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배심원 선정을 앞둔 아침은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다. 사건을 배당받고 재판부가 정해지면, 양측 대리인들은 판사와의 컨퍼런스에서 주요 쟁점, 예상 재판 기간 및 배심원 선정 기간 등을 조율한다. 그렇게 일정을 정한 다음 날 아침이면, 드디어 배심재판(jury trial)의 본무대를 향한 첫 관문, 배심원 선정 절차(voir dire)가 시작된다.
법원에 도착하면 변호사들은 ‘Attorney Room’이라는 작은 대기실로 향한다. 커다란 테이블 몇 개와 낡은 의자가 놓인 공간으로 일종의 전초기지, 재판을 맡은 대리인들이 대기하거나 준비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몇몇 변호사들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넘기고, 노트북을 보거나 메모를 정리하며 각자만의 루틴을 소화해 내고 있다. 배심재판까지 가는 사건은 전체 중 극히 일부이기에, 배심재판을 수행하는 소송변호사(trial attorney)의 수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이 방에서 만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어디선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모르는 얼굴이라도 “Good morning”을 말하며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이 공간의 오래된 예절 같은 것이다.
그날 나는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남성 변호사 옆에 앉았다. 그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여유가 배어 있었다.
“배심원을 선정하는 첫날은 항상 긴장돼요. 배심재판이 있는 날은 점심도 맛이 안 느껴질 정도예요."
나는 그의 여유로움을 부러워하며 말을 건넸다.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래요. 재판만 30년 넘게 해 왔지만, 아침에는 긴장이 돼서 뭘 먹지를 못해요. 오늘도 아침을 거르고 왔죠.”
그러자 그의 옆에 앉아있던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 변호사도 대화에 끼며 말한다. "사실 나도 그렇답니다. 나는 심지어 하루 종일 배가 고프지 않다니까요."
그 말에 우리 셋 모두 함께 웃었다.
그들의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일을 30년 해온 베테랑도 여전히 긴장한다니, 내 불안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나처럼 긴장의 공기를 삼키고 있던 그들은 내 사건에 건투를 빌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예비 배심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 짧은 복도를 걷는 동안, 문득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과연 나도 이 일을 30년이나 계속할 수 있을까?’
몇 년 뒤 나는 한국에 귀국하여 뉴욕주 민사소송 변호사가 아닌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인하우스(외국 변호사)라는 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의뢰인과의 첫 상담(intake), 소장 작성부터 미국 민사소송의 '꽃'이라 불리는 배심재판까지의 강렬하고 치열했던 그 경험은 생생하다. 그 발자취를 기록하며, 누군가에게는 실무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소송 단계 별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보려 한다.
그 이야기의 첫번째로, 미국 민사소송 실무에서 의외로 간과되기 쉬운 단계인 의뢰인과의 첫 만남부터 시작하겠다. 소장을 제출하는 순간부터 비로서 사건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intake 단계에서 사건의 윤곽과 방향성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 단계에서 내리는 사소한 판단 하나가 사건의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뉴욕주에서 중재와 배심재판을 포함한 수많은 민사소송 사건을 직접 수행한 변호사가 intake 단계부터 소장 제출 직전까지 실무 현장에서 마주한 고민과 결정의 순간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