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마다 퇴사자를 바라보는 자세
내가 경험했던 퇴사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 수백 명은 될 것이다. 범위를 좁혀 따로 식사할 정도로 친했던 관계로 한정한다면 100명 정도. 굳이 분류한다면 동기, 선배, 후배, 직속 팀장과 팀원, 임원까지 다양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40대로서 퇴사자를 바라보는 자세가 20대, 30대 때와는 달라져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 활동한 지 한 달 반이 흘러 구독자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세웠던 첫 목표가 '구독자 100명'이었는데... 한분 한분 보이진 않지만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더 진심을 담은, 더 공감할 수 있는, 더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습니다.)
어딜 가든지 말든지 내 코가 석자다! 본인 경력이 중요했던 20대
가장 먼저 경험한 퇴사자는 동기였다. 나에겐 서른 명의 공채 동기가 있었다. 점차 공채로 뽑는 회사가 줄어들고 있지만, 어쨌든 공채의 장점은 끈끈한 동기애가 아닐까. 첫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았지만 동기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여러 번 넘겼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1호 퇴사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버텼던 거 같다.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연구원 동기 한 명이 퇴사했다. 이때 기분은 다른 어떤 경험보다 특별했다. 왜냐하면...
퇴사하는 동기를 바라보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던 마음은 '서운함'이었다. '신의 직장'은 아니었어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던 회사였고,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동기들이 많은데 그걸 뒤로 하고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서운했다. 연구원 동기는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동기의 1호 퇴사가 던져준 메시지는 '누구나 언제든 나갈 수 있다'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아마추어의 순수함이 남아 있던 모두에게 직장 생활은 각자도생의 프로 세계라는 것을 알게 해 줬다. 뜨거웠던 동기애도 3년 정도 흘러 완전히 식었고 오히려 끼리끼리 문화와 시기 질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대에 경험한 퇴사자들 중에는 '통통 튀는 선배들'이 꽤 있었다. 입사 당시 이미 창립 80주년을 훌쩍 넘긴 전형적인 국내 기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하고 바꿔보려고 노력했던 선배들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회사는 이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선배들이 너무 회사를 쉽게 본 측면도 있었다. 하나 둘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떠났고, 신입 사원들의 지지를 받던 선배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바로 '회사가 쉽게 변하는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무능한 선배가 무능한 사람은 아니더라. 회사에선 무능하다고 알려진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다. 모 과장님은 사람은 좋아서 회사에서 네트워킹은 잘했지만 본인의 업무는 엉망이었다. 한 번은 팀 미팅 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신입인 내가 봤을 때도 '아니 어떻게 저렇게 엉망으로 관리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괜찮았는데, 회사에서 볼 때는 잘라내야 하는 존재였다. 그분은 1년을 더 버티다 결국 퇴사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대학원에서 원하는 전공 공부를 하더니 결국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확실히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각자에 맞는 옷이 있듯이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구나!
이 사건(?) 후로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로 떠난 퇴사자들을 바라보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비록 이곳에서는 꽃을 피우진 못했지만 자기에게 맞는 곳을 잘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20대 시절 이렇게 저렇게 동기들과 선배들의 떠나는 모습을 봤지만, 그들이 어딜 가든 중요하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였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사람을 알아가고, 내 자리를 찾아가기에 바빴기에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지만 쉽게 잊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도 이제 알아볼까? 퇴사가 남 얘기 같지 않았던 30대
20대 후반에만 직장을 경험했고, 40대는 아직 초반이기에, 30대가 유일하게 꽉 채워 직장 생활한 시기였다.
30대로 접어들자 1, 2년 선배들과 동기들이 퇴사하는 빈도가 증가했다. 입사 직후 퇴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가장 많이 이직을 하는 시기는 여자의 경우 서른 전후, 남자의 경우는 30대 초반이다. 동기들이나 바로 윗 기수 선배들이 이직할 때면 '왜 나갈까?'부터 궁금해졌다. 당시 회사는 제법 규모가 있어 여러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반면 연봉은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실력을 잘 쌓은 뒤 돈 더 주고, 더 알려진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고 동기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회사를 '사관학교'라고 불렀다. 결국은 다들 돈 때문이었다. 20대 때 동기가 나가면 '서운함'이 컸다면, 30대 때는 '자존심'이 커졌다. 겉으로는 퇴사자들이 돈만 밝힌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부러웠던 게 사실이었고 이를 극복하려면 자존심이 강해야 했다.
경쟁사로 이직하는 선배들도 늘었다. 회사의 주력 사업이 식품사업이었는데 그 바닥에서는 경쟁사로 이직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 전략팀 과장님이 가장 큰 경쟁사인 C사로 이직했다. 나름 회사에서 엘리트 코스로 밀어주고 있던 분이었는데, 이직은 그렇다 쳐도 경쟁사로 갔다니 배신감이 컸다. 이직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대형마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차갑게 눈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부러운 마음 대신에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경쟁사로 이직했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컸다.
