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 배추벌레가 왜 죽지 않지?

목초액 500배란?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누구나 처음으로 텃밭을 가꾸게 되면 수없이 실수를 한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으면 당연시했을 것도,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낯설기가 그지없다. 처음에는 농사 용어도 무척이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귀촌하기 전에 텃밭을 조금 빌려 가꾼 적이 있었다. 남들이 김장 배추를 심는다고 하기에, 우리 부부도 남들 따라 밭을 만들었다. 이때는 농기구도 달랑 삽 하나밖에 없었다 (아! 모종삽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의 퇴비를 주고는, 신이 나서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그때는 예상외로 배추 모종들이 죽지도 않고 잘 자라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 가보았더니 배춧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악, 배추벌레가 나타났다!' 그런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이를 어쩐다? 언젠가 농약 대신 목초액을 뿌려주면 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급히 목초액을 사 왔는데, 500배로 뿌려주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이 정도 먹어치웠으면 배추벌레가 한두 마리가 아니겠지. 사진 왼쪽 위 편에 배추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500배가 뭐지?' 와이프와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500배란 물 500에 목초액 1의 비율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500배란 양이 물 10리터에 목초액을 겨우 한 숟가락 (20cc) 넣는 정도이니, 과연 이렇게 조금 넣어서 효력이 있을까 싶었다.


아무튼 잘 모르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그래서 500배로 목초액을 섞은 물을 배추에 뿌려주었는데, 도중에 배추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배추벌레를 확실히 보내버리려고 목초액을 집중해서 뿌려주었는데, 아니 어떻게 배추벌레가 목초액을 뒤집어쓰고도 멀쩡한 것이 아닌가! 설사 죽진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꿈틀대며 도망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그냥 딱 버티고 있으니, 과연 목초액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설명서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아니면 우리 부부가 500배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그래서 배추벌레 잡아놓고, 와이프와 함께 밭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나 진하게 목초액을 타야 배추벌레가 죽는지 마루타 시험을 시작했다. 과연 배추벌레가 꿈틀대며 죽는 순간이 오긴 했다.


회심의 비법을 알아냈으니, 목초액에 붙어있던 오류 투성이(?)의 설명서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우리 부부가 알아낸, 배추벌레가 죽을 정도의 진한 목초액을 배추 밭에 뿌려주고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주말에 밭에 가 보았는데, 정말로 배추벌레는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으니 예상대로 모두 다 죽은 게 틀림없었다. 단지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 밭에 있던 배추들도 전부 하얗게 말라죽어있었다. 그해 가을 농사는 그렇게 속절없이 끝났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 보기가 창피해서, 다시는 그 밭에 얼쩡거리지도 않았다.


P.S. 자연농업 교육받을 때, 목초액은 관주용 (땅에 뿌려주는 것)으로만 사용하라고 배웠다. 아마도 엽면시비 (잎에 뿌려주는 것)를 할 경우 채소에서 냄새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배운 대로 목초액을 관주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500배는 물 500에 목초액 1이 맞다. 또 목초액은 해충 기피제이지 살충제가 아니다.

keyword
이전 03화귀농도 돈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