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이 흘렀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우물을 박차고 나온 게 4년 전 이맘때였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슬프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는 우물 밖 세상의 존재를 모르기에.
회사는 우물과 같은 곳이다.
회사는 우물을 닮았다. 우물 같아도 회사는 꽤 괜찮은 곳이다. 안정적이면 더욱 괜찮고, 친한 직원들이 있다면 더더욱 괜찮은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적이면서 친한 직원들이 있는 회사일수록 진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
우물과 같은 회사 안에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국내, 외국계, 스타트업 모두 경험해봤지만 모두 다양한 사람이 모이더라. 그런데 어느 회사도 1년 정도 지내다 보면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다양성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친한 직원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더 무르익었다.
회사에 친한 직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다. 하지만 친한 직원들에 만족하며 지내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정체된다.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직장인의 연봉 인상률과 같이 찔금 찔금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퀀텀점프(Quantum Jump)와 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말한다. 이런 엄청난 성장을 통해 우리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데, 우물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번 주 점심시간과 지난주 퇴근 후 친한 직원 몇몇과 함께 했던 저녁 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친한 직원들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맥주 한 잔 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열에 아홉은 근황 토크, 재테크, 커리어, 연애, 휴가, 실시간 급등 뉴스, 자녀 교육, 뒷담화, 그리고 회사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이런 주제는 연차가 쌓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 때야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였으면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얘기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가끔은 친한 직원들과 회사 프로젝트, 이직 고민, 휴가 계획 말고 '요즘 테슬라가 가장 주목받던데, 테슬라가 그리는 큰 그림은 대체 뭐라고 생각해?' '에어비앤비에서 이번에 팬데믹으로 인해 타격이 커서 직원들 정리해고했다던데, 그 과정이 다른 회사와는 달리 굉장히 인간적이었잖아. 어떻게 생각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싶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친한 직원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우리의 직장 문화를 탓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직장 문화를 '익숙한 공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어하는 문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무리 친한 직원이라고 해도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대화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익숙함 속에서 서로를 안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모습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다.
다시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 해 여름 보름간 호주 지사에 교환 프로그램을 다녀왔던 나는 여전히 부족한 영어 실력을 절감하고 귀국하자마자 영어 모임을 찾았다. 마침 지인 추천으로 한 커뮤니티 모임에서 운영하는 영어 클럽을 알게 됐다. 10명 정도의 멤버가 강의식이 아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아티클을 읽고 모여 몇 가지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결과적으로 같은 학원을 6개월 이상 다녀본 적이 없는 내가 4년 동안 이 모임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운영자 그룹에 합류해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HFK라는 이름의 이 커뮤니티에는 영어 클럽뿐 아니라 데이터, 리더십, 트렌드, 경영, 아이디어, 디자인, 사업기획, 문제 해결 등 다양한 테마로 150명 이상이 시즌마다 참여하고 있다. 컨퍼런스, 세미나, 프라이빗 이벤트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세션이 자주 마련되어 실제로는 커뮤니티 대부분의 사람과 네트워크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커뮤니티에 몸을 담고 있는 이유는 영어 때문이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모든 면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우물을 벗어나, 퇴근 후 친한 직원들과 멀어져 커뮤니티 활동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좋은 사람이 모인 좋은 커뮤니티라면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꼭 수십수백 명이 모인 커뮤니티가 아니어도 좋다. 회사의 친한 직원과 멀어져 나와 다른 사람 여러 명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직장 밖, 아니 우물 밖에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왜 그렇게 결이 다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걸까? 친한 직원이 줄 수 없는 성장을 선물하는 걸까? 그 이유는 세 가지. 다양성, 확장성,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이다.
우선, 주제와 시각의 다양성이다.
4년 동안 다뤘던 주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뽑아봤다.
- 배신자를 다시 고용해야 할까? (16년)
- 온라인 시장에서 차별 바로잡기 (16년)
- 과대평가된 '고객충성도'에 현혹되지 말라 (17년)
- 트럼프 시대의 세계화 (17년)
- The Good-Better-Best 가격 전략 (18년)
- 피드백에 멍들다 (19년)
- 직원들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변화에 적응한다 (19년)
경영 콘텐츠 외에도 브랜드, 데이터, 리더십, 어떤 것도 좋다. 어디 가서 이처럼 다양한 주제로 몇 시간 동안 실컷 토론할 수 있을까?
1년 정도 지내면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다양성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주제뿐 아니라 시각도 다양하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도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무릎 칠 정도의 다르지만 너무나 도움이 되는 의견을 접할 수 있다. 서로의 산업군, 회사, 부서, 연령,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들이 정리된 생각과 경험을 공유했을 때 뿜어지는 집단 지성, 시너지의 힘은 엄청나다.
