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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도 돈이 있어야 한다

귀농초기 정착비용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골에 내려와서 마음 편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도시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면 그런 생각을 하랴 싶었다. 그런데 마음 편한 농사라는 게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시골생활도 생각만큼 녹녹치가 않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잘 알지는 못해도, 사업이 어렵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흘려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연락이 왔는데, 전화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번 놀러 오시라고 말은 했는데,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분은 그래도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작지만 1800평이 있다. 전체가 본인 것은 아니더라도, 장기간 걱정 없이 농사지을 수는 있는 땅이다. 그런데 문제는 땅만 있다고 과수농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먼저 복숭아 농사에 관심 있어하시니, 이 경우 필요한 것들을 추정해 보았다.


먼저 땅 만들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그 밭은 온갖 잡목들로 엉망이 되어 있으니, 먼저 굴착기로 땅을 정리해야 한다. 돌도 엄청 많으므로 골라내야 한다. 예전에 그 땅에 매실나무를 심은 적이 있는데, 돌 투성이의 밭에 물도 나와서 나무가 거의 다 죽었다. 굴착기로 대강 물길을 내주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려면, 유공관도 묻고 배수로도 잘 만들어야 한다.


DSC00665.JPG 전망은 좋은데 온갖 잡목으로 엉망이 되었다. 또 밭에는 물도 나고 돌도 많다.


또 그 밭은 경사가 있고, 크진 않아도 면적이 제법 되므로 농기계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 그래서 농약도 뿌리고, 과일도 운반하려면 'SS 기'가 필요해 보인다. 당연히 물건들 실어 나르려면 트럭도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려면 트럭은 필수다. 기타 필요한 갖가지 농기구 (예초기 포함)들은 아예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무조건 몸으로 때우려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먼저 몸부터 망가진다.


물도 부족하면 지하수도 파야 한다. 근처에 흐르는 샘물이 있지만, 가뭄이 들면 말라버릴 수도 있다. 관수시설도 해야 한다. 요즘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농사 망친다. 그리고 창고도 지어야 한다. 수확한 복숭아 작업하려면 지붕이 있는 창고가 있어야 한다. 한쪽에는 농자재 쌓아놓을 공간도 있어야 한다. 다 돈이다.


그리고 묘목을 심고, 나무가 자라서 정상적인 소득을 보려면 5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열매가 없어도 복숭아나무 소독은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 당연히 거름도 주어야 하니, 해마다 들어가는 농약, 퇴비 등 농자재 비용도 매년 몇백만 원은 족히 들어간다. 초창기에는 소득은 고사하고 지출만 있는 셈이다.


살 집도 있어야 한다. 혹시 빈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시골에도 조금 손보고 살 수 있는 빈집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주 깊은 산골이라면 모를까. 집을 새로 짓거나 구입할 수 없다면, 임대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최소한 5년간 먹고 살아갈 생활비도 있어야 한다. 여유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익숙하지 않은 시골 일을 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또 시골에 일손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주로 농번기에만 부족한 것이므로, 먹고살려면 꾸준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 와중에 과수 농사짓는 기술도 익혀야 한다. 요즘 날씨에는 평생 농사지은 분들도 본전 뽑기 힘들다고 하는데, 처음 과수 농사지으면서 남들처럼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교육받는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숱한 실패를 겪으면서 하나씩 배워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한다고 해도, 5년 뒤에 발생하는 복숭아 농사 평균 매출은 (정부 발표자료) 평당 1만 원~3만 원이라고 한다. 복숭아는 재배기술에 따라 판매 금액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잘해서 농사 중간쯤 지었다고 치면, 1800평의 땅에서 3600만 원의 매출을 예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필요한 농약 값과 농자재 비용, 기타 경비 (30% 반영)를 빼면 약 2500만 원의 연간 소득이 나온다.


이 금액이 부부가 1800평 복숭아 농사지어서 벌 수 있는 금액이다. 부부가 함께 일 년 내내 농사지어서 월 200만 원 조금 넘는 소득이 생기니, 두 사람 인건비를 따지자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직거래를 해서 소득을 좀 더 올릴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 일 년 농사를 순식간에 망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시골에 정착해서 과수 농사를 지으려면, 또 시골에 기반이 없다면, 집과 농사지을 땅과 5년간 먹고 살 생활비 이외에도 초기 시설투자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득은 5년 후에나 발생한다. 만약 농사지을 땅도 없어 임대하거나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시설투자를 했다면, 그 금융비용만큼 소득은 더 줄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수보다는 소득이 적은 줄 알면서도 밭작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안정적인 소득을 위해서라면, 농사보다는 차라리 어디 직장에라도 다니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시골에서도 대부분의 가정이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부부 중 한 사람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최근 정부 발표자료에 의하면, 가구당 순수하게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연간 천만 원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돈 없으면 시골 와서 농사짓기도 힘들고, 또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도 힘들다.


세상에 마음 편한 농사란 없다. 이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P.S.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설명했는지는 몰라도, 그 지인은 시골 와서 농사지으시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셨다. 그런데 아무리 다시 봐도, 내가 필요 없는 비용을 부풀려놓은 것도 없고, 또 소득을 크게 늘일 수 있는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1800평이란 작은 땅이 갖고 있는 한계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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