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전 국민 일요일 루틴 처럼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회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하고 있는데 나주배한테 문자가 왔다 .
혹시 장 보러 갈 거냐고, 갈 거면 심심해서 그러는데 자기도 따라가고 싶다고.
나주배는 이번 주에 중국으로 돌아간다. 나주배의 친한 중국인 친구들은 이미 다 중국으로
돌아갔다. 나주배, 나주배 또래 중국 사람들, 한국 사람들, 다들 여기가 심심한 곳이라고 한다.
확실히 겨울에는 심심하고 쓸쓸한 곳이긴 한 거 같다.
심심하고 쓸쓸할 나주배에게 장은 어제 봤지만,
있다가,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자고 했다.
어차피 회사 일도 집중이 안 돼 몸을 비비 꼬며 하던차라 잘됐다 싶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나주배 사는 곳까지 운전해 간 뒤,
나주배와 스타벅스 드라이브 th루로 커피도 테이크아웃 했다.
나주배는 감정에 기복이 없는 남자사람이다.
나처럼 욕심이 많지도 않고 상냥하고 가끔 답답한 소리할 때도 있지만,
매일 매일 중국에 있는 엄마와 여자친구랑 전화하는 자상한 사람이다.
내가 만약 딸이 있음 나주배 같은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나 같은 자극적인 남자말고, 나주배 같은 뭔가 처음에는 뭔 맛인가
싶고 재미없어도, 이해심 많은 남자.
사실 나주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돈 많은 중국인 부모를 가졌지만,
내딸이 돈없는 버젼에 나주배를 만나도 좋을 거 같다.
돈이야 내가 많이 벌어 둘 다 먹여 살리면 될테니.
스벅 커피를 픽업하자,
나주배는 여자친구처럼 어디 가는 거야? 라고 하며 설레여했다.
나는 여친한테 대하듯 글쎄? 하면서 남쪽으로 달렸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남쪽으로 2시간만 달리면 미국과의 국경이 나온다.
나는 국경을 꽤 많이 가봤는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 때문이다
당시 여자친구가 워크퍼밋 관련 문제가 있어 국경에서 그걸 해결해야 했다.
좢같은 일은 다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말하던 나였기에,
당연히 왕복 4시간 국경까지, 운전해서 같이 가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국경에 비자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지친 업무 때문에 날카롭고 말도 재수 없게 한다.
혼자 가면 얼마나 무서울 것이며 운전은 또 얼마나 힘들것인가.
뭐 이런거 때문에 나는 함께 하고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좋았다. 내가 말한 걸 지킬 기회가 온 거니까.
좢같은 일은 다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했던 그런 개쌉쏘리같은 말들을
그때 당시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다
힘든 건 내가 대신해주고, 즐거운 것들은 같이하면
상대방도 나처럼 쉽게 행복해지고 그런줄알았다
그래서 나로 인해 행복해 보였던 당시 여자친구를 많이 좋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았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어쩌고 지지고 볶고 난리 쳐도
본인은 불행할 수 있고, 행복이나 삶에 대한 만족은 본인 스스로 얻는 거라는걸.
그녀는 항상 불행해했고 항상 과거를 후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을 쯤 그녀와 헤어지고,
멍충한 나는 그 후에도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이제는 진짜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 없이도 행복하고 나 없이도 삶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좢같은 일은 해결해 줄 수 있어도 정말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줄수 없다는걸
이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다
처음 보는 공원이 표지판이 보여, 차를 틀어 들어가 봤다
가는길도 예뻤는데, 안에 가보니 진짜 와 소리가 나왔다. 여길 왜 몰랐지? 싶은 그런 느낌
비록 내 옆에는 덩치 큰 왕서방 같은 중국 남자사람 나주배가 있어도,
커피 마시며 보는 그 풍경이 너무 예뻐 행복했다.
나는 진심, 지금 행복하다.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도 있고,
짜파게티도 매주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고 (카나다는 짜파게티 비쌈 에헴)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도 밀린 일 할 정도로 일이 많다. 블로그에 글 쓰는 이 순간에도
스벅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코스트코에서 제일 비싼 재즈애플도 먹고있다.
유튜브에서 말했던 내년에 만날 사람도 나 처럼 지금 행복 했음 좋겠다
오늘 같은 일요일에 쇼파에 널부러져 있든 라면을 끓여먹었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 그런 사람
그래서 이 심심할지도, 쓸쓸할지도 모르는 카나다에서
내년에 나와 같이 이런 풍경을 보고 같이 행복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