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CITY_1_12

낯선이

by Jb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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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로마의 세르벨리타 공원. 한 남성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약을 판매하기 위해 그저 부랑자들이나 떠돌이 약쟁이들을 만나겠지만 지금 그가 기다리는 건 그런 인생의 변두리쪽 사람들이 아니었다. 몇 주 전 중독자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우아한 여성으로써 늘 마약에 쩌들어 있던 그에게 따스하게 다가와 손을내민 그러한 특별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그녀의 진심 어린 모습에 이내 마음을 열었고 그렇듯 그는 이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녀는 첫만남부터 자신이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그를 도와주겠다고 선언했었고 그렇게 헌신적인 그녀는 이제 그의 연인으로써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하였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연인이 되기 전부터 이미 그만의 천사 이상의 존재나 마찬가지였기에 비록 그가 아직 마약을 끊지는 못했지만 이제 곧 공원의 작은 은신처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면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조차도 얼마안가 치유될 것임이 분명하였다. 적어도 그역시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달콤한 생각에 빠져있는 그때 시간은 이제 막 오후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늦는군."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입에 물고는 여성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앞섰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의 행복해질 미래에 대해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곧 8시 30분을 가르켰고 공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공원은 서서히 그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에겐 이 공원은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고 딱히 갈 곳이 없는 그에게 다 쓰러저가는 건물들은 언제나 그의 유일한 쉼터가 되주었기에 그는 늦은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이 오히려 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한 생활도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뀔 차례라 그는 생각했다. 여성을 만나고 자신이 정말로 마약을 끊고 정신을 차리기만 한다면 제대로된 일자리를 구하는것도 딱히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솔직히 언제까지나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경찰들의 강화된 단속에 알게모르게 잡혀간 이들역시 한둘이 아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일테고 남자는 슬슬 이 일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때 저만치에서 익숙한 실루엣의 늘씬한 그림자가 하나가 그의 눈에 점점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림자는 서서히 가까워져만 갔고 그러자 그는 단번에 그 그림자가 그녀임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차갑기만 했던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자신을 감싸주었던 여성. 먼저 잡혀가 버린 동료들의 비하면 자신은 이 얼마나 행운아인가. 그녀는 오늘따라 유독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리고 서서히 그녀가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냐. 얼마 안 됐어."

"오는데 차가 막혀서...좀 더 일찍 왔어야했는데 미안해요."

"미안해할 것 없어. 당신이 와준 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얘기를 마침과 동시에 남자는 여성에게 다가가 가볍게 키스를 건넸다.

"자, 그럼 이제 우리의 보금자리로 가볼까나?"

남자는 여자의 팔을 붙잡고 공원의 외딴곳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곳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2층짜리 을씨년스런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현재는 남성이 사는 집이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폐가는 밤이 되자 그 어둠이 더욱 짙어져만 갔고 그곳은 딱히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남자는 안쪽에 미리 마련해둔 촛불로 폐가를 언제나 밝히곤 하였다. 그는 으레 그랬듯 폐가에 들어서자 그가 준비해온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자신이 마련해둔 촛불이 안쪽에 준비되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두웠기에 그는 라이터의 힘을 빌려야만 하였다.

"조심히 올라와. 방은 2층에 있어."

남자는 점잖게 여자를 에스코트하여 2층 방으로 이끌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조심히 올라갔다.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의 방은 딱히 방이라도 할 것도 없이 별거 아닌 낡은 가구들만이 이리저리 자리 잡고 있었고 중간에 오래된 붉은 커튼이 하나 있었는데 그옆에 탁자와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남자는 준비해둔 초들에게로 다가가 하나씩 불을 밝히었다. 이내 주변이 밝아지자 그는 뒤돌아서는 여자를 두손으로 번쩍들어올리더니 마침내 그녀를 침대쪽으로 이끌었다.

"다왔습니다. 우리 공주님."

남자가 그리 말하자 여자는 수줍게 미소지었다.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턱선이 더욱더 아름답게만 빛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보이는 여자의 실루엣이 그 곡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자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 손을 올렸다. 따스한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둘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바람역시 그들에게 동요하는지 촛불 하나를 흔들어대기 시작하였다. 뒤에 있던 커튼 역시 이에 동참하듯 조금씩 팔락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는 커튼은 마치 춤을 추듯 서서히 그 움직임을 더해 더욱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더없이 좋은 밤이군."

