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할머니댁에서 명절상을 받았다

소롱골 마을 이야기

by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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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에 마을 할머니댁에서 명절상을 받았다.


며칠 전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식혜를 들고 오셨다. 할머니 성격만큼 깔끔한 식혜였다. 설날 오후에 그 통을 돌려 드리러 갔다. 물론 그 통에는 선물을 꽉꽉 담고.

걸어서 2분 거리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만 드리고 나오려는데 상을 펴신다. 걸음도 빠르고, 손도 빠른 분이다. 말릴 새도 없이 상에 젓가락부터 올랐다. 조용한 집에 전자렌지 소리가 부산하고, 먼지 하나 없는 마룻바닥에 급히 떠낸 식혜가 조금 흘렀다.

잡채, 오징어식해, 도토리묵, 어전, 육전, 식혜까지. 주시는 걸 다 먹으니까 저녁 생각이 안 날 만큼 배가 불렀다.


몇 달 전에 할머니는 마을의 사고뭉치 할배의 못난 행동에 곤욕을 치렀다. 그 얘기 듣고 할머니와 나는 함께 욕을 했다. 같은 방향의 욕은 평화를 부른다.

작년에 자식 앞세우시고도 씩씩한 척 지내는 할머니와 함께 씩씩대면서, 나는 성을 갈았다. 나는 김 씨, 할머니 아들은 엄 씨. 그래서 검 씨 하기로 했다. 어머니로 모시기엔 아드님 기억을 건드릴 것 같아 큰어머니 하시라 했다. 이제 난 때때로 검동현이다. 그 나이만 먹은 XX가 행패 부릴 때는 광전사 검 씨다.


살뜰한 밥상에 오른 건 모두 손수 장만하셨다. 저 도토리묵 한 번 쑤려면 팔뚝이 다 쑤신다. 잡채도 손이 많이 간다. 한 입 먹는데 그 많은 재료를 다 따로 볶은 게 느껴진다.

먹일 사람이 있어야 만들 음식들이다. 평소에도 손주들은 할머니를 애틋하게 챙긴다. 진작에 이혼한 며느리는 그저 손주 어머니가 됐지만서도, 옛 시어머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살핀다. 아들이 가도 남은 이들이 모인다. 할머니는 이들을 먹여야 한다.


가족이 가고 고요한 집에 얼결에 조카 삼은 이웃이 찾아갔다. 전자렌지로 데워도 냉장고 냉기는 어설픈 온기가 되어 군데군데 남았다. 그래도 파인다이닝이다. 가장 좋은 걸 서둘러 내온 음식상은, 그 마음이 넘쳐서 최고다. 일하느라 설을 그냥 보낼 뻔했는데, 명절상 대접받고 제대로 설을 쇤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부모님이 보내 주신 비가림하우스 감귤을 받았다. 내일은 다디단 감귤 한 봉지 들고 소롱골 큰어머니댁에 가야겠다.



동네 할머니께 추석상을 받다(s).jpg 마을 할머니댁. 2026년 2월 17일.
동네 할머니께 추석상을 받다(s)_1.jpg 마루를 방으로 사용한다. 좀처럼 전등을 키지 않는 집에 채광이 좋은 마루는 참 좋은 생활공간이다.


동네 할머니께 추석상을 받다(s)_2.jpg 침대는 수납장이 됐다.


동네 할머니께 추석상을 받다(s)_3.jpg 이 사진을 보면서 이 마을이 집성촌인 것을 새삼 떠올렸다.
동네 할머니께 추석상을 받다(s)_5.jpg 신나게 바쁘신 할머니. 누굴 먹이는 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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