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
15
레드는 자신이 의심받을 수도 있을것이라 생각은 했었지만 우선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 외엔 현재로썬 딱히 다른방법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모든것을 설명하기엔 상황이 역부족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드 자신이 경찰에 잡혀 갇혀있게 된다면 사건해결은 그나마도 물건너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경찰역시 레드를 용의자라고 믿고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으로썬 범인을 레드가 먼저 잡는것이 그 자신에게도 이득이었다.
그렇게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레드는 주변이 점점 조용해짐을 깨닫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후각을 빌어 주변상황을 점검했다. 경찰들은 그 특유의 제복냄새나 화약냄새가 몸에 베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비교적 쉽게 구별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이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눈을 감고선 잠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벤자민의 마지막 목소리가 서서히 들려오는것 같았다.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그가 마지막에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냐는 것이었는데 그는 아마도 마지막에 어떠한 단어 하나를 내뱉으려다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이름이었는지 장소였는지는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건 그것이 사건을 푸는데 중요한 단서였을거라는 사실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벤자민이 죽어버린 지금 레드는 다른 단서를 찾아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밝혀내야만 하였다. 그나마 그가 마지막에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오직 '앙코나' 라는 단어 하나였는데 그것이 이 모든것의 출발점이 될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델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벤자민은 마피아의 일원이었고 그렇다는 말은 벤자민 역시 앙코나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이 틀림없다는 뜻이었는데 레드는 앙코나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경찰이 자리잡고 있을거라는 위험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평소보다 좀더 단단히 준비를 마친 뒤 앙코나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기위해 역으로 출발하였다.
다행히 아시시에서 앙코나로 가는 길은 그렇게 까다롭진 않았다. 기차로 약 1시간 30분가량 지나면 도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다. 기차는 그렇게 차가운 이탈리아의 숲길을 조용히 지나치며 앙코나로 향하였다. 밖에는 그가 과거 살던곳과는 사묻 다른 여러 풍경이 그의 곁으로 무심히 흘러갔다.
그는 그러한 풍경을 보자 문득 건조한 바람이 스치던 자신이 살았던 척박한 옛 땅이 생각났다. 온통 깎아지는 절벽에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항상 건조함만을 유지했다. 언제나 물이 귀했으며 약한 생명체는 살아가기조차 힘든 그러한 곳이었다.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군.'
하지만 열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그는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곳의 상황은 밖의 저 호화로운 풍경에 비해 전혀 천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러니함이 그는 더욱더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소녀를 찾아야 한다.'
그는 인디언들속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소녀와 겹쳐지자 마음이 더욱 조급해져갔다.
그렇게 그가 생각에 잠긴 체 마치 끝나지 않을 듯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동안에도 기차는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아무 일 없는 듯 역에 도착해 하차방송을 내보내었다. 역에서 내린 그는 가장 먼저 주변을 살펴 다른 위협요소가 없는지를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그는 현재 용의자로 몰린 상태였기에 다른 때보다 더욱더 조심했다.
그가 역을 벗어나 곧이어 앙코나 항구 근처로 다가갔을때 그는 기중기를 비롯한 높은 철제물들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되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사람은 적어 한적했으며 여기선 밤에 무슨 일을 일어나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리속에 스쳤다.
