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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강사 Nov 08. 2022

'베스'로 만든 반려동물 사료

동물이 User (사용자)가 된다면?

2015년 즈음, 대학생 창업경진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 대학생 3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창업팀이 당시 굉장히 신선한 창업아이템을 가지고 나와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해어종인 '베스'로 만든 반려동물 사료! 우선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토종어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번식력도 높은 골칫거리 '베스'를 잡아들입니다. 잡은 베스를 활용해서 반려동물 사료로 만들고 친환경이라는 '사회적인 정당성'을 가진 이 사료를 저렴한 가격과 좋은 영양성분을 무기로 판매한다는 것이 주요컨셉이었습니다. 당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전체 창업아이템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매우 신선한 컨셉이었고, 심사위원들의 주목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심사위원이었던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개들은 좋아하나요?"

그러자 발표하던 학생이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사료의 영양성분 분석표와 먹였을 때 털에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 지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제가 다시 웃으며 "네, 그런데 개는 이 사료를 좋아합니까? 잘 먹나요?" 라며 물어보자. "아직 테스트는 안해봤습니다. 반려동물이 좋아할 맛을 개발하겠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2010년 초중반 국내외 반려동물 스타트업들이 많은 투자를 받아 여러가지 시도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 비즈니스 모델, 투자유치에 역량을 집중하는데 정작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용자인 반려동물은 먹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농협사료 영업사원들과 마케팅 워크샵을 했을 때 입니다. 가치제안 (Value Proposition)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라고 여쭤보니 "사료를 구입하는 농장주 입니다."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농장주분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사료는 어떤 사료입니까?" 라는 저의 질문을 했고 다들...


"저렴한 사료입니다. "

라고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뒤로 나눈 대화는 아래입니다.


✦ 강사 : OK! 한포대에 100원하는 저렴한 사료인데 먹어도 먹어도 살은 안찌고 다 똥으로 싸버립니다.좋은 사료인가요?


• 교육생 : 아니네요. 살이 안찌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똥으로 다 싸버리면 청소등 분뇨처리비가 올라가니까요.


✦ 강사 : 농장주들이 좋아할만한 사료를 극단적으로 말씀드려볼까요? 한톨에 10,000원인데 소, 돼지에게 먹이면 한포대에 100원하는 사료 100포대보다 더 살이 빨리 오르고 배설물은 훨씬 적습니다. 사료를 보관하는 창고의 크기도 작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인건비나 처리비용도 훨씬 저렴하구요. 이 사료는 어떠세요?


• 교육생 : 농장주 입장에서는 최고의 사료네요.


✦ 강사 :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나오는 돌연변이 슈퍼돼지가 생각나네요. 

2017년 영화 '옥자' 예고편

✦ 강사 : 자, 그러면 다시 사료로 돌아가서요. 사료의 사용자(User)는 누구인가요?


• 교육생 : 음... 소, 닭, 돼지 일까요?


✦ 강사 : 맞습니다. 그 동물들이 원하는 사료는 어떤 사료일까요?


• 교육생 : 맛있는 사료?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사료?


✦ 강사 : 생산성이 좋은 사료는 동물들이 원하는 사료와는 거리가 있겠죠? 생산성이 좋은 사료는 오히려 명을 재촉하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또 다른 사용자(User)는 누구일까요?


• 교육생 : 또 다른 사용자(User)? 누군가요?


✦ 강사 : 또 다른 사용자(User)는 농장의 '직원'아닐까요? 그들이 원하는 사료는 어떤 사료일까요?


• 교육생 : 취급이 편한 사료?


✦ 강사 : 맞습니다. 가볍고, 끈적거리지 않고, 사용하기 편리한 사료겠죠? 사료 제조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제조경비가 적게 들어가고, 만들기 쉬우면서, 이익이 많이 남으면 좋을 것이고, 유통사의 사장입장에서는 유통마진이 많이 남는 제품이 좋을 것이며, 유통사의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농장주에게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 하기 쉽고, 제품의 장점을 이해시키기 쉬운 제품이 좋을 것이고, 조직적으로 구매하는 B2B고객인 농장의 구매결정권자(Decider)인 농장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지비가 적게 들어가고, 생산성이 높아 이익을 높여주는 것이 좋은 사료이고, 사용자(User)인 동물은 맛있고, 포만감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며, 또 다른 사용자(User)는 농장의 직원은 취급이 편리한 사료가 좋을 것 입니다. 거기에 동물의 면역을 강화시키는 부가기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혹시 빠진 것이 있을까요?



B2B고객의 바잉센터(Buying center)별로 그들의 고통(Pain), 필요(Needs), 욕구(Desire)를 공감(Empathy)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젊은 이들이 늙은 이들에게,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인간이 동물에게, 생산팀이 구매팀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공감하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감력이 뛰어난 조직, 개인은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굉장히 큰 힘을 가진 것 입니다. 


그럴려면 조직도 말랑말랑, 구성원들의 뇌도 말랑말랑 해야겠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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