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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Dec 17. 2020

전원주택 마당에는 어떤 나무를 심을까?

정원수를 고를 때 유의해야 할 사항

찬 바람이 불고 땅도 얼어붙는 한 겨울이면 농사꾼들은 긴 휴식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휴식기라고 해서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봄이 오면 정원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구상도 한다. '내년에는 맛없는 살구는 뽑아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어볼까?' 집 짓고 나서 단 한 번에 제 자리를 찾아서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능력이 있으면 이미 아마추어가 아니다. 


넓은 마당에 회초리 같은 나무를 심으려니 빈 공간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좀 가까이 심었는데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들이 엉켜버렸다. 또 울타리 가까이 심었더니 가지의 절반은 옆집으로 넘어가 버렸다. 멀쩡하던 나무가 갑자기 얼어 죽기도 한다. 또 분명히 맛있다는 과일을 심었는데 나중에 보니 맛이 영 아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었다가 뽑아버리고 옮겨심기를 반복하니 나무가 몸살을 앓기도 하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해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들이는 묘목도 적지 않았으니 원예 종묘사에서는 우수고객이라고 원예용 책자도 공짜로 보내왔다. 그동안 수많은 실패를 통해 내공이 제법 쌓인 지금은 예전처럼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혹시 나의 실패 경험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마당에 나무를 심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해봤다. 


첫 번째는 유실수를 심을지 관상수를 심을지를 정해야 한다.


나무를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으면 유실수보다는 관상수를 심는 게 낫다. 관상수야 봄에 전지만 해주면 된다지만 유실수는 손봐주어야 할 것이 많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열매는 저절로 열리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나는 관상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우리 집 마당이 잔디인 것도 아니고 자갈을 깔아놓은 자그마한 시골집이니 멋진 관상수를 심어놓고 폼 잡아봤자 어울리지도 않는다. 또 보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더 중요한지라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는 무조건 퇴출 대상이다. 우리 집에서 정원수란 곧 유실수다. 난 예쁘거나 멋진 관상수보다는 탐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유실수가 더 좋다.  


처음에 멋 모르고 캐나다 단풍을 심었다가 쭉쭉 뻗는 키에 놀라 잘라버렸고 (그늘이 진다), 열매가 깨알처럼 작아 먹을 것도 없는 토종 보리수도 뽑아버렸다. 물론 열매가 열려도 맛이 없으면 퇴출된다. 회령 백살구라고 심은 살구나무가 개살구로 판명되어 올해 퇴출 대상 목록에 영순위로 올라가 있다. 맛도 없는데 떡하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땅이 아깝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 남은 관상수라고는 딱 소나무 세 그루뿐이다. 


두 번째는 추위에 강한 나무인지를 살펴본다.


살고 있는 지역이 우리 집처럼 추운 지역이라면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나도 처음에는 심고 싶은 나무들도 많았다. 담장 너머로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감나무를 심었지만 얼어 죽었고, 다음 해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뒤뜰에 심었는데도 죽었다. 석류도 심었고 체리와 씨 없는 청포도도 심었는데 한 해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다 죽었다. 


매실은 이렇게 꽃까지만 피웠다. 그리고 늦서리가 내리면 꽃이 다 떨어져 버리고 그해 농사는 끝났다.

그 쉽다는 매실도 몇 년 전 결국 퇴출시켜야 했다. 매실은 얼어 죽지는 않았는데, 봄에 늦서리가 내리면 꽃이 다 떨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해마다 커다란 매실나무 네 그루에서 매실 몇 알씩만 수확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동네에는 매실나무나 감나무가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었다. 


수년간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난 후에 깨달은 것은 나무는 그 지역 기후에 맞는 품종을 심어야 한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해 갑자기 강추위가 닥치면 큰 나무라고 하더라도 속절없이 죽었다. 그러면 몇 년간의 노력이 한방에 날아간다. 묘목값이야 별게 아니라지만 그간들인 정성과 기회비용이 아깝다. 우리 집이 사과와 아로니아 과수원이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두 품종만큼은 강추위에도 꿋꿋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방제(농약 소독)를 많이 해야 하는 나무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우리 집에서는 계절별로 먹을 수 있도록 온갖 종류의 유실수를 몇 그루씩 심었다. 7월이면 복숭아와 자두가 열리고 8월에는 여름사과와 포도가 열린다. 9월이면 늦복숭아가, 10월이면 대추와 밤이, 그리고 11월에는 사과가 열린다. 이렇게 다양한 유실수를 심어 계절별로 수확하는 것이 조금은 부러우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가가 아니면 이렇게 다양한 유실수를 재배하기는 어렵다. 


나는 유실수를 크게 방제를 많이 해야 하는 나무와 조금만 해도 되는 나무로 구분한다. 유실수 치고 방제를 전혀 하지 않고도 제대로 수확할 수 있는 나무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로니아나 블루베리 정도만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는 유실수를 심으려면 꼭 조금만 방제를 해도 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과와 복숭아 그리고 자두는 방제를 많이 해야 하는 나무다. 사람들이 많이 심고 싶어는 하지만 방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과일을 한 개도 수확할 수가 없는 나무들이다.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연간 5번 정도는 방제를 해 주어야 그나마 먹을 수 있다. 혹시 그 정도는 감수하고 나무를 심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다음은 경제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농약은 보통 봉지나 병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 한 병 용량이 물 25말 (500리터) 기준이다. 그 정도면 일반적으로 300평 정도의 과수원을 1회 방제할 수 있는 용량이다. 그런데 집에 유실수가 몇 그루뿐이라면, 한 번에 농약 한통의 10분의 1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번 개봉한 농약은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저절로 떨어지므로 오래 보관하지 못한다. 


그러면 농약 한통 사서 일 년간 나누어 쓰고 끝낸다면? 그것도 곤란하다.      


농약은 같은 약을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약을 계속 사용하면, 균이나 충에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농가에서는 일 년 내내 방제할 때마다 매번 다른 종류의 약을 사용한다. 또 농약은 기본적으로 살균제 (바이러스)와 살충제 (벌레, 나방)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한다. 이렇게 한번 방제할 때 드는 비용은 평균 7~8만 원은 족히 된다. 또 나무의 종류에 따라 발생하는 병충해의 종류가 다르므로 사용하는 농약도 달라진다.     


그래서 과수원은 약 한 통 사서 다 쓸 수 있는 규모 (최소 300평 이상)는 되어야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내가 사과 과수원 규모를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또 우리 집의 다른 유실수들에는 종류와 무관하게 무조건 사과를 방제하고 남은 약을 친다. 그래서 사과 외에는 썩 상품성 있는 과일 (먹을 수는 있지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정에서 유실 수 몇 그루 재배하자고 일 년에 몇 십만 원을 농약 값으로 지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서는 사과나 복숭아, 자두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지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게 된다. 사 먹는 게 훨씬 싸게 먹히니까. 물론 반쪽짜리 과일 몇 개만 수확해도 만족한다면, 그러면 심어도 된다. 대신에 만약 유실수를 심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유실수들은 온갖 벌레의 온상이 되어 주변의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조금만 소독해도 되는 나무에는 감, 대추, 살구, 포도, 밤, 체리 등이 있다. 이 나무들은 일 년에 두세 번만 방제를 해도 어느 정도 수확을 할 수 있는 나무들이다. 


그래서 만약 일반 가정에서 유실수를 심는다면 아쉽더라도 조금만 방제를 해도 되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과일은 사서 드시고! 내가 꼭 과수원집주인이라 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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