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배심재판에서 새로운 증거가 갑자기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하고, 사건이 극적으로 뒤집히는 장면.
그런 결말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미국 배심재판은 다르다. 재판 전에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모든 증거가 사전에 공개되고, 증거심리절차(evidence hearing)를 통해 증거능력이 인정된(admissible) 증거만이 배심원에게 제시된다. 따라서 '서프라이즈'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당사자의 진술의 불일치,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탄핵(impeachment)은 때로 치명적인 반전을 만든다.
뉴욕에서 타인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중대한 신체적 손해(serious injury)를 입으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차량 충돌의 유형 중 하나는 교차로에서 발생하는 사고이다.
소송 중 증언녹취(deposition)를 진행할 때, 당사자들의 진술은 거의 예측 가능하다.
원고는 “나는 파란불일 때 교차로에 진입했다”라고 하고, 피고도 “내가 파란불일 때 진입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둘 다 파란불에 진입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증언녹취 이전 의뢰인과의 미팅 중 내 의뢰인 역시 나에게 자신이 파란불에 교차로를 진입했다고 말한다.
경찰 기록을 확인하니, “양 운전자가 서로 상대방이 신호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목격자 란은 공란이었다.
때로 의뢰인은 자신의 대리인에게 진실을 숨기기도 하고, 기억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진술을 하기도 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대리인도 있으나, 나는 대리인이 진실을 정확히 알아야 사건에 불리한 사실에 대해 적절히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증언녹취에 앞서 의뢰인에게 모의 증언녹취를 진행하며 상당히 세부적인 질의를 하게 된다.
“처음 파란불을 봤을 때, 교차로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었나요?”
“반블록 정도요.”
온라인으로 지도를 확인해 보니, 그 구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반블록 주행 중 신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 구간을 주행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의뢰인은 머뭇거리며 답을 망설였다.
나는 소제기 전 보험회사의 요청에 따라 선서하에 진술한 내용이 기록된 Examination Under Oath (EUO) 녹취록을 펼친 후, 당시 보험사의 질문과 의뢰인의 답변을 읽어주었다.
“교차로 진입 시 신호등의 색깔은 무엇이었습니까?”
“황색이었습니다.”
만약 내일 있을 증언녹취에서 이와 다른 말을 하게 된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또는 향후 배심재판에서 쉽게 탄핵당할 것이다. 배심원에게 신뢰를 잃는 순간, 재판 결과의 향방은 기울게 된다.
나는 의뢰인이 자신의 녹취록을 읽도록 하여, 그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교차로에 진입 직전 파란불이었지만, 교차로에 진입하면서 황색으로 바뀌었던 것이 맞습니다.”
“그때 멈추지 않고 진입하신 이유는요?”
“이미 교차로에 진입 중이었고, 갑자기 멈추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좋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일도 그렇게 진실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뉴욕 민사소송법(CPLR 4514)에 따르면, 증인의 신빙성(credibility)은 과거의 진술과 현재의 진술이 불일치할 경우 탄핵(impeachment by prior inconsistent statement)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증인을 신문하는 측은 먼저 해당 진술을 증인에게 제시하거나, 그 내용을 명확히 알려준 뒤 증인에게 이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물어야 한다. 증인이 과거 진술에서 중요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거나, 불충분하게 진술했을 경우에도 신빙성을 탄핵할 수 있다.
배심재판 중 탄핵을 받지 않도록 소제기 전부터 배심재판까지 일관된 진술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소제기 전 보험회사의 요청에 따라 선서 하에 진행되는 공식 질의응답 절차인 EUO에서는 보험회사의 담당자 또는 변호사가 사고 경위와 부상 정도 등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피진술자는 이에 대해 성실히 답변해야 하고, 녹취록(transcript)을 받게 된다. EUO는 모든 사건에서 의무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사의 요구가 있을 시 응해야 하며, 대리인이 동반할 수 있고 또 권장된다. 이 절차는 보험금 청구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계로 작용할 수 있다.
진술자는 성실하고 정확하게 답변해야 하며, 이때 기록되는 녹취록은 이후 소송에서 탄핵의 근거가 될 수 있다.
EUO에서의 진술과 이후 소송 단계에서 진행되는 증언녹취는 별개의 절차지만, 그 내용이 서로 충돌할 경우 배심원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의뢰인의 기억의 흐름을 정리하고, 과거 진술과의 일관성을 점검하는 과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신호등이 황색일 때 교차로에 진입했다면, 과실 여부에 대한 다툼은 피할 수 없다. 내 의뢰인은 증언녹취 중 과거 진술과 일관된 답변을 유지하였고, 무엇보다 진정성을 잃지 않았다. 상대방 대리인의 집요한 질문에도 흔들림 없이, 기억나는 사실만을 차분히 말했다. 그 태도는 배심원단 앞에서도 통했을 것이다. 결국 상대방 대리인은 배심재판까지 가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져 사건은 종결되었다.
‘진실’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진술의 일관성은 배심원에게 진실을 가려내는 하나의 기준이자 증거가 된다. '진술이 진실이냐'는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증인의 말이 얼마나 일관되고 믿을 수 있느지를 판단하게 된다. 즉, 증언의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증언이 일관될 때 배심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반면, 증언의 불일치는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래서 때로 나는 배심재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일관된 진술이라고 믿는다.
의뢰인의 소제기 이전부터 소제기 후까지 이루어진 모든 진술은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술 간 불일치가 발견될 경우, 절차에 따라 수정을 하거나,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실제 사건 또는 특정인물을 의도한 바 없으며, 각색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