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저 사람은 클라스가 달라.”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말해본 적, 혹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인생에 ‘클라스’를 매긴다는 발상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인생은 존귀하니까.
그러나 뉴욕에서 개인 상해(personal injury)나 산재(workers’ compensation) 사건에서는 ‘클라스’ 내지 '등급'이 존재한다.
그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최대 규모의 잠재적 배상금액이 예측되는 사건, 이른바 VIP 사건이 있다.
뉴욕에서 각종 상해 및 산재 사건을 수임하면, 사건 초기 단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의뢰인의 과실 기여도, 초기 부상의 심각성,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 보험회사의 보험 한도(policy limit)다. 이를 바탕으로 사건의 대략적인 가치(value)를 예측하게 된다. 물론 이 시점의 평가는 말 그대로 예측에 불과하다.
의뢰인의 치료가 진행되고, MRI 결과, 수술 기록, 재활 과정 등 구체적 의료자료를 확보하면 사건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 만약 복잡한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상이라면, 사건의 value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다만, 이때 중요한 조건은 의뢰인의 과실 기여가 적어야 하고, 상대방 보험 한도가 충분히 높거나, 보험 한도가 없는 경우여야 한다. 차량 충돌 사고의 경우, 상대방 보험의 한도가 $50,000에 불과하다면,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현실적인 배상금은 그 한도를 넘기기 어렵다. 반대로, 뉴욕주법 상 중상(serious injury)에 해당하고, 수술이나 중대한 치료를 받은데다 보험 한도가 상당히 높다면 사건의 ‘등급’은 점프한다.
뉴욕주 전문 상해 로펌에서는 수많은 사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사건의 심각성과 잠재적 배상액을 기준으로, 소제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각 사건에 고유 코드와 등급을 부여한다. 신입 변호사들은 낮은 등급(low value) 사건부터 담당하며, 사건의 난이도와 잠재적 가치가 높은 최상급 사건(high value)은 VIP 클래스로 분류되어 시니어급 변호사들이 직접 관리한다. 이를 통해 사건별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인력 및 자원을 최적화한다. 결국, 법률사무소는 단순히 의뢰인을 위한 정의 구현을 넘어,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업체임을 보여준다. 나에게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지라도, 그 사건의 의뢰인에게는 삶 자체이므로, 모든 사건에 진심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다. 의뢰인의 진심이 의심되는 경우다. 어느 의뢰인이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변호사님, 수술하면 정말 배상금이 올라가나요? 저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단호히 답했다.
“수술 여부는 오직 의사와 상담 후 의뢰인 본인의 판단으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변호사가 의료적 결정을 유도하거나 조언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명백히 금지되어 있다. 수술 여부가 배상금액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이를 이유로 변호사가 의학적 결정을 유도하거나 암시해서는 안된다. 결정권은 반드시 의뢰인에게 있어야 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의뢰인이 때로는 사건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뉴욕주 법(New York Insurance Law §5102[d])은 ‘중대한 상해' 또는 '중상'(Serious Injury)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망
절단 또는 영구적 외형 손상 (예: 화상, 흉터)
골절
태아 유산
장기 또는 신체 기능의 영구적 상실
운동범위의 중대한 제한
사고 후 180일 중 최소 90일 이상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
이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해야만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어떤 상해는 명확하다. 예컨대, 골절이나 절단처럼 눈으로 보이는 부상은 중상의 기준(serious injury threshold)을 쉽게 충족한다.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한 상해도 있다. 외견상 멀쩡해 보여도 내부 손상이나 신경 손상, 운동 범위의 제한이 존재하는 경우다. 또한 마지막 요건의 경우, 원고가 부상 직후 180일 동안 최소 90일 이상 동안 일상적 활동의 실질적 수행이 전부 불가능했다는 의학적으로 확인된 부상 또는 장애를 입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단순한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의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뉴욕주에서 중상 여부를 판단할 때 법원은 MRI나 X-ray 등 영상 검사 결과, 외관상 흉터, 운동 범위 제한의 정도 (즉 손상 부위가 얼마나 움직이지 못하는가에 대한 수치), 부상의 영구성 및 중증도에 대한 의사의 임상적 판단, 일상생활의 질에 미치는 영향 (예컨대 직장 복귀나 일상 활동의 제한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결국, 중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부상당했다는 차원을 넘어, 그 상해가 삶의 질을 바꾸어 놓았음을 입증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일관되고 객관적인 증거가 확보될 때, 사건의 value 또한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사고 직후 응급실을 찾은 의뢰인이라면, 먼저 응급실 기록(Emergency Room Report)을 확보한다. 이후 수개월간의 치료와 재활이 끝나면, 병원과 재활클리닉으로부터 모든 의료기록을 전달받는다.
처음에는 단순 타박상으로 보였던 부상에서 골절이 발견되기도 하고, 반대로 차량이 전복될 정도의 대형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근육통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사건은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의료기록을 관리하는 업무는 보통 paralegal이 담당한다. 소제기 전 보험회사의 질의응답 절차인 Examination Under Oath (EUO)를 대리하거나, 어떤 특정 이슈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변호사들은 소제기 이후 의뢰인들의 의료기록을 검토하게 된다. 물론 내가 직접 수임하거나 의뢰인과의 첫 상담(intake)을 진행한 경우에는 의뢰인들이 직접 소통을 하기 원하기 때문에 이에 응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질문을 하는 의뢰인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배상금액을 높이기 위해 수술을 고려하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법률적·실무적 관점에서 보면, 또 하나의 냉정한 현실이 존재한다. 내 경험상, 수술을 받든 받지 않든 거의 모든 의뢰인들은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지속적인 통증과 고통(pain and suffering)을 겪는다고 진술한다. 더 이상 통증과 고통이 없다면, 과거의 통증과 고통에 대한 배상액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고, 장래에 이어질 통증과 고통에 대한 청구를 할 수 없게 되어 배상액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적어도 내 의뢰인들이 소송이 끝난 후에는, 그들의 pain and suffering도 함께 끝나기를. 그래서 나는 합의에 성공하거나 재판의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속으로 그들의 쾌유를 위해 기도해 주고, 이별 인사를 한다.
"다시는 부상당하셔서 저를 만나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중상을 입증하는 핵심은 의료 기록의 일관성이다. 따라서 소송 실무에서는 의료 기록의 흐름을 세밀히 점검해야 한다. 응급실 기록 → 정형외과 초기 진단서 → 재활치료 경과 → 최종 소견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예컨대, 초기에 “단순 염좌”로 기록되었는데 수개월 후 “디스크 탈출로 인한 신경 손상”으로 변경된 경우, 그 사이의 변화 과정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 빠져 있다면, 상대방은 즉시 비일관적인 진단에 대해 문제를 삼을 것이다.
운동 범위 제한(Range of Motion Limitation 은 수치로 명확히 기재되어야 한다. “정상 대비 40% 가동 범위 제한”처럼 객관화된 수치가 있어야 중상 기준을 충족하는 의학적 근거로 인정된다. 특히 “permanent restriction”은 영구적 기능 제한으로 장래의 통증 및 고통에 대한 청구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보험사 의료감정(Independent Medical Exams)을 대비해야 한다. 보험사가 지정한 의사의 의료감정에서 중상 기준 불충족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반박하는 의학적 의견서를 확보해야 한다.
*실제 사건 또는 특정인물을 의도한 바 없으며, 각색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