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뉴욕주 민사소송 Intake 단계에서 소제기 전까지
미국 민사소송 실무상,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변호사가 할 조언이 있다.
“지금부터 사건과 관련된 자료는 절대로 삭제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분간 SNS를 중단하고, 일기 같은 개인 기록도 남기지 마세요.”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 두 가지 조언은 미국 디스커버리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이다.
증거를 보존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와 불리한 증거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실무적 전략 사이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이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시켜야 한다. 소송이 임박하거나 시작된 지금 이 순간부터, 의뢰인의 과거와 오늘의 일상은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대 여자 대학생이 친구의 승용차에 탑승하였는데, 다른 차와 충돌하여 차가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하여 운전자인 친구와 상대방 운전자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에서 여자 대학생인 원고를 대리했다. 원고는 한쪽 어깨가 골절되었다. 소를 제기하고, 2년의 소송계속중에 증언녹취를 실시하게 되었고, 사전 증언녹취 준비를 위해 의뢰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무척 건강하고 활동력 있어 보였다. 또한 어깨의 움직임에서 불편한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으니까 골절도 빠르게 아물었을 테지.'
그녀는 여전히 한쪽 어깨의 불편함에 대해 호소하긴 하였지만,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며 무언가 개운치 않은 마음이 남았다.
순간 어떤 한줄기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그녀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봤다. 그녀의 계정은 공개계정이었고, 많은 사진들이 포스팅되어 있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그녀의 사진들을 훑어봤다. 활기찬 인상대로 그녀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고일과 근접한 사진 포스팅을 보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했다. 사고일로부터 불과 5개월이 지난 무렵(재활 치료 기간 중) 찍은, 그녀의 사진 한 장에 가슴이 쿵 가라앉았다. 그 사진은 그녀가 테니스장에서 높이 점프하여 마치 강한 힘으로 공을 내리치기 직전 친구가 찍어준 사진같았다.
'어느 쪽 어깨였지?'
골절을 입은 어깨는 오른쪽이었다. 얼른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힘차게 공을 내리치기 위해 테니스채를 잡고 하늘로 뻗은 손은 오른쪽이었다. '아뿔싸!'
상대방 대리인은 그동안 페이스북 계정의 사진에 대해 언급하거나 요청한 바 없다. '하지만 이미 계정을 찾아봐서 알고 있을 거야. 증언녹취 중 갑작스럽게 사진을 공개하고 이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지.' 그럼 그녀가 어깨 통증을 호소하고 그 통증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모든 진술에 대해 공판이 아닌, 바로 그 자리에서 탄핵을 할 것이다. '아니, 공판에 간다면 상대방 대리인은 배심원들에게 어깨에 부상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자신도 그녀처럼 멋지게 공을 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조롱할 수도.'
현재 시각은 오후 4:45. 아직 퇴근 시간 전이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paralegal에게 뛰어갔다.
"바로 상대방 대리인 사무실에 전화해서 내일 증언녹취록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무조건 연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뢰인에게 전화했다.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사진들은 결코 삭제해서는 안됩니다. 보존의무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당장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세요."
소송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순간,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증거보존조치(litigation hold) 의무를 고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공지사항이 아니다. 법적으로 요구되는 의무사항이다.
Litigation hold란 말 그대로 소송과 관련된 모든 문서, 이메일, 문자, 메모, 디지털 파일, 심지어 CCTV 영상까지도 삭제하지 않고 보존하라는 조치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서면(litigation hold notice)으로 남겨야 하며, 개인뿐 아니라 법인의 경우 관련 부서 및 임직원에게 공지되도록 해야 한다.
불리한 자료를 삭제하거나 파괴하면, 향후 증거훼손(spoliation)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무겁다. 불리한 사실을 사실로 간주하는 불리한 추정(presumption), 심하면 제재나 패소를 할 수 있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존재하는 증거는 지우면 안 되고, 새롭게 만들 불리한 증거는 자제해야 한다. '증거'라고 함은 공판에서 판사 또는 배심원에게 제출될 증거력 있는 증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공개되는 일련의 관련 있는 증거들을 통해 공판 전 당사자들은 합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미 생성된 증거는 어쩔 수 없더라도 더 이상 불리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의뢰인의 증언녹취가 연기된 이후 법원에서 우연히 상대방 대리인을 만났다. 나는 상대방 대리인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합의 의향을 은근슬쩍 내비쳤다. 상대방 대리인이 긍정적으로 답변을 한 것으로 봐서 그녀의 페이스북을 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사건으로 공판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에 힘입어 서둘러 합의를 진행했다. 수만 달러의 손해배상청구를 단숨에 무력화할 사진 한 장은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은 채 사건은 합의로 종결되었다.
개인 의뢰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을 때 이미 클레임 제기 가능성이 다분하다. 첫 만남 시, 증거보존조치 의무를 설명하고, 서면통지를 송부한다. 법인의 경우, 사건에 개입된 현업부서 및 유관부서 임직원에게 이메일 공지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도 과잉 생산하지 않도록 조언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여러 각도에서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 특히 SNS를 활용하는 젊은 연령의 의뢰인에게 주의를 당부한다.
신체상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서는 의뢰인 자신의 신체 상태가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재활기간 동안 상대방 당사자 보험회사 측에서 의뢰인 집 또는 직장 근처 공공장소에서 몰래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뢰인에게 알려줘야 한다.
*실제 사건 또는 특정인물을 의도한 바 없으며, 각색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