그는 중간 지점쯤 이르렀을 때 가방을 뒤져 안에 챙기고 온 약초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비닐에 쌓여있는 벤자민의 혈액이 묻어있는 독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레드가 독침을 가져온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는 독침에 있는 벤자민의 남은 혈액으로 벤자민이 머물렀던 곳에 위치를 추적해낼 생각이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죽은 소들의 구름'과 증폭제 구실을 하는 '사슴의 눈'을 사용하여 쥐를 비롯한 바퀴벌레따위들에게 그 향을 인지시켰다. 그리자 그들은 예상했던 데로 항구 시작점쯤에 있는 조선소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분명히 조선소 안쪽에서 어떠한 유혈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짐승과 곤충들은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철망앞에서 멈춰서더니 안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도 역시 그들을 따라 철망쪽으로 다가갔다. 철망은 딱히 높아보이지 않았으며 어떠한 특별한 장치가 되어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 그는 주변을 한번 살핀 뒤 뒤쪽으로 갔다가 잠시 후 철망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몇 번의 발돋움 끝에 마치 기계체조를 하듯 번쩍 날더니 그는 가뿐히 철망을 뛰어넘었다. 넘어와서 보니 그의 눈에는 안쪽 길이 이어진게 어딘가로 연결되있는것처럼만 보였다. 앞쪽에서는 짐승들이 이미 그 답을 아는지 그를 앞질러 부지런히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들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그리고 길 끝에 다다르자 앙코나 항구의 중심이 그의 눈앞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그들은 다시 배수로쪽으로 이동해 결국 안쪽 구덩이에 있는 이상한 철문앞에 다다르고서야 멈춰설 수 있었다. 안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고 음침한 분위기가 사묻 거북스러웠지만 잠기지 않고 살짝 열려있는 문이 마치 그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처럼만 느껴졌다. 그는 마지못해 철문을 열고선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알수없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같은것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런 곳에 이런시설이 다 있군. 경비실 같은 건가? 아니면 대피소?'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퀴퀴한 냄새 코를 찌르며 먼지가 가득한게 도저히 누군가가 살거나 이동해 다니기엔 부적합해 보였다. 천장을 보니 전구들이 차례로 매달려 있긴 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지 딱히 스위치가 보이지 않자 그는 별수 없이 라이터를 꺼내들 수 밖에 없었다. 들어갈수록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그를 엄습해 왔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어갔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자 또하나의 철문이 다시금 등장해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이번엔 닫혀있는 문을 확인하고선 문의 손잡이를 잡고선 힘을 주었다. 하지만 문은 잠겨있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있을 리가 없지.'
그는 노크를 해봤지만 역시나 조용한 응답에 문을 열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어떤 특별한 용액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 용액은 강한 부식반응을 빚어내는 용액으로써 독성이 있는 동물들은 이 용액의 원료약초들에서 독을 흡수하곤 했다. 그 약초의 이름은 '사막개미'로써 이 부식성 물질의 이름은 사막에 사는 개미에게서 딴것은 아니었다. 이 약초를 게운 물이 한 방울만 피부에 닿아도 사막에 있는 불개미한테 물어뜯기는 것 같다 하여 그 고통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는 그러한 이 산성의 용액을 걸려있는 자물쇠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곧이어 쇠가 타는듯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자물쇠가 거칠게 끓어오르며 반쯤 녹아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그 동작을 멈추고선 주변의 뜯겨있는 벽돌을 한개 집어들고서는 그 자물쇠를 향해서 강하게 내리쳤다. 조용한 지하를 울려대는 그 큰 굉음은 그 고요함을 몰아내더니 결국 튼튼했던 자물쇠를 힘없이 부스러트렸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그는 그의 예상과는 다른 그곳을 보고선 반쯤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누군가의 최근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 약품들로 보아 직업이 의사쯤 되는 누군가가 이곳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었던것이 분명했다.
'의사가 이런 곳에서 일하다니. 벌이가 시원치 않았나?'
그는 시원찮은 농담을 속으로 중얼거리고선 마져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때 열린 문틈으로 자신이 풀어놨던 쥐떼와 곤충들이 그의 뒤를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곳을 향해 모여들었는데 그건 바로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이었다. 그는 쓰레기통에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하고선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여러 거즈와 빈약품들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통을 흔들어보니 안쪽에서 알수없는 굴러다니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쓰레기통을 뒤짚어 바닥에 조심스럽게 쏟아냈다. 순간 어떤 금속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밖으로 굴러 떨어져 나왔는데 그는 떨어진 금속을 주워서 무엇인지 확인해보았다. 그것은 탄알이었다.
'곤충들이 찾던 게 이것이었나 보군. 누군가 총상을 입은 모양인데 혹시 벤자민자신인가? 만약 벤자민이 총상을 입었다면 벤자민은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치유를 받았던 것이 분명한데...'
