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공짜 커피 사건 하나로 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별일 아닌데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오늘 이렇게 따뜻함과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상황에서 늘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무표정으로 양보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끼어들지 못해 안절부절인 상대 운전자의 모습을 봤고 웃으면서 편하게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녀 역시 무리해서 끼어들려 하지 않고 나의 반응을 살피며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양보했을 때 과장해서 표현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환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손짓과 함께 차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내가 주문한 것을 대신 결제했다. 내가 그녀였다면 그랬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일상생활에서 양보를 가장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운전할 때다. 운전면허가 있다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운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운전자들과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의 연속이다. 그리고 캐나다는 내가 경험했던 어느 나라보다 운전 시 양보에 익숙한 나라다.
이러한 모습이 국민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환경과 법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캐나다는 운전자에겐 축복의 땅이다. 한마디로 땅이 너무나 넓다. 그리고 땅이 넓은 건 운전자에게 최고의 환경이다. 우선 도로 폭이 넓어 옆 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편하다. 주차 공간도 넓어 대강 주차해도 옆 차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주차장마다 시비가 붙은 '문콕'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운전자들도 마음에 여유가 느껴진다. 신호등 정차 시 앞차와 간격을 보면 차량 한 대가 넉넉히 들어갈 정도다. 굳이 따닥따닥 붙어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법제도의 차이도 크다. 우선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는 대부분 STOP 사인이 있다. 모든 차들은 예외 없이 일단 멈췄다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교차로에 정차한 차들은 먼저 멈춘 순서대로 다시 출발한다. 그래서 정차 후 다른 방향의 차들을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사각지대에서 STOP 사인 단속하는 경찰을 종종 보곤 하는데, 속도를 대충 줄이고 우회전하는 차가 잡히는 걸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캐나다는 아이들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란색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고 내릴 때 빨간불이 반짝거리는데 이때 모든 차들은 버스와 간격을 유지한 채 '그대로 멈춰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이 확보되고 점멸이 꺼지고 스쿨버스가 출발한 후에야 움직일 수 있는데 어길 시 200만 원 정도의 벌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이런 환경과 법제도가 운전자들에게 양보하는 습관을 갖게 했다. 차선 변경 시나 보행자 횡단 시나 모두 서로 먼저 양보한다. 그래서 이곳에선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듣는 일이 흔치 않다. 최근 차선 변경 때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옆 차가 한번 경적 소리를 냈다. 바로 창문을 내리고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했더니 상대 운전자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서울에서는 운전하는 것이 두려웠던 아내도 여기서는 짧은 거리는 종종 운전하고 있다.
오늘 팀 홀튼에서 내가 양보한 것 역시 이곳 생활 7개월 차에서 나오는 여유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작은 보상을 받았기에 앞으로 더 양보하는 운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문득 생각이 직장 생활까지 미쳤다. 직장에서는 어떨까. 과연 양보라는 행위가 일상에서처럼 낭만적이고 따뜻한 경험을 선물할까. 양보는 미덕이라는 표현이 사라져 가는 요즘 직장에서는 더더욱 양보는 미덕이 아닌 미련한 짓으로 치부된다. '배려' 정도는 이해하지만 '양보'를 하다가는 자기 밥그릇을 챙기지 못한다는 핀잔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잘될 수 있는 절대 평가가 아닌 여러 모양으로 순위를 매기는 상대 평가가 지배하는 직장에서 양보는 어디에도 낄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모셨던 상사들도 마찬가지다. 기회가 있으면 눈에 불을 켜도 잡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승진할 수 있는, 더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은 직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양보는 직장 밖의 경쟁이 없는 세상에서나 상식적일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양보라면 말이다. 우리가 양보하면 자신이 손해 본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양보하는 사람과 양보를 받는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 필요가 있다. 오늘 아침 나와 상대 운전자의 심리를 살펴보자.
먼저 팀 홀튼에 도착한 건 상대 차량이었다. 다만 큰길 쪽으로 차량이 길게 서 있다 보니 다른 방향에서 온 해당 차량은 본의 아니게 끼어들기 위해 깜빡이를 켰다. 무작정 끼어들 수도 있지만 여성 운전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허락을 받고 끼어들려고 했다. 그 모습을 뒤늦게 도착한 내가 발견했다. 그녀의 모습에서 끼어들기 위해 기다린 것과 양해를 구하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던 나는 기꺼이 손짓으로 먼저 진입하도록 했다. 즉, 나는 양보할만한 사람에게 양보했다. 무조건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나 역시 무작정 끼어들도록 양보하면 내 뒤에 있는 차량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셈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양보를 받을 자격이 있었고 난 기꺼이 양보했다. 그리고 난 바로 내가 양보한 사실을 잊었다. 그래서 그녀가 내 대신 계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양보해서 몇십 초 손해 봤을 수 있지만 양보했을 때 들었던 따뜻한 마음과 상대방의 고맙다는 얼굴을 봤을 때의 기분 좋았던 가치가 더 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난 공짜 커피를 얻었고 확실히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물론 내일 아침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했을 때 공짜 커피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때론 양보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이에게는 먼저 양보하는 것이 어떨까. 글로벌 기업에서 전략 매니저로 일했을 때 일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되고 나서는 해외 출장 기회가 드문드문 생겼다. 독일, 호주, 말레이시아,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해 교육을 받기도 하고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실 해외 출장은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비행기 값, 숙식비 등 일주일 일정이라면 최소 2~300만 원이 든다. 때문에 회사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인원을 제한하기도 한다. 한 번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사에서 열리는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임원, 팀장, 그리고 팀원 두 명이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실적이 목표 달성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고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라는 공지가 내려왔기 때문에 출장 인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직한 지 3년 정도 됐지만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상하리만큼 출장 기회가 왔을 때마다 별의별 변수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출장을 가야 할 차례가 됐다. 하지만 또다시 비용 절감 이유가 생겼고, 그럼에도 다들 내가 1순위라고 여겼다. 하지만 전략 매니저였던 내가 판단했을 때 출장을 꼭 가야 하는 인원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마케팅을 담당하는 후배 팀원이었다.
