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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Dec 03. 2020

영화 '인생 후르츠'를 통해 본 시골살이

생태적인 삶은 귀촌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다

몇 년 전 수도권 소극장에서 잠시 개봉했다가 별로 관심도 끌지 못한 채 막을 내린 영화가 있다. 바로 '인생 후르츠'라는 영화로 90세 할아버지와 87세 할머니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생태적인 삶이나 부부애 등은 평론가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지금 그분들에게서 엿볼 수 있었던 몇 가지 일상을 시골살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집 짓기와 나무 심기, 흙 만들기와 텃밭 가꾸기에 관한 것으로, 이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귀촌을 꿈꾸는 우리에게 공통된 관심사일 테니까 말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경제 발전만을 중요시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생태적인 건축을 주장하는 할아버지의 의견을 무시한 채 산을 깎고 숲을 파헤치며 아파트를 짓는다. 그러자 건축가였던 할아버지는 나부터라도 숲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택지 300평을 구입하여 집을 짓는다. 집은 방 1칸뿐인 15평짜리 단층집이다. 그리고 작은 집과 좁은 통로를 제외한 땅을 전부 밭으로 만든다. 그 밭에는 나무와 채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이곳 택지는 신도시로 개발된 땅이다. 땅들은 바둑판처럼 나누어져 있고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있다. 이런 택지라면 당연히 고급주택들이 들어서고 잔디가 깔린 마당에 멋진 나무가 몇 그루쯤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분들의 집은 15평짜리 단층집이다. 그 집에는 흔한 잔디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리 넓지도 않은 면적인데 집도 짓고 농사도 짓는다. 


이 집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다. 방도 한 칸뿐이므로 침실도 거실도 주방도 같은 공간에 있다. 너무 옹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정도 크기면 노부부가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 인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텃밭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는 공간이며, 90세가 되어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며 일터다. 특히 너무 넓지 않은 텃밭인지라 더욱 애착이 간다. 


내 주위에는 딱 70세까지만 농사짓고 그만둘 거라는 분도 계시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70세가 되면 농사일 그만두고 편히 살겠다는 말씀이시다. 하지만 시골에서 계속 살고 있으면서 하루아침에 농사를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은, 영화 속의 노부부처럼 자신의 힘과 능력에 맞는 규모로 계속 농사를 짓는 것인지도 모른다. 


능소화 꽃은 예쁜데 하필이면 입구에 심어 현관이 어둡다 (좌). 집이 큰 나무에 파묻혀있다 (우). (사진 출처: 영화 화면 캡처)


'마당에 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호두나무 등을 심었다. 거실에서 보면 앞마당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보인다. 유실수로는 밤, 체리, 매실, 감, 귤 등을 심었다 (50여 종의 유실수를 심었다고 한다).'     


바로 거실 유리창 너머에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300평의 작은 택지에 키가 10미터는 돼 보이는 나무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는 그늘이 지므로 집 가까이에는 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집은 아예 큰 나무들에 파묻혀 있다.  


대개 이런 집은 답답도 하지만 습기도 많고 음침하다. 더구나 현관 근처에 능소화를 심어 터널도 만들었다. 꽃이 예쁘기는 한데, 능소화가 얼마나 무성하게 자라는지 모르고 심은 게 아닐까 싶다. 당연히 현관도 그늘이 져서 어둡다. 이웃들도 꽤나 무던한가 보다. 만약 우리 집에 그렇게 큰 나무가 있었더라면 동네 사람들 원성이 자자했을 것 같다. 


반면에 유실수는 올바로 선택한 것 같다. 거의 방제를 하지 않고도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나무들만 보인다. 병충해 피해가 큰 사과나 복숭아, 자두 등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가만히 보면 이분들은 방제란 개념도 없으신 것 같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지난 40년간 텃밭을 가꾸어왔다면 이미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더욱 건강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손수 만든 퇴비를 텃밭에 뿌려주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화면 캡처)


영화 속에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라는 대사가 몇 차례나 반복해서 나온다.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흙이다. 고무 통이나 마대자루에 농산물 찌꺼기나 낙엽을 넣어 퇴비를 만든다. 그리고 직접 만든 퇴비를 듬뿍듬뿍 밭에 뿌려준다. 당연히 감자도 알이 굵다. 이런 밭에는 무슨 채소든 심기만 하면 저절로 쑥쑥 자란다. 하지만 이런 땅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차근차근 천천히'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분들은 구획을 정하지도 않았고 텃밭 구석구석에 70여 가지의 채소를 심었다. 그저 농작물 심은 곳을 기억하려고 (그리고 밟지 말라고) 이곳저곳에 노란 팻말을 박아 놓았을 뿐이다. 이런 밭이라면 돌려짓기란 개념도 필요 없어 보인다. 또 행여 농사가 잘되지 않으면 마트에 가서 사 먹으면 그만이다. "올해는 완두 콩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어"라며. 그저 자연이 주는 대로 감사히 받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풀을 깎고 나서 잠이 드신 후, 영영 깨어나지 못하신다.' 


주제를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90세가 되어서도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에 좋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건강한 육체와 맑은 정신을 지니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할아버지를 보내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생활을 꾸려 나가신다. 영화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일은 스스로 꾸준히 하는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이 맞아요.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여러 일이 점점 보이거든요." 농사일이란 정말로 꾸준히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저절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문득 혼자 남은 할머니의 독백이 떠오른다. "그래, 슬프거나 외로워하지 말고 씩씩하게 살다 가야지."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다가올 일이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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