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gation: 발로 뛰는 변호사

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by 뇩변

뉴욕주 상해 전문 변호사(accident laywer)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차에 타는 것보다, 보행이 가장 위험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비행기 사고 확률은 극히 낮고, 경미한 차 사고로는 골절을 입지 않지만, 길을 걷다가 가볍게 넘어져 몸이 직접 충돌을 흡수하면 순식간에 뇌진탕이나 골절을 당할 수 있다.


뉴욕 한 여름밤의 조깅

한 여름의 뉴욕,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른 저녁이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조깅을 나섰다. 석양이 물드는 하늘, 동네 농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소리,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들, 길거리의 무성한 나무들과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의 정원까지, 뉴욕 주거지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평소의 코스대로 천천히 달렸다.
그러던 중, 발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몸이 앞으로 쏠리며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기도 전에 무릎이 인도에 강하게 부딪혔다. 꽈당.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군가는 하얘진다고 하는데 나는 흑암이 뒤덮이는 체험을 했다. 몇 분간은 고통으로 인해 넘어진 자세에서 꼼짝도 못했다. 몸을 일으키니 무릎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와 출혈도 문제였지만, 내 고통을 감안하면 골절 가능성도 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사고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넘어진 원인은 약 3cm 정도 들린 보도블록이었다.

오래된 블록에는 신축 공사의 흔적이 없으므로, 시공상 결함보다는 다른 요인이 원인이었다.

'그럼 보도블록 하자의 원인은 무엇일까?'

주변을 살펴보니 길가에 오래된 가로수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두꺼운 뿌리가 땅을 비집고 올라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뿌리의 일부가 인도 아래로 뻗어 콘크리트를 위로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른바 tree root lifting. '이 나무가 뉴욕시 소유라면,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이 가능하겠군.'

나는 피 흘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보도블록의 하자, 가로수의 뿌리, 인근 주택, 부상 부위를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나는 직업병 탓으로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심문했다.

'당신은 그때 핸드폰을 보고 있었나요?” “아니요,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들림 현상이 심하다고 했는데, 넘어지기 5초 전, 어디를 응시하고 있었죠?" "물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넘어지기 5초 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상당한 들림 현상을 못 봤다는 것이죠?" "네..."

"넘어지기 3초 전 그리고 직전에도요?" "네..."

"늘 다니던 조깅 코스라고 했는데, 이 구간의 보도블록에 들림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요?" "음..."

평소 다니던 조깅 코스였기 때문에 내 주의부족이 사고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전에는 넘어지지 않다가 하필 이 날 넘어지게 되었을까?

나는 다시 현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득 주변이 평소보다 어둡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더 늦은 밤에도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었는데, 내가 넘어지게 된 이날, 이 구간의 가로등만 유독 꺼져 있었다. 이 점은 뉴욕시의 과실로 책임을 이전할 수 있는 요소였다. 가로등은 그다음 날 수리되어 다시 환하게 작동될 수도 있을 터, 내가 이날 현장에 있었기에 확인할 수 있었던 진실이었다.

“네,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날 가로등이 꺼져 있어 어두운 관계로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드디어 내 상상 속 답변에 만족하며,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골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어나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한편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그만큼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된 것 같다.


Trip and Fall

서울이나 분당의 완벽하게 정비된 보도블록과 깔끔하게 가꾸어진 가로수를 보면 감탄하곤 한다. 잘 관리되어 있는데도 보도블록을 새로 교체할 때는 낭비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뉴욕은 오래된 주거지역이 많고, 특히 오래된 나무가 많은 지역에서는 나무뿌리가 종종 위험 요소가 된다. 뿌리가 자라면서 인도의 일부 보도블록(flag)을 들어 올려 인도의 높이가 불균형하게 되거나 금이 가기도 한다. 이러한 불균형한 인도 상태는 대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며, 뉴욕시에서 보행자 넘어짐 사고(trip and fall)의 원인이 된다. 수직 방향으로 1/2인치(약 1.27cm) 이상 들린 인도는 뉴욕시 규정상 상당한 위험(substantial hazard)으로 간주된다. 가로수의 소유권이 개인 소유자에 있다면 해당 소유자에게 관리 책임이 있지만, 뉴욕시 인도에 심어진 대부분의 가로수는 뉴욕시(New York City Department of Parks & Recreation)가 소유하고 관리한다.


