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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n 17. 2021

브로콜리 재배가 이렇게 쉬웠나?

와! 집에서 키운 브로콜리가 이렇게 크다고요?

내가 브로콜리를 처음 심었던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농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의욕에 넘쳐 남들이 심는 작물은 모두 따라 심었으니 브로콜리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는 비닐하우스가 없었으므로 거실에서 모종을 키웠는데, 햇빛이 부족한 탓인지 한 달이 지나도록 모종이 별로 자라지도 못했다. 결국 콩나물처럼 길쭉하게 자란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어야 했다.


브로콜리는 초기 생육이 불량했던 탓인지 수확기인 6월이 되어서까지 결구가 제대로 맺히지도 않았다. 거기에다 벌레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 결국 브로콜리를 한 포기도 수확하지 못하고 모두 뽑아버려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브로콜리는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은 심지 않기로 했다. 더구나 우리 식구들은 브로콜리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브로콜리는 연례행사처럼 어쩌다 한 번씩 식탁에 등장하곤 했으니 우리 식구가 정말로 싫어했던 건지 또는 먹을 기회가 없어서였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처음 심었던 브로콜리 (좌)와 올해 수확한 브로콜리 (우).


아무튼 그 당시는 초짜 농부였으니 그렇다 치고, 이제는 농사 경력이 제법 많이 쌓였으니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봄에 다시 브로콜리 모종을 만들었는데 (3월 2일), 예전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브로콜리 재배에 자신이 없었으니 모종을 시험 삼아 조금만 만들기로 했다. 행여 브로콜리를 잔뜩 심었다가 또다시 뽑아버린다면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니까. 그럴 바에는 망치더라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도록, 티 안 나게 조금만 심는 게 더 낫지 싶었다.


역시 모종을 키우는 데 비닐하우스와 거실은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모종 몇 포기를 키우기는 어려워도 모종들이 많아지면 서로 경쟁을 하듯 잘 자라는 것 같다. 브로콜리 모종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콜라비, 청경채, 상추, 비트들과 함께 무럭무럭 잘 자랐다. 모종을 만든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밭에 정식을 해도 될 만큼 자랐으므로, 브로콜리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었다 (4월 5일). 브로콜리는 가능하면 빨리 심고, 빨리 수확하고 끝내야지 어물거리다가는 벌레들에게 헌납하기 딱 좋은 작물이다.   

       

밭을 만들 때 퇴비와 굼벵이 분변토를 뿌려주었고, 과수원에 뿌려주고 남은 미량요소도 조금 뿌려주었다. 밭이랑에 두 줄로 브로콜리를 심었는데 재식거리는 줄 간격 45cm, 포기 간격 35cm이다. 그런데 비닐하우스에서 발아한 브로콜리 모종 수를 세어보니 14개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올해는 시험재배라지만 모종을 만들어도 너무 조금 만든 것 같다. 길이 10m짜리 밭이랑을 하나를 특별히 남겨두었는데, 브로콜리를 심는데 고작 2.5m를 사용했으니 남은 땅이 많아 옆에 청경채와 콜라비도 함께 심었다.  

  

처음에는 새끼손가락 만하던 모종이 (좌) 수확기가 되자 이렇게 커졌다 (우).


새끼손가락 크기의 모종을 심으며 과연 브로콜리가 열리기나 할지, 마지막까지도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벌레가 다 먹어치웠던 예전의 악몽이 기억이 나서, 브로콜리 몽우리가 맺히기 시작할 무렵에 1회 방제를 해 주었다. 과연 1회 방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가 없지만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모종을 심고 몇 차례 냉해도 찾아왔는데, 브로콜리는 원래 추위에 강한 작물이라고 하더니만 다행스럽게도 꿋꿋하게 버텨주었다. 


브로콜리가 아직 작았을 때 농업기술센터에서 얻어온 아미노산과 EM, 미생물 활성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자가 제조한 키토산 액비를 두 차례 뿌려주었다. 그 외에 따로 추비를 한 적은 없는데, 올해는 비가 자주 온 탓인지 그 정도 만으로도 잎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혹시 농사에 참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배과정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적었다). 


그 이후 브로콜리가 자라는 모습은 별로 기억에 없는데, 우리 집 유일한 소득원인 사과 과수원 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수원에서 적과 (적정량만 남기고 솎아내는 것)를 하고 도장지(세력이 왕성하여 지나치게 자란 가지)를 제거하느라 한동안 텃밭에는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텃밭을 지나가다 뭔가 큼직한 것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브로콜리였다. 

 

그동안 마트에서 사 오는 브로콜리는 보통 직경이 10cm 내외의 아담한 크기였는데 (가격도 한 개에 1500원이나 한다), 우리 집에서 수확한 브로콜리는 제일 큰 것은 직경이 20cm가 넘었다. 더구나 벌레 먹은 것도 하나도 없었고. 와!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브로콜리는 꽃봉오리를 먹는 채소라 꽃이 피면 꽝이라고 하므로 급하게 6월 6일 수확을 했다. 


올해 수확한 브로콜리는 대부분이 크다. 작은 것 몇 개는 아직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브로콜리가 재배하기 쉬운 작물이었나? 겨우 14포기 심어서 이렇게 많이 수확을 했으니 말이다. 아직 크기가 작은 브로콜리 몇 포개는 더 크라고 (좀 더 키워 더 많이 먹으려고) 수확하지 않고 남겨 놓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커다란 브로콜리 몇 개를 주위 분들께 나누어 드렸다. "와! 집에서 키운 브로콜리가 이렇게 커요? 장사하셔도 되겠네요!" 역시 기대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저녁 식사 때 브로콜리를 데쳐서 먹었는데 줄기까지도 연한 게 맛이 있었다. 내가 왜 진작 브로콜리를 심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이번에 비로소 확인한 사실이지만 브로콜리는 우리 식구에게도 인기도 좋으니, 앞으로는 우리 집 주요 재배작물이 될 것 같다. 더구나 브로콜리는 세계 10대 슈퍼푸드 중의 하나로 선정된 작물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브로콜리는 봄가을, 일 년에 두 번 재배가 가능하다고 하니, 당장 올가을부터 재배면적을 넓혀야겠다. 아무래도 우리 식구 모두 브로콜리 마니아가 될 것 같다. 


큼직한 우리 집 브로콜리 사진에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공개하지 않은 비법이 있나요?" "우리 집은 잎만 무성하고 브로콜리는 거의 열리지도 않았는데 왜 그런 건가요?" "글쎄요..." 솔직히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어쩌다 한 번 브로콜리 농사가 잘 된 것뿐이다. 


농사란 게 이상하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심는다고 하더라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자그마한 환경의 변화로도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몇 차례 계속 성공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때에는 우리 집 브로콜리 농사가 잘 된 이유를 설명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날씨가 브로콜리 농사에 좋았던 건가? 잘 모르겠다. 이래서 농사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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