그는 다시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역시 스스로 치료하기엔 너무 전문화돼 있어. 벤자민이 딱히 의사자격증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누군가 함께 있었던 것이 분명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는 다른 침대쪽에 저쳐져 있는 어떤 수상한 커튼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또다른 혈액들이 흩뿌려져 있었는데 곤충과 쥐떼들의 관심이 쓰레기통에 쏠린 것을 보면 그것이 벤자민의 혈액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온것만 같았다. 그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혈액 일부를 채취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해온 도구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막 작업을 시작하려 할 때쯤 갑자기 바깥쪽에서 발자국소리 비슷한 것이 그에게로 들려왔다. 그는 그것이 이 장소의 주인또는 관련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탄알만을 챙긴채 그의 몸을 커튼뒤쪽으로 숨겼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는군.'
얼마 후 조용해진 틈을타 몸을 살짝 숙여 문밖을 확인해 보았지만 이미 기척이 사라진 후였는지 결국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는 어쩔수 없이 작업을 마무리하고선 지하바깥쪽으로 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그는 다시금 맞이한 상쾌한 바람을 제대로 느낄새도 없이 먼저 그리디를 찾기 위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그리디는 보이질 않았고 대신 다른 어떤한 물체가 그에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프로펠러를 부착하고 있었다.
'드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수상해 보이는 드론이 저 멀리서 마치 누군가를 감시하듯 제자리를 빙빙 돌며 비행하고 있었다. 그는 그 드론의 목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일단은 그 시야에서 벗어나는것이 좋을 거라 판단하고 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였다.
"거기서!"
웬 사내 하나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낯설지가 않은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는 사내가 레드 자신이 벤자민의 죽음을 마주했을 당시 제일 먼저 나타난 바로 그 남자라는 사실을 깨닭았다. 총을 지니고 다니는걸 보면 무슨 형사나 검사쯤 되는것 처럼 보였다.
'그렇군. 역시 날 범인으로 알고 있어.'
레드는 총을 겨눈 그에게 일단은 두손을 들어 항복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곤 멈춰섰다. 그런 레드를 보고 그, 바로 아틸리오는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그래. 혹시나 했지만 역시 너였군. 그 특이한 귀걸이는 좀 바꾸질 그랬나."
레드가 답했다.
"각자 자기 취향이 있는것이라 생각하는데...그리고 지금 내가 특히나 해야 할 일이 많거든."
레드는 슬며시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좀전엔 보이지 않았던 그리디가 어느새 넓게 하늘을 그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런 그리디를 바라보며 그는 살며시 입을 모아 휘파람을 불었다. 아틸리오가 이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 잘도 휘파람을 부시는구먼."
"그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뭐?"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웬 커다란 검은 새 한 마리가 아틸리오의 손에 있는 권총을 쥐고 날아가 버렸다.
"뭐야?!"
그 새를 보자 아틸리오는 낚아채간 총은 아랑곳하지않고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는 자신이 대낮에 무슨 배트맨 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저선 저멀리 날아가고있는 그리디를 바라봤다.
"그럼 이만."
레드는 그런 그를 뒤로하고 아틸리오가 있는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틸리오는 그를 쫓아 뛰어봤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나이도, 먹은 음식도 너무나 많았다. 아틸리오는 하는 수 없이 다시금 무전기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의 드론은 더이상 응답하지 않았고 대신 해안가 쪽에 지금 막 생긴 어떠한 고철덩어리 하나가 물에 빠져 조금씩 가라앉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 큰 새가 드론까지 망가뜨려놓은것이 분명했다.
"이런 제기랄."
그는 입고 있던 겉옷을 집어던지며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본 카이오가 멀리서 허겁지겁 뛰어오며 그에게 말했다.
"검사님 아무래도 우리쪽 드론이 망가진것같습니다."
아틸리오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런 그를 해안가쪽으로 불러세웠다.
"그 망할 드론이 지금 여기 빠졌다. 그나마 건진것들을 보려면 녀석을 다시 회수해야되."
마지못해 아틸리오는 그들의 수사팀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는 그들에게 현재상황을 얘기하곤 이어서 기차역을 비롯한 모든 이동수단을 주시하라 명했다. 그러고선 그는 다시 카이오에게 물어보았다.
"기중기든 뭐든 이용해서 드론을 건져봐. 너 혹시 기중기 사용할 줄 아나?"
카이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말을 들은 아틸리오역시 고개를 저으며 조선소 관리소를 찾아 힘없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