 100가지 초목을 맛보았는데 하루는 72가지 초목을 맛보다 독이 든 초목 먹고 실신했다부하들이 온갖 초목을 사용해 해독제를 만들었으나 회복되지 않았는데 도()를 마시고 해독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 따르면 기원전 1066년 서주(西周)의 파촉(巴蜀) 지방에서 차를 재배하였고, 춘추전국시대(BC 772~221년)에 한족과 소수민족에 의해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 삼국지의 내용 중에도 효성이 지극한 유비가 어머니에게 차를 사드리기 위해 2년간 자리와 발을 짜서 꼬박 모았지만, 차 1통을 사기 어려웠다는 내용이 있듯이 차는 매우 귀한 물건으로 주로 황족이나 귀족의 전유물로 이용되었다. 중국의 다성인 당나라 시대 시인 육우가 AD 780년에 ‘다경(茶經)’저술하여 중국차를 세계적인 차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중국의 당대 이전의 차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불교를 숭상하던 당나라(618~906년)는 태평 시대를 맞이하면서 불교문화의 상징인 차를 성장 발전시켜 황금기를 만들었다. 당나라 시대의 차는 약용이 아닌 즐거움과 번뇌를 없애주는 음료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도 차를 준비하고 접대하는 예절 문화까지 발전하였고, 차(茶)의 용어도 점차 장착됐다.     


 당나라 시대 : 찻잎을 곱게 맷돌에 갈아 다완에 넣고 끓은 물을 붓고 차선으로 저어 눈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 즉 말차가 유행했다.     


 송나라 시대 : 어린 차 순을 가려서 찐 다음 수분과 진액을 짜내고 곱게 갈아서 증압 성형하여 벽돌 모양, 떡 모양 등으로 만든 ‘단차’가 유명했다.     


명나라 시대 :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단차의 공납을 금지하고, 녹차의 산차(散茶)를 애용하면서 찻잎 자체만을 우려내는 방식의 ‘포다법(泡茶法)’을 유행시켰다.     


그밖에도 재스민 꽃잎으로 만든 말리화차(茉梨花茶), 반발효의 오룡차(烏龍茶), 포종차(包種茶) 등 다양한 종류가 등장했다.    


유럽의 마음을 사로잡은 ‘차(茶)’ 

18세기 유럽은 동양의 신비로운 문화와 음식 그리고 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인도회사를 통해 차를 수입했다. 특히 상술이 밝은 중국인은 먼 유럽으로 유통하는 동안 차의 품질 유지를 위해 두 가지 형태의 차를 개발했는데 홍차와 녹차에 꽃, 열매 등의 향을 가미한 가향차로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럽에서는 한때 녹차와 홍차가 서로 다른 나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녹차가 유럽으로 가는 긴 행로 때문에 구릿빛의 홍차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 유럽 차시장의 요구를 수용하여 홍차를 만들어 수출했다.”  
차마고도의 새로운 주인 보이차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역사는 당나라 시대부터 송나라 시대까지 주변의 이민족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특히 육식하고 말젖을 마시던 티베트 유목민에게 차는 생명을 연장해주는 식품으로 인식되면서 차와 말을 교환하는 무역은 명나라에도 계승됐다.  또한 청나라 시대 1729년 옹정 10년에 명나라 시대에는 아주 천한 차로 치부 받았던 보이차가 황실의 공차로 지정받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차로 거듭났고, 보이차는 녹차대신 차마고도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중국 전통 7대 차(백차, 황차, 청차, 녹차, 홍차, 흑차, 보이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차를가 생산되었고, 중국 차문화를 세계 소비자에게 홍보하면서 세계 160개 이상의 국가에서 30억 인구가 중국차를 마시게 되었다. 


짧게 보는 미국의 ‘차(茶)’ 역사 

1840년 영국과 청나라 간에 홍차로 인한 제1차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 생산되는 홍차가 중국 홍차를 대신하여 유럽으로 수출했다. 1773년 12월 16일 미국의 보스턴 시민들은 영국의 차 관세에 불만을 품고 영국에서 수입하는 차를 보스턴 항구의 바닷물에 던져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사건 발생으로 미국 독립을 가져왔으며,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불교문화와 함께 녹차 발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차를 재배하고 마신 기록이 있으며, 불교문화와 함께 녹차가 발전했다. 조선 시대의 3대 다인으로 다성(茶聖) 초의 의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대적 차문화는 1960년 이후에 시작되어 1970년 후반부터 본격적인 녹차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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