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잔을 쓰는 이유

KINTO UNITEA 350ml

by 김동현

유리잔은 주변의 색까지 담는다.


친구가 선물한 우롱차는 연노랑이 조금 섞인 맑은 연두색이다. 우롱차는 섬세하고 풍성한 맛을 품고 있으면서도 우리기는 쉬운 차다. 적정 온도와 시간의 폭이 넓어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여유롭게 차를 우릴 수 있다. 세심하면서 편안한 게 꼭 그 친구 같다.


남향집 거실창 유리로 들어오는 초봄의 햇빛은 옅은 파랑이 섞인 초록색이다. 철분이 많이 섞인 창유리는 초록을 빛낸다. 찻잔 가장자리(rim)가 머금은 색은 아마 팔할이 거실창 파랑-초록일 거다. 늦봄에 마당의 벚나무 살구나무 회양목 이파리의 엽록소가 반짝이면 초록은 더 짙어진다.


탁자등의 부드러운 노란빛은 유리잔과 찻물을 통과해 바닥에 닿는다. 책방을 준비할 때 어느 디자인 박람회에서 산 탁자등이다. 이 등을 켤 때는 그때의 불안한 희망이 떠오르곤 한다.

거실창으로 들어온 햇빛과 탁자등의 빛으로 나무 탁자에는 두 개의 얼룩이 생겼다. 나무가 오일을 먹어 만든 얼룩에 흔들리는 빛이 얼룩지면 어느 열대림과 우리집 마당과 대만의 차농장과 책방이 겹친다. 유리찻잔은 시공간을 모으는 렌즈가 된다.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은 곤충의 겹눈과 같다. 하나하나에 풍경이 담긴다. 멀리서 보면 희뿌옇고 자세히 보면 투명하게 주변을 비춘다. 낱낱이 관찰하기는 어려운, 개념으로 보는 풍경이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다른 무수한 풍경들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재구성해 보는 놀이를 한다.


차를 선물 받고, 편안하게 우린 차를 유리잔에 담는다. 찻잔은 가볍고 얇아서 내 손에는 찻물만 들린 것 같다. 찻잔 가장자리에 입술이 닿는다. 찻잔에 담긴 빛이 내 입술에도 닿았을 거다. 차를 마시는 건 이렇게 멋진 일이다. 차를 선물해준 친구가, 이 유리잔을 만들고 전달해 준 분들이 참 고맙다.


킨토 유리 찻잔.jpg KINTO UNITEA 350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