마케팅 담당 직원 중에 가장 어렸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현업과 소통했던 탓에 누구보다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하지 않았던 후배였다. 그리고 때마침 출장 기간에 후배가 담당하는 부서의 글로벌 워크숍이 근처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사실 지역 본사 미팅은 결과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내 계산으로는 후배가 절반 정도는 미팅 일정을 소화하고, 나머지 절반은 본인 담당 부서 글로벌 워크숍에 참석하는 것이 회사나 팀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팀장님에게 나를 대신 후배 팀원이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팀장님은 내 의견의 취지를 이해해 기꺼이 받아줬고, 후배는 고마운 마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리고 현지 워크숍에서 본인의 역량을 200% 발휘해 대표님을 통해 공식적으로 좋은 피드백까지 받았다. 현재는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멤버로 성장했음은 물론이고 선배들보다 더 빨리 승진했다.
아침에 앞차 운전자가 막무가내로 깜빡이를 켜고 차를 들이밀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양보를 했을 것이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내 경우 자발적인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졸지에 억지로 양보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직장에서도 억지로 하는 양보가 의외로 많다. 첫 회사였던 국내 중견기업을 다녔을 때였다. 당시 연말 고과 평가는 하향식이었다. 임원이 팀장을 평가하는데, 점수가 높으면 팀장도 마찬가지로 팀원들에게 보다 높은 고과를 줄 수 있었다. 핵심부서가 아니었던 우리 팀은 잘하든 못하든 늘 평가가 중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팀장은 팀원 중에 단 한 명에게만 가장 높은 A등급 고과를 줄 수 있었다. 당시 팀장님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놀랍게도 돌아가면서 A등급을 줬다.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입사 3년 차 때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와 회사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해 A등급 고과를 받았다. 크게 못한 일이 없었고, 내가 A등급을 받을 차례였던 눈치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와 A등급이든 D등급이든 상관없이 연봉이 동결됐다. 그리고 다음 해 난 모든 개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팀장님은 나를 불러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건넸다.
"마크는 작년에 A등급 받았잖아. 올해는 윤 과장에게 양보하자고."
이런 양보는 양보하는 사람도 양보를 받는 사람도 모두 비참해진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내가 왜 평가의 부조리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창피하다. 이런 억지로 하는 양보는 좋지 않은 문화를 만들어 결국엔 회사를 병들게 할 뿐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말 한마디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양보는 어떨까? 양보를 통해 공짜 커피 한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보 한 번에 인생 역전을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양보에 대해 주저함이 없고 한결 같이 자신의 자리, 물건, 기회를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는 사람은 대부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SNS상에서 보면 존경받는 현직 직장인들이 있다. 예를 들면 KT 신수정 부사장님과 같은 분이다. 존경받는 직장인들의 공통점이 뭘까. 나는 양보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작은 것에 아웅다웅하지 않는다. 자기 것에 목을 메지 않는다. 많은 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양보한다. 대신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위치가 되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글로벌 기업 재직 시절 퇴근하는 엘리베이터에서 회장님과 마주친 적이 있다. 첫 직장이었던 한국 회사는 고위 임원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던데 반해 당시 회사에서는 회장님도 만원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그날도 회장님은 만원 엘리베이터 앞쪽에 타 계셨다. 내가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문이 열렸는데 회장님이 바로 앞에 계셨다. 난 멋쩍어하며 먼저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회장님은 자신 앞에 공간을 만들어주시면서 얼른 타라고 손짓하셨다.
양보라는 것이 별건가. 자신의 공간의 일부를 조금 내어주는 것. 그것이 양보라 생각한다.
경쟁 시대에 양보하면 망한다고 하는데, 지금껏 살아오면서 양보해서 손해 본 기억이 없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없었던 것인지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손해를 봤더라도 큰 손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신 양보해서 행복했던 기억, 결국엔 사람을 얻고 결과도 얻었던 기억들은 제법 된다. 양보에 익숙한 나라에 왔으니 실컷 양보하며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