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가 토마토를 워낙 좋아해서요
우리 식구들은 토마토를 좋아한다. 텃밭에서 햇빛을 받아 빨갛게 익은 토마토의 맛은 마트에서 파는 여느 토마토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는 덜 익은 상태로 수확을 하지만, 우리 집 토마토는 나무에서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또 무엇을 주고 어떻게 키웠는가에 따라 토마토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도 예전에는 토마토가 이런 맛인 줄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여름이면 의무적으로 몇 개쯤 먹어주어야 하는 채소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직접 키운 토마토를 먹고부터는 완전히 토마토 마니아가 되었다.
토마토가 익어갈 때쯤 우리 집을 방문하는 분들도 토마토를 맛볼 수 있는데, 한결같이 토마토의 강한 맛에 놀라시곤 한다. "이렇게 맛있는 토마토는 처음 먹어봐요. 향도 진하고 감칠맛이 나요!"라고 감탄해 마지않는 지인(여성) 들을 보면 나도 뿌듯해진다. 그런데 똑같은 토마토를 먹고도 남자들은 그냥 '맛있네'라고 말하면 끝이다. 앞으로 이런 남자분들은 다시는 토마토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도 종종 토마토가 나온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야 시골이 배경이니 그렇다 치고, 심지어는 토마토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영화 '대부'에서도 토마토가 나온다.
'돈 비토 코를레오네'가 마지막으로 손자와 놀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허무한 장면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토마토 밭이다. 그만큼 토마토는 국내외 어디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마피아 두목의 텃밭에도), 누구나 심는 흔한 작물 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먹기 편한 방울토마토를 많이 재배하는 모양인데, 우리 집은 아직도 큰 토마토 위주로 심는다. 나는 '리틀 포레스트'에서 모녀가 마당에 앉아 토마토를 먹는 장면처럼, 큼직한 토마토를 한입씩 베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먹어야 토마토에서 퍼져 나오는 강한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다.
농사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텃밭에 토마토를 좀 많이 심었던 적이 있다.
식구들이 토마토를 워낙 좋아하니 토마토 익어가는 속도가 먹어치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골 살면서 식구들에게 다른 것은 못해주더라도 토마토라도 실컷 먹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이 10미터짜리 밭이랑 4곳에 토마토를 심었다. 토마토가 좀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작물별로 소출이 얼마나 나오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저 좀 넉넉히 심고, 남으면 주위분들과 나누어 먹으면 되겠지 싶었다.
옆집 할머니가 지나가시다가 우리 집 텃밭에 심은 토마토를 보시고는 물었다. "왜 토마토 장사하시려고?" "아뇨, 저희가 먹을 건데요". 영 못 미더워하시는 할머니께 한마디 더 거들었다. "우리 식구가 워낙 토마토를 좋아해서요". 그리고 왜 할머니가 혀를 쯧쯧 하시며 가셨는지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2009년 농업 일지를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미련 맞은 짓을 했는지 알았다. 토마토를 무려 120포기를 심었다. 지금에야 입이 딱 벌 어질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는 그렇게 많은 건지도 몰랐다. 솔직히 2009년도에는 내가 좀 많이 무식했다.
그리고 120포기의 토마토가 익어갔다.
날마다 한 광주리 가득 완전히 익은 토마토가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볏짚을 깔아주어서인지 그해는 유난히도 토마토가 잘 자랐던 것 같다. 하루 세끼, 아침부터 토마토를 먹고 또 먹었다. 이웃에도 나누어 주고, 친구에게도 주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토마토가 남아 넘쳤다.
그래, 병조림을 하자! 병을 한 박스나 사서, 토마토를 물에 끓여 진공포장을 했다. 저장고에도 토마토 병이 꽉 찼고, 그래도 토마토가 남아 넘쳤다 (병조림은 겨우내 먹고도 남아 2년쯤 뒤엔 다 버렸다).
그래서 와이프와 싸웠다. 별 이유도 없이 내가 토마토만 따오면 싸웠다. 한 광주리 가득한 빨갛게 익은 맛있는 토마토를 보기만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곧이어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해 토마토 수확이 끝나는 8월 말까지 지긋지긋하게 토마토를 먹었고, 셀 수도 없이 와이프와 말다툼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저온 저장고도 없었으니, 익을 대로 익은 빨간 토마토는 뒷베란다에 며칠간 머물다가 대부분 퇴비장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식구들은 모두 토마토만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론 많이 똑똑해진 지금은 토마토를 보통 10포기 정도만 심는다. 물론 10포기도 적지 않은 양이다. 우리 식구는 아직까지도 토마토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 집 텃밭에서 키운 토마토의 그 진한 향과 감칠맛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냐만 서도...
<첫 번째 사진 출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