30대에는 소위 말해 '에이스의 퇴사'를 많이 경험했다. 내가 생각하는 에이스는 나이와 연차와 상관없이 '대체 불가한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에이스들도 결국 퇴사했고, 에이스가 떠나도 회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데이터 담당 대리가 있었다. 고객 관련 데이터 구축을 책임졌던 후배였기에 그 친구만큼은 나가는 일이 없길 바랐다. 나갔을 때 대체자를 과연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파일럿을 꿈꿨던 그 친구는 때가 되자 미련 없이 퇴사했고, 이후 진짜 파일럿이 되었다. 회사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관련 업무를 초창기에 했던 직원이 있었다. 그리고 퇴사한 후배가 안정화를 이뤄 놓았기 때문에 인계받은 직원은 유지보수만 잘하면 되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프로세스가 정착이 된 이후로는 에이스가 떠나도 회사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에이스가 아닌 내가 떠난다고 하면 회사는 콧방귀도 뀌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회사를 나간 이들도 많았다. 20대 때는 누군가 떠나도 속사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회사에서 인맥이 쌓이고 포지션이 올라가는 30대 때는 퇴사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누구는 하루아침에 짐을 싸서 나가기도 했다. 얘기를 들으니 출장 중 컴플라이언스 위반이 적발이 되었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징계받을 정도의 사안은 사내 공지가 되는데, 그분처럼 퇴사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은 공개되지 않고 쉬쉬하고 넘어간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은 회사가 실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임원은 어느 날 출근하지 않았고,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그리고 경쟁사로 갔다. 회사에 얼마나 억한 심정이었기에 그랬을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 채질 못했다. 그러고 보면 회사 내 친분은 다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같은 회사에 있을 때만 유효한 친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가장 많은 퇴사자를 경험했던 30대에 나 역시 두 번의 퇴사를 했다. 많은 퇴사자를 경험한 것이 내 퇴사에도 영향을 줬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 그렇게 해! 너그러워지는 40대
마흔이 되면서부터 퇴사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 우선 40대가 되니 주변의 퇴사자들 대부분은 나보다 어린 이들이었다. 그들과 퇴사 면담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우선 밑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것은 '나' 자신이 중요한 만큼 '너' 자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회사 사정, 내 사정을 공유하고 읍소하는 것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만 생각하도록 조언한다. 회사도 나도 그 누구도 그들의 인생과 경력을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려놓은 큰 그림대로 움직이는 후배를 응원한다. 현재의 회사가 징검다리인 경우가 있다. 본인이 그려놓은 커리어 패스 (career path)가 있는데, 그중에 지금 회사는 3년 정도 생각한 경우다. 본인의 커리어에 필요한 것을 충분히 배웠고, 또 회사에 그 이상으로 기여했다면 박수 쳐주면서 보내주는 것이 맞다.
시야가 넓어진 만큼, 안타까운 퇴사자도 쉽게 눈에 띈다. 한 후배는 나에게 '마크, A 인더스트리에 정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퇴사하고 잠깐 쉬면서 그쪽으로 준비해서 가려고요'라고 말했다. 마침 그 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의 마케팅 팀장이 지인이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면 채용 정보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후배는 그 회사를 몰랐다. 본인이 관심 있는 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회사를 모른다니 어이가 없었다. 티를 내면서 무안을 주는 대신 이직할 때 필요한 팁을 전해주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이별'이 존재할까? 직장에서 '아름다운'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감성적이다.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이별'을 바란다. 남는 자도 떠나는 자도. 안타깝게도 경험상 아름다운 이별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노력하는 모습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혀 엉뚱한 회사로 가더라도 결국 만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가망 고객사를 만났는데 그쪽 임원이 전 직장에서 친했던 부장님이었다. 나는 전혀 다른 인더스트리로, 그분은 동종업계로 이직했는데, 전혀 만날 것으로 예상 못했던 순간에 만나 깜짝 놀랐다. 전 직장에서 친했기에 망정이었지 뭔가 불편한 관계였다면 입장이 크게 곤란할 뻔했다. 그날 생각했다.
이래서 사람이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고 하는 거구나!
아름다운 이별은 어려워도 퇴직 전에 업무 인수인계와 사람 관계 마무리를 잘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많이 남은 40대 동안 많은 퇴사자들을 경험할 텐데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각자에게 도움되는 말 한마디를 건넬까'이다. 선입견과 떠나보내는 서운함을 내려놓고 정말 그 사람을 위한 마음일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이별을 많이 경험하지 않는다.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의 퇴사'와 '나의 퇴사'는 우리가 가장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퇴사자를 바라보면서, 또 자신이 퇴사하면서 우리는 또 하나를 배우고, 또 한 번 성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