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판본의 크기와 촉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체호프의 단편소설집이다. 꽤 많은 출판사들이 체호프의 단편집을 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체호프를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디자인 때문이다. 손으로 느끼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크기, 제본 방식, 종이의 무게 모두가 독서를 편하게 이끈다. 오랜 시간 모니터를 보다가 한 번씩 책을 보게 될 때는 종이책의 물성을 기대하게 된다. 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과 표지 이미지가 우선일지 모르지만, 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 끝과 손바닥에 잡히는 촉감과 무게가 먼저다.
장벽, 러시아 문학의 고유명사
첫 한두 편에서는 독서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러시아식 인명과 지명이 낯설어서다. 빠르게 읽다가 인명과 지명에서 더듬거리며 속도를 늦추다 보면 이야기 밖으로 튕겨 나오게 되곤 한다. 몇 달 전 <삼체>를 읽을 때도 중국어 인명과 지명을 읽고 기억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기억하지 않으면 글의 전개를 따라잡기 어렵고, 정확하게 읽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웠다.
고유명사 기억법, 인물 감상법
장편소설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때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천천히 읽으면서 기억하고 주변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건성건성 읽었다. 모두를 꼼꼼히 기억하듯 읽고 있으면 주석이 잔뜩 달린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도의 분량이면 일단 진도를 나가는 게 우선이다. 차근차근 완벽하게 이야기를 쌓다가 손에서 책을 놓게 될 수도 있다. 나도 그랬었다. 총 3권 중 첫 1권을 빠르게 읽어내면 그 다음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단편을 읽을 때는 인물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봐도 좋았다. 등장인물이 적고, 배경도 제한적이라서 이미지가 뒤섞이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의 예고편 혹은 스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 이미지들은 새로운 정보들이 덧붙여지면서 천천히 바뀐다. 이런 방식으로 읽을 때 텍스트와 이미지와 비디오가 뒤섞이며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단편의 이야기는 압축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쇼트가 액션 영화의 그것보다 긴 것처럼 단편을 읽을 때는 장편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읽게 된다. 천천히,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음미하듯 읽어내는 독서도 재미있다.
선물, 낯설게 하기
러시아 문학의 고유명사들은 작가와 나의 거리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차이는 곧 좁혀진다. 체호프의 문장은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유명사는 끝까지 작품을 낯설게 한다.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는 ‘낯설게 하기’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너무 친숙해서 지나친 것들을 돌아 보면서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기법이다. 21세기에 한국어가 모국어인 독자에게는 러시아어 고유명사를 익히는 과정이 ‘낯설게 하기’가 되었다. 낯설게 하기에서 말하는 ‘지각의 난이도를 높이고 이해에 필요한 시간를 늘리는’ 작업이 고유명사 읽기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보다 체호프를 더욱 잘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한국어로 러시아 문학을 읽는 독자에게 문학의 신이 주는 선물이다.
6호 병동, 체호프와 푸코
좋아하는 밴드의 정규앨범이 나오면 한 번 정도는 모든 곡을 차례대로 듣는다. 전체 앨범의 구성에 음악가의 기획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의도가 쌓이면서 음악 세계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 드는 한두 곡만 듣게 되곤 하지만, 음악가의 세계를 얼추 이해한 뒤 고른 곡은 익숙한 풍경 속 빛나는 순간이 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서 빛나는 순간은<6호 병동>에서 찾아왔다.
<6호 병동>은 푸코의 책 <감시와 처벌>의 해설서로 읽어도 괜찮은 단편 소설이다. 푸코가 러시아의 정신병원을 언급한 적은 없다(이병훈, <감금과 통제: 19세기 러시아 정신병원의 실체>, 러시아연구 제29권 제1호, 190쪽). 하지만 푸코와 체호프 모두를 아는 독자라면 이 둘이 같은 현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푸코가 그물이라면 체호프는 거미줄이다. <6호 병동>에서는 광기를 이야기하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특히 악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푸코를 읽으며 나의 신체를 둘러싼 사회적 장치들을 군대와 학교라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차분히 돌아보게 됐다면, 체호프의 글에는 몸이 바로 반응했다. 무기력을 동반하는 공포의 기억이 돋아났고, 그럴 때면 내 몸은 그때 교사과 막사의 두텁고 갈라진 페인트가 되었다.
