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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Nov 18. 2021

82년생 김지영이 메타버스에 올라타면 좀 나아질까

메타버스가 워킹맘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4차 산업 혁명을 넘어 N차 산업혁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메타버스에 올라타지 않은 인류는 곧 멸종할 것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전업주부라는 말도 곧 시대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온라인 속으로 뛰어들었고, 단순한 취미생활을 뛰어넘어 그 안에서 생계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타닥타닥 키보드 앞에 앉아 있노라면 나름 다가올 미래를 현명하게 준비하는 여성 CEO가 된 듯하다.


그러나 키보드에 가려진 현실은 여전히 봉건적이고 차별적이다.

© amyhirschi, 출처 Unsplash



나 역시 재택근무를 하며 대부분의 일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자발적 의사라기보다는 육아와 가사를 일과 병행하는 일이 버거워 매일매일 남편과 전쟁을 치르다 99% 강제적으로 집에 들어앉았다. 재택근무이다 보니 여전히 맘 편히 육아와 가사만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일터와 쉼터의 경계는 애저녁에 엄마들에겐 허락되지 않은 환상일 뿐이다. 코로나로 온라인 학습에 온라인 재택근무까지 시작되니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무한반복 업무 사이클이 돌아가는 것이다.



일하다 살림하다 애보다

살림하다 일하다 애보다...

시계가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게다가 남의편님은 본인이 출퇴근한다고 혼자 일하고 있는 것 마냥 착각을 넘어 망상을 떨고 앉아있다. 하긴, 집에서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출근하면 보이지 않으니까, 홈월드는 그에겐 없는 세상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래, 이 구역은 내가 감당할 테니

그대는 돈이나 많이 벌...... 에혀~~~ ㅠㅠ

© lizziet5, 출처 Pixabay




나는 육아와 가사노동 그리고 엄마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많이 망설여진다. 웬만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싶어 진다. 그 단어들을 내뱉는 순간, 모든 원망과 분노와 서러움이 남편에게로 쏟아져 위태위태하게 영위되고 있는 나의 두 번째 가정생활을 무너뜨릴 것만 같아서이다.


어쩌자고 한번 했으면 되었지 또 결혼을 해서 내무덤을 내가 팠을까...



11년이 넘도록, 매우 자주 말했었다.


알아듣게, 이쁘게, 친절하게, 수컷들이 좋아하는 언어로.


呢未, 소용없다.



김창옥 강사는 남자들이 이쁘게 말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상대를 존중해주는 이쁜 말이 소통의 비결이라고 했다.


나도 해봤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님들은 그렇게 말하면 알아듣지를 못하더라. 아니,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결국은 짐승의 언어로 얘기해야 3일짜리 리액션이 나오는 것이다.

눈물을 동반한 서러움과 원망의 언어로

거칠게 몇 마디 강렬하게 쏟아내면

그 효과가 한 3일은 간다. 


슬금슬금 청소기도 만지고 설거지도

하는 척한다.

상대의 고통을 공감하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1도 들어있지 않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리액션.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 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p.144


그동안 지영이 처럼

얼마나 많은 절규를 쏟아 내었던가......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남편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여전히 남편은 하숙생처럼

집에 와서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 휴식에 들어간다.

게임하고 영화 보고...



<82년생 김지영>

저자 조남주

출판 민음사

발매 2016.10.14.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에 출간된 책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가사노동, 육아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책으로,

영상으로, 글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이 망할 놈의 시대착오적 이슈는 왜 바뀌지 않는 걸까?

82년생 김지영의 말은

왜 지금도 워킹맘들에게 메아리치는 걸까?



가끔 양성평등을 넘어 유토피아적인 가정생활을 꾸리고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남편과 가사 분담은 물론 육아에도 남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있단다. 또 어떤 경우는 전업주부인데도 남편이 퇴근 후에 저녁 준비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아내에게 외출 시간을 준다고 한다. 비현실적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몇 번씩 묻게 된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전생에 나라를 두세번쯤 구한 분이구려.....



우리 부부는 이제 더 이상 가사와 육아 분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냥 싱글맘이다 생각하고

감당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의 언어가 그의 귀에는 그저

외계어일 뿐이기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며

내 일을 지속하고 있다.


애는 커 갈 것이고,

나는 나를 감당할 것이다.


메타버스에 올라타면

82년생 김지영은 행복해질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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