위에서 언급한 주제 중에서 '피드백에 멍들다'라는 아티클을 읽고 토론을 했을 이야기다. 아티클 내용은 상대방을 평가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피드백이 오히려 팀원 역량을 저해한다는 것이었다. 경영 아티클은 단점은 때론 너무 교과서적이고 실제 현장과 괴리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콘텐츠에 서로 자기만의 색을 가진 10명의 사람이 모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는 주로 피드백을 주는 입장이고 누구는 받는 입장이다. 누구는 전통적인 국내 기업을 다니고 또 누구는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특히 어느 아티클이든 10명 중에 전문가가 한두 명은 꼭 있다. 이 아티클의 경우에는 HR팀에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멤버가 있어서 생생한 현장 사례를 공유했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도움은 '아, 다들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그리고 그 '다름'이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문제를 바라보는 내 시야 자체가 무한대로 넓어졌다.
또한 커뮤니티에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확장성이 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회사는 어느 시점이 되면 나에게 확장성을 요구한다. 10년 차 A차장은 현재 하는 업무만 5년이고 10년이고 하고 싶은데 회사는 A차장에게 팀장을 맡기며 HR과 리더십 스킬을 요구한다. 5년 차 B엔지니어는 개발자로서 개발만 하고 싶은데 회사는 직급 앞에 '시니어'를 달아주면서 고객관리 스킬을 요구한다. 직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당장 HR, 리더십, 고객관리 스킬을 갖출 순 없다. 어느 순간 회사는 나에게 슈퍼맨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커뮤니티는 이와 관련한 콘텐츠를 갖고 있고, 또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들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역량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확장성의 수준을 맞추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가만히 있어도 성장하는 네트워킹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부자는 돈이 돈을 번다. 마찬가지로 확실한 커뮤니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네트워크가 네트워크를 번다. 네트워크 효과를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가 '6단계 법칙'이다. 인간관계는 6단계만 거치면 지구 상 대부분의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관계가 100명 정도 된다는 가정하에 이 6단계 법칙은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 커뮤니티에서는 이 네트워크 효과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한마디로 네트워크 효과는 맨땅의 헤딩하는 수고를 덜어 준다. 멤버들 단톡방에서는 각자 속한 업계의 고급 정보들, 보고서들이 공유된다. 어느 멤버가 본인이 경험이 없는 업무를 할 때 업체 문의나 자료 문의를 하면 1분 안에 여러 개의 꿀팁과 연락처가 올라온다. 커뮤니티 멤버 중에 창업한 이들도 여럿 있는데 굳이 비싼 돈 내고 창업 컨설팅을 받을 필요가 없다. 커뮤니티에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이지 않은가?
'저에게 맞는 커뮤니티는 어떻게 찾나요?'
커뮤니티 얘기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친구 따라 강남 가자. 어느 날부터 친구가 저녁에 잘 만나주지 않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면 쫓아가라. 친구가 자기를 버리고 갈 정도의 커뮤니티면 괜찮은 곳이다.찾고자 하는 키워드로 커뮤니티를 검색하면 알아서 페이스북에도 인스타그램에도 광고가 붙는다. 다른 분야와 달라 커뮤니티 광고는 괜찮은 곳에서 많이 한다. 첫 시간이 중요하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곳도 의외로 많다. 내가 이 커뮤니티에 최소 6개월은 있을 것인가를 가르는 건 첫 만남에서다. 사람, 분위기, 콘텐츠가 좋다면 등록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의 특징은 사람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에서의 나는 회사에서의 나보다 더 자연스럽고 덜 눈치 본다. 회사 동료를 영어 클럽 모임에 데려온 적이 있다. 다음 날 동료는 모임도 좋았지만 나에게 대해 놀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크, 그렇게 활달하고 잘 웃는지 몰랐어요'
커뮤니티는 정말 사람이다. 한 달에 두세 번씩 3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회사에서 친한 직원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진짜 그 사람을 말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내에서 스카우트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회사 대표님을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영어 클럽 운영자일 때 대표님이 멤버로 합류해 6개월 동안 매달 두세 차례 만나 실컷 토론했다. 당시 유독 스타트업 관련 아티클이 많았는데, 창업가인 대표님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의견을 많이 공유해서 모두가 행복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던 나는 지원 의사를 밝혔고, 대표님은 별도 절차 없이 함께 하자고 하셨다. 나중에 들으니 6개월 동안 커뮤니티 운영진인 나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토론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대표님의 모든 것을 파악했기에 지원 의사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6개월 동안 서로 면접을 본 것이었다.
친한 직원들과 멀어져야 성장한다. 멀어지기 싫다면, 친한 직원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커뮤니티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다만 꽤 매력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