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정식 센터를 소개합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명함을 교환하고 소개를 나누다보면 어김 없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사무실은 어디세요?"
"저는 집에서 일해요."
"하긴 주로 외부에서 일하시니까 굳이 사무실이 필요하시지 않겠네요."
"네 그렇죠^^ (아니요. 필요해요. 없어서 못써요)"
"요즘은 카페가 제일 좋은 사무실이더라구요"
(서로 어색해하며) "그러게요. ㅎ ㅏㅎ ㅏㅎ ㅏ"
나도 좋은 사무실을 갖고 싶다. 작년 초까지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1인창조기업 사무공간을 이용하기도 했었으나 계약 기간이 끝나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딱히 사무실이 필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강의나 코칭이 있을 때는 정해진 장소로 내가 가면 되고, 혼자서 일할 때도 내 몸뚱아리랑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내 생활의 중심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생활 반경을 쉽게 넓히기도 어렵다.
생활 반경...소위 말하는 '나와바리'. 엄마들에게는 이게 곧 자기 집 주변이다. 아가씨(?)일 때는 '누가 대체 동네 미용실을 가나' 이해가 안됐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동네에서??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머리는 무조건 이대 앞에서 해야 되는 줄 알았고 애 낳기 직전에도 가로수길에 있는 미용실을 다녔다. 그런데 엄마가 된 후로는 한 번도 동네 밖 미용실에 가보지 못했다. 머리하는 일이 이제 그닥 중요하지도 않거나와 먼 미용실에서 파마라도 했다간 도저히 아이 하원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생활 반경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12시 땡치면 돌아와야하는 신데렐라 보다 더 짤 없기 때문에 절로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일할 때는 어디든 불러주는 곳을 마다 않고 다녔다. 코칭이나 강의를 할 기회만 있다면야 가릴 게 없었다. 지방에도 가고 저녁에도 일했다. 그런데 내 메인 잡 job이 '주양육자'이다 보니 그런 스케줄을 병행하는 것이 피곤해졌고, 강의나 코칭 제안이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그러다 작년 이 맘 때 친한 코치님의 제안으로 '맘코치 네트워크'에 합류하게 되었다. 엄마인 라이프코치이면서 엄마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 자연출산카페 지역모임에서 첫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여 그 코치님께 강의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냥 가정집'이라고 하시는 거다. '집에서 강의를????' 상상이 안됐다. 강의장은 모름지기 책상과 의자, 화이트보드와 프로젝터가 갖춰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도착한 첫 날. 그 날의 당황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9명의 엄마들과 대략 6명의 아이들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복판에 장난감과 아이들이 뒤섞여 있고, 한 구석에서는 기차가 레일을 따라 돌고 또 한 구석에는 백일 된 아가가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강의가 시작되었지만 아이들은 자기의 할 일을 계속 했다. 모유가 필요한 아기는 그 자리에서 모유를 먹고, 놀다가 울음이 터진 아이는 강사의 육성을 다 덮고 앙앙 울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들은 눈빛이 빛났고 들을 것을 다 알아 들었다.
나는 그 소란의 현장에서 묘한 질서를 발견했다. 돌발 상황마다 엄마들끼리 서로를 도왔고 아이들도 엄마가 무언가 다른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듯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모름지기 강의장'은 아니었지만 그게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 때 문득 뭔가 다른 감도의 느낌이 내게 떠올랐는데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것이었다. '꿈이 이루어졌다'.
정말 쌩뚱맞은 공간에서 내가 오래 기다렸던 느낌이 찾아온 것이다. 예전부터 내 열정의 대상이었던 엄마들이 눈 앞에 있었고, 그녀들이 외롭지 않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변화에 대한 의지와 호기심에 불타고 있었으며, 아이들 역시 어른의 일 때문에 배제되지 않고 엄마, 또래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일시적이지만 이상적인 하나의 공동체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큰 희망을 느꼈다. '나도 나와바리가 집이고, 내가 사는 동네 엄마들도 여기가 나와바리일테니까 내 집에 엄마들을 모아 교육을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작년 여름에 <맘편한 코칭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가정식 센터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결국에는 마음 편안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안이 이름의 '안'도 편안 안(安)자를 썼다. '맘(mom) 편한'이라는 게 새로운 키워드는 아니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어서 그렇게 센터 이름을 지었다.
집 천장이 높아서 사람이 많아도 답답하지 않다. 기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 비폭력대화(NVC)의 상징물이다. 지안이가 자꾸 등에 올라가서 이제 다리가 막 벌어진다 ㅠㅠ 심장이 머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가슴에서 느낀 것을 머리로 판단한 것과 뒤섞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
재미있게 진행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되 일방적으로 내가 메시지를 주는 형식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게 '코칭'원리에 준해서 수업을 진행한다. 코칭, 티칭, 힐링, 수다 그냥 여기에 다 있다.
외부 활동도 계속 하지만 주 3회 오전은 내 센터, 우리 집에서 그룹코칭을 한다. 일정이 픽스 되니까 훨씬 안정감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보람있고 즐거운 일이다. 시간과 에너지만 허락하면 정말 더 많이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대세 아끼고, 이동 시간 줄이는 장점이 크지만 고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업 전에는 싱크대며 널부러진 옷가지 등 생활의 흔적을 되도록 싹 지우고, 어린 아기들이 오기 때문에 청소도 박박, 아침마다 테이블 셋팅도 해야 한다. (이건 남편이 셔터맨처럼 잘 도와준다)
그래도 나는 나의 선택이 무척 마음에 든다. 비록 아이는 자기가 없는 동안 집에서 무슨 일이 나는 줄도 모르고 아가들에게 장난감을 빌려줘야 하지만. 또한 남편은 아무때고 평일 낮에 휴가를 쓰기 곤란해졌지만. 불시에 재우고 먹이고 씻겨야 하는 아기 엄마들에게는 집이야 말로 최적의 장소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활반경' 안에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 나와 엄마들 모두에게 큰 이점이다.
집에서 일한다는 것은 공간의 특성상 그렇게 생산적이기가 어렵다. 특별히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지 않아도 그렇다. 생각나면 빨래도 돌려야 하고, 그걸 또 꺼내서 말려야 하고, 오늘처럼 정수기 아저씨(?)가 오시면 문도 열어드려야 한다. 아이가 돌아올 때가 되면 시간이 좀 남아있어도 하던 일에 집중이 잘 안된다. 10분 뒤면 그 분이 오실 시간이다..
그래도 다가올 미래에는 일과 생활의 구분이 사라지고 재택근무가 보편화 될 것이라고 하니 이렇게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TOMS 슈즈 CEO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신발 박스를 쌓아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등 많은 거대 기업들의 요람이 '차고'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디서 시작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세상 엄마들이 맘편해지는 그 날까지 일단 한 번 해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