자고 싶다, 탓할 수 없는
<6호 병동>이 반짝이는 순간이라면, <자고 싶다>는 번쩍이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악마, 악마 이전에 사람. 잠도 못 자도록 학대당하는 사람. 자고 싶다면, 잘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 대중을 설득하는 일을 했다. 그때 세웠던 업무의 원칙 중에는 ‘상대는 악마도, 바보도 아니다’와 ‘우리는 서로 다른 합리성의 충돌을 조율하는 일을 한다’가 있었다. 일을 설계하고 진행할 때는 대체로 지켜냈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무시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해가안 되니까. 나와 공동체에 피해를 주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설득에 온 힘을 쏟았던 시기를 보낸 후 어느 날 한 재소자 이야기를 들었다. 친하게 지내는 신부님이 교도소에서 사목을 하다 만난 재소자의 생일날 이야기다.
그는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했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어서였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피해자가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와 같은 단죄의 판단을 하기 전에, 그의 현재를 만든 과거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집으로 가는 길>에서 소년병이었던 작가 이스마엘 베아가 재활기관에서 항상 듣던 말이다. 그 재소자에게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공동체의 축복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 없었다. 그의 죄를 선언하고 격리하는 것 외에도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죄를 짓게 된 사회적인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원인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떠올리는 일을 하면 어떨까. 매번 푸코를 떠올리며 광기와 죄의 기원을 탐구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체호프와 같은 이야기꾼이 열어 내는 이해의 가능성을 품고 사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렵더라도 해 내면 좋을 일이다.
번역가와 기획자의 의도가 궁금하다
여러 출판사에서 체호프의 단편집을 출간했다. 전집은 없다. 6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모두 수록한 전집 출간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당장 나도 선뜻 구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문학과 다양한 단편집을 훑어보다 보면 기획 의도가 보일 것 같다. 열린책들의 단편집에도 책의 끝머리에 ‘하찮음 속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역자 해설이 도톰하게 들어가 있다. ‘체호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들’을 해설하는 것이니만큼 번역가 혹은 기획자가 체호프 문학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추 다 들어가 있을 것 같다.
열린책들과 오종우 번역가의 기획 의도는 확인했다. 다른 선집들도 읽어 볼 예정이다. 수록작을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기획 의도가 반영될 것이고, 선집 두어 권을 읽으면서 해설을 보면서 체호프를 해석하는 한국 사회의 관점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푸시킨, 카람진의 단편들을 엮은 <사회적 약자>라는 책도 있다. 노골적인 계몽 도서 같아 손이 안 간다.
출판사들은 사회의 흐름을 읽어 책이라는 상품을 생산한다. 출간된 책들의 제목들만 살펴 봐도 한국 사회의 흐름이 얼핏 보인다. 체호프와 19세기 러시아 사회 이상으로 당대의, 더 세밀하게는 20세기가 저문 시점에서 10년 정도 이어진 체호프 작품 출간 시기의 한국 사회를 출판계에서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체호프 읽기의 시작
열린책들 선집은 체호프 읽기의 시작이 될 것 같다. 다음은 문학동네나 민음사 선집을 생각하고 있다. 옮긴이 박현섭 씨의 번역이 궁금하다. 열린책들에서 체호프 희곡 선집도 같이 나왔지만 왠지 희곡은 최후에 읽을 것 같다. 최종 작업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읽으면서 실제 연극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생겨서인지 잘 모르겠다.
책방 아카이브 파란에서 독서모임 도서로 처음 선택한 책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었다. 다음 토론 도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20년 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다. 체호프와 함께 읽는 도스토옙스키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이 글은 책방 아카이브 파란의 독서 모임 후 쓴 글로 네이버 아카이브 파란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