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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Dec 23. 2021

배추김치가 물러졌다

김치 없이 어떻게 긴 겨울을 보내지?

김장 배추가 물러졌다. 겨우내 김장 김치를 먹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배추가 물러지기 시작했으니 걱정이 많다. "(소금의) 간수가 덜 빠졌나? 고춧가루에 문제가 있나?" 아내는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고민을 했다. 김치 없으면 못 사는 토종 중의 토종인 나 역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먼데 김치 없이 어떻게 긴긴 겨울을 보내지?


올해도 김장을 담글 때 옆에서 열심히 보조 노릇을 했다. 누구는 김장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옆에서 뺀질거리다가는 두고두고 핀잔을 받을 테니까. 시작은 그렇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세월이 흐르니 어느덧 나도 훌륭한 보조가 되어있었다. 함께 김장을 했으니 딱히 누구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아내가 김장을 총괄하는 책임자였으니 물러진 김치에 더 신경이 쓰이나 보다.


근래에 김장 배추가 이렇게 물러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자랑도 많이 해왔다. '키토산 액비 뿌려주고 배추를 키우면, 배추가 크게도 자라지만 한 번도 물러진 적도 없다!' 키토산 액비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약장수 노릇까지 해왔다. 배추를 크게 만들지 말라는 아내의 엄명에 따라 비록 올해는 키토산 액비를 딱 한 번만 뿌려주기는 했지만, 배추가 물러진 데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간 김장배추가 물러진 분들도 많았는지 수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고, 마침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찾아냈다.

 

첫째. 무름병이 온 배추는 100% 배추가 물러진다고 한다. 올해 9월에는 비도 많이 오고 기온도 높았다. 과연 전국적으로 배추 밭에 무름병이 퍼졌다고 방송에서는 아우성을 쳤다. 화단을 만들어 물 빠짐이 좋은 우리 밭에도 배추 몇 포기에 무름병이 왔다. 남들은 배추 밭을 다 갈아엎었다고 하는데 그까짓 몇 포기쯤이야... 가벼운 마음으로 무름병이 온 배추를 뽑아버렸다. 그나마 올해는 평소보다 배추를 좀 많이 심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배추가 멀쩡해 보여도 뿌리 쪽을 잘라서 검은 줄이 보이면 무름 병에 걸린 거라고 한다. 우리 배추는 어땠는지 통 기억이 없다. 설마 우리 집 배추 전체가 무름 병에 걸렸던 건 아니겠지.

 

둘째. 수확기에 물을 많이 주면 배추가 물러진다고 한다. 내가 물을 준 적은 없지만 올가을에 비가 많이도 왔다. 틀림없이 배추가 물을 많이 먹었을 테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10월이 되어서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으니 꼭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셋째. 비료를 많이 주어도 물러진다고 한다. 키토산 액비를 한차례 뿌려주기는 했다. 그리고 10월 초순에 배추 사이에 질산칼슘을 티스푼으로 하나씩 넣어준 게 전부다. 그 정도로는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다. 더구나 해마다 늘 해 오던 방법이므로 올해 특별히 배추가 물러질 이유가 없다.

   

넷째. 수확이 빠르면 배추가 물러진다고 한다.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다. 농사일지를 찾아보니 8월 26일 배추 모종을 심어 11월 1일 수확을 했다. 내가 텃밭에서 배추를 키운 날짜는 고작 67일뿐이다. 김장배추는 최소한 90일 이상을 키워야 한다는데, 이번에는 모종을 키운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90일이 채 안 된다. 예전에는 11월 말이 되어서야 김장을 하곤 했으니 그동안 한 번도 배추가 무르지 않고 아삭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진딧물이 생긴 배추. 처음에는 별로 없어 보여도 며칠만 지나면 순식간에 확 퍼진다.

우리 집 배추도 처음에는 잘 자라는 듯했다. 하지만 고온 다습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10월 중순에는 갑자기 때 이른 가을 냉해까지 겹쳤다. 냉해를 입은 배추 겉잎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자 약해진 배춧잎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바로 진딧물! 김장 배추에 진딧물이 보일 때, 곧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거의 끝장이라고 보면 된다.


진딧물은 처음에는 겉잎에만 붙어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배추 속으로 점점 파고 들어간다. 수확시기가 가까워졌으니 약을 뿌릴 수도 없고, 또 약을 뿌린다 하더라도 깊숙이 들어간 진딧물은 살아남는다. 더구나 내가 진딧물을 발견한 시점은 복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빨리 김장부터 해야겠어!" 아내의 명령에 따라 급하게 배추를 수확했고 벼락치기로 김장을 담갔다. 11월 말까지 기다렸다가는 남아나는 배추가 하나도 없을 테니까. 진딧물이 붙어있던 겉잎을 모두 떼어냈더니 큼직했던 배추가 거의 반의 반쪽으로 줄어들었다. 


우리 집 김장배추에는 초록색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쌈 싸 먹기에 딱 좋은 연한 노란색 배추들 뿐이다. 이런 형편이니 올해 배추김치가 물러질 만도 하다. 수확도 빨랐고 초록색 겉잎도 하나도 없었으니까. 참고로 소금이나 고춧가루는 배추김치가 물러지는데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그 원인을 알았으니 내년부터는 배추가 물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의혹이야 풀렸다 치지만 문제는 당장 올겨울이 걱정이다.

  

김치가 맛이 없으니 긴긴 겨울 동안 무엇을 먹고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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