남자는 적어도 그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좋은 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나부끼는 커튼사이에 불길한 그림자가 숨어있을지는 남자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서서히 방안에 모습을 드러내고선 침대에 있는 남자의 뒤쪽으로 다가섰다. 그러더니 손아귀에서 달빛에 반짝거리는 긴 피아노줄을 양손에 쥐고선 그러한 남자의 목을 감쌌다.

"커억!"

날카로운 피아노줄이 남성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피아노줄이 목을 파고들자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여자는 그 틈에 자리에서 일어난 뒤 검은 그림자의 주머니에서 돈 한 뭉치를 꺼내 들었다.

"너와 엮이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 역겨운 거렁뱅이야!"

여자는 몸부림치는 그에게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돈 한뭉치와 함께 그의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어리둥절한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흐려져가는 의식속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도 검은 그림자는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남자의 목을 더욱 세게만 조여갔다. 힘으로 보아 그림자는 적어도 남성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숨이 거의 멎어갈때쯤 그의 귓가에 한마디 조소어린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같은 쓰레기를 저런 여자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나?"

검은 그림자는 손에 힘을 더하였다. 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나 싶더라니...빌어먹을.'

남자는 그런 여자한테 속아버린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면서도 더는 여자를 원망하진 않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헛된 꿈이었지만 잠시나마 그에게 달콤한 꿈을 안겨준 여자지않던가. 그는 몸부림을 치면서도 좋은기억만을 담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부림은 그와 함께 서서히 멈춰져만갔다. 꺼져가는 촛불들이 이어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뒤쪽에서 그러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그림자는 그런 그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는듯 죽음을 마무리짓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독극물을 한손에 꺼내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주사기에 담아들더니 그의 목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였다. 이로써 남자는 영영 깨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가 죽은 걸 확인하자 그림자는 남자의 팔을 장갑을 낀 손으로 세게 움켜잡고선 그를 질질끌고가서는 창문을 열고 그 아래로 그의 시체를 던져버렸다. 시체는 뼈가 부러지는듯한 소리를 내는듯 하더니 곧이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고통에 찬 비명은 들려오지가 않았다. 시체는 결국 다음날 아침 공원으로 조깅을 하던 어느 한 여성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아틸리오는 그 몰골이 어찌나 처참해서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남성의 시신을 살펴보며 그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이런 별볼일 없는 남성이 왜 이런 외딴곳에서 혼자 죽어있는지가 의아했다. 정확한 사인은 곧 밝혀야지겠지만, 목이 졸린 흔적으로 보아 타살임에는 분명하였다. 더군다나 이 시체 역시 목에 주삿바늘이 나있지 않던가. 아틸리오는 주삿자국을 보더니 벤자민의 시체를 그의 머릿속에 떠올렸다.

"벌써 세 명째군. 그 녀석이 분명해."

"범인은 벤자민씨가 아닙니까?"

아틸리오는 카이오에게 자신이 봤던 장면을 저번과는 다르게 다시한번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벤자민씨를 왜 죽인 거죠?"

카이로가 되묻자 아틸리오가 대답했다.

"아마 벤자민이 비밀을 알고 있어서겠지. 범인은 공범임이 틀림없어. 벤자민이 잡히게 되면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 테고 그래서 죽여버린 거지. 자신은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으니깐 말이야. 물론 막판에 내가 그놈을 봐버렸지만."

아틸리오는 카이오에게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면서 눈앞에서 놓친 레드를 떠올렸다.

"그놈은 이제 독 안에든 쥐야. 내가 그녀석 얼굴을 봤어. 멕시코쪽 사람같던데. 귀걸이도 특이했지."

아틸리오는 카이오에게 펜과 종이를 부탁했다.

"무엇에 쓰시려고요?"

아틸리오는 종이에 대고 펜으로 무언가 쓱쓱거리더니 그것을 카이오에게 보여줬다.

"알아보겠나?"

한참동안 종이를 바라보던 카이오가 말했다.

"연습 좀 하셔야겠는데요."

아틸리오는 예술과는 담을 쌓은지 오래였기에 그의 그림을 알아본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가자신을 알아보는것보다 힘들었다. 아틸리오는 카이오의 말을 듣자 종이를 구겨서 던져버렸다.

"망할...근처 CCTV나 좀 살펴봐야겠어."

그렇게 아틸리오는 툴툴거리며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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