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이전 동료들이 제 연락을 잘 받지 않아서 많이 서운했어요."
스타트업에서 같이 임원을 했던 앤드류가 얼마 전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5년, 아니 3년을 버티는 회사가 적은 스타트업 업계에선 좋은 일보단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회사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고 앤드류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 그 이상이었던 이들이 하루 사이에 너무나도 서먹한 관계가 됐다.
이런 일은 비즈니스에서 비일비재하다. 커리어가 쌓일수록 내편도 많이 생기지만 적도 많이 생긴다. 나를 좋게 보는 사람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연차가 늘수록 책임도 커져서 본의 아니게 나에게도 억한 감정을 가진 이들이 생겨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다섯 곳의 회사를 다녔는데도 여전히 이전 동료들과 연락하고 또 만나고 있다. 내게 고민을 털어놨던 앤드류가 그런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마크, 그건 마크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그래요."
물론 칭찬이지만, 그래도 뭔가 정상 범위를 벗어난 존재가 된 거 같았다. 내가 퇴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동료를 만나는 이유가 뭘까.
주니어 때 나를 키워준 분들이 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인생 첫 사수는 내게 실력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얻기 위해선 어떤 태도로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줬다. 효율성도 좋지만 진심을 담은 행동이 중요하고, 때론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필요하다는 걸 그로부터 배웠다. 내가 처음으로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임원은 책으로만 공부했던 내용을 비즈니스에서 실전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줬다. 그래서 뭐가 진짜고 가짜 지식인지 알게 되어 단단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임원이 되어 처음으로 모셨던 대표님은 내가 대표에게도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덕분에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분들 덕에 지금까지 좋은 사람을 얻고, 실전에 강하고, 강단 있는 시니어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연락드리고 찾아뵙고 있다.
반대로 내가 리더가 되고 나서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 처음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던 스타트업에선 아무래도 팀원들이 어리다 보니 기술적인 스킬뿐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소프트 스킬까지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팀 리더로 성장해 회사 주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처음으로 C레벨을 맡았던 회사에서는 주니어보다는 팀 리더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조언을 많이 했다. 성공담은 물론이고 실패담도 공유하면서 리더로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고맙게도 내가 도움을 받았던 이들은 지금까지도 먼저 연락하고 한국 들어갈 때마다 만나고 있다.
'마크, 어제 제이슨과 얘기 나누다 마크 소식 들었어요. 잘 지내시죠?'
팀원이던 유니스로부터 카톡이 왔다. 최근에 오랜만에 만났던 제이슨으로부터 내 소식을 전해 들었단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왔고 지금은 더 좋은 스타트업에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고 있다. 팀원이었을 때부터 그녀의 재능을 알아봤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아무래도 캐나다에 살다 보니 전 동료들을 직접 만나 네트워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간혹 캐나다에 방문하는 이들을 만나거나,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들어갔을 때 시간을 내 만나는 정도다. 그럼에도 나를 만난 이들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고 연락해 오는 이들이 꽤 있다. 서로 바빠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가끔 소식을 전해 들으면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는 관계다.
아 역시 이따금 떠올라 만나고 싶은 동료들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연락할 방법이 없는 이들도 있고, 지금은 서로의 상황이 많이 달라져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수년의 시간들이 한결 같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연락하고 또 만나고 싶다.
'마크 오랜만이에요. 저는 요즘 한창 책 집필하고 있어요. 회사 프로젝트 외에도 부업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도진행하고 있고요.'
카이는 전 직장에서 아이디어 뱅크였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엔지니어로 실력 발휘하고 있다. 아직까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기회가 되면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UI까지 장착한 프로덕트를 만들기까지 했다. 서로 바쁘기에 아직 본격적인 프로젝트 시작은 아니다. 그래도 비정기적으로 서로 근황을 알린다. 각자 요즘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 본인 리소스가 어느 정도 남는지까지 공유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커리어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이들과는 결국엔 단기 프로젝트가 됐든 회사가 됐든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서로 결이 맞다고 할까? 공통분모가 비슷하기에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편하게 연락해 마치 매일 연락했던 사이처럼 얘기를 나누는 동료들이다.
뜨거운 시기를 함께 경험한 이들은 언제 만나도 반갑고 할 이야기가 많다. L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고객사의 갑질에 가까운 요구에 대응하는 팀원들과 함께 몇 밤을 지새운 날, 여러 인원들이 힘을 모은 결과로 추가 투자를 받은 날, 회사로서는 뼈를 도려내는 결정이었지만 더 많은 인원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던 날. 이런 날들을 함께한 동료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내 편이라는 생각에 계속 만나게 된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내 편이라고 했던가. 당시에는 죽도록 괴롭기까지 했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견딜 수 있었던 일들이 많다. 당시 표현이 서툴러서 주위를 좀 더 돌아보고 다독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함께 극복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전우와 같은 이들은 여전히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뭉친다. 재밌는 건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서로 만나는 당시 직급으로 서로를 부른다는 사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동료 관계였지만 팬심으로 만나는 사람도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새 회사에 들어갔을 때 애독자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는 리더십 관련한 글들을, 또 누군가는 직장에서 생존하는 스킬에 관련한 글들을 읽고 팬심으로 처음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퇴사 후에도 계속해서 내 글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마크, 브런치 글은 때마다 꺼내보고 읽고 있어요."
나 역시도 여전히 팬심으로 만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요즘은 주니어지만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배울 부분이 많은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팬심을 지나치게 드러내진 않지만,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로 인해 심장이 뛴다. 그리고 내가 팬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주위에서 알아주는 존재로 성장 중이다.
며칠 뒤면 한국을 잠시 방문한다. 어김없이 이전 동료들을 만날 계획이다. 요즘 내 근황이 특별한 게 없고, 또 근래 들어 대단한 결과를 낸 것도 없지만, 늘 그렇듯 서로에게 좋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무심히 건네는 한마디에도 애정이 담겨 있고, 관심이 드러나고, 응원을 보내는 그런 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