뉴욕시 행정법(Administrative Code) §7-210에 따르면, 부동산 소유자는 자신의 부동산에 인접한 인도를 합리적으로 안전한 상태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설치·시공·수리·교체 등으로 인해 손상된 인도나 파손된 보도블록으로 인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 및 신체적 상해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해당 인도가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는 1~3 가구 규모의 다가구 주택에 인접하며, 전적으로 주거용으로만 사용되는 경우라면, 뉴욕시가 인도의 유지·관리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


다만, 피고가 뉴욕시일 경우에는 일반 개인이나 건물주를 상대로 한 소송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와 제한이 따른다. 뉴욕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 후 90일 이내 뉴욕시에 통지(Notice of Claim)를 해야 하며, 원고는 뉴욕시가 직접 위험을 초래했거나,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실무적으로, 뉴욕시에 인도의 결함에 대한 사전 통지 또는 위험 신고가 접수된 사실이 있었는지가 소송 초기 핵심 쟁점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디스커버리를 통해 밝혀지게 되며, 만약 뉴욕시가 이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뉴욕시가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로 뛰는 변호사

민사소송 변호사들은 사건 초기 현장을 반드시 직접 방문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하는 변호사들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로펌의 법률보조직원(paralegal) 또는 외부 조사업체가 사진, CCTV, 증인 진술 기록 등을 확보하며,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 변호사는 서면과 기록을 통해 먼저 사건의 사실관계를 분석한다.

그러나 내가 다치고 현장을 조사해 보니, 사건의 디테일은 역시 현장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주로 법원에서 뛰어 다녀야 했다. 매일 법원 출석, 변론 준비, 서면 작성 등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 모든 사건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건이 합의되지 않고 배심재판까지 진행되는 민사 사건에서는, 구글 지도나 사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져서 직접 현장을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고 주변을 탐색하게 되었다.


사무실에 절뚝거리며 들어가자 동료 변호사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이건 무조건 소송감이야. 여자 다리에 흉터가 남으면 손해배상액도 더 올라갈 거야. 내가 네 대리인 해줄게."

나는 웃으며 답했다.

"내가 무슨 모델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손해배상액이 올라가겠어? 소송하면, 지긋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난 안 할 거야. 그리고 한다면, pro se(대리인 선임 없이 진행하는 일명, '나 홀로 소송')로 하겠어."


동료들의 부추김에도 나는 뉴욕시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소송변호사인 나는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내 부상은 경미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약 6개월 동안 무릎에서 딸그락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평소 하이힐을 즐겨 신었지만, 그 시점 이후로 단화를 신는 계기가 되었고, 무릎에는 작은 흉터가 남았다.

나는 이 희생을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뉴욕시가 인도의 결함을 인지하여 사고를 예방하거나, 유사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소송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해당 인도 및 가로수 하자에 대해 뉴욕시에 서면으로 통지하여 뉴욕시 거주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였다.

그렇게 내 무릎의 흉터는 영광의 흔적으로 남았다.


실무팁

사고 직후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 특정이다. 인근 주택 또는 상업용 건물의 주소 및 사고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기록한다. 또한, 인도의 상태(들림, 균열, 파손 정도), 주변 환경(가로수 뿌리의 돌출, 조명 여부 등)을 다각도 사진 및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뉴욕시를 상대로 소제기를 하는 경우, 사고 발생 후 90일 이내 클레임(Notice of Claim)을 뉴욕시에 제출해야 하므로 신속히 클레임 준비를 해야 한다. 뉴욕시는 소제기 전, ‘50-h Hearing’이라 불리는 진술 절차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이는 사실상 증언녹취절차로, 향후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진술과 불일치 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 따라서, 변호사와의 조기 상담을 통해 사건 경위서 및 증거 제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겉보기에는 경미해 보여도, 실제로는 골절 또는 뇌진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응급실 또는 조기 진료를 받는 것이 적절하며, 이러한 초기 의료 기록은 향후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 인과관계(causation)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실제 사건 또는 특정인물을 의도한 바 없으며, 각색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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