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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Jul 31. 2022

이사 나와 호텔로

D-1

밤새 더워 죽는  알았다. 어제 정도의 열대야라면 당연히 에어컨을 틀고 잤을 텐데, 안타깝게도 에어컨은 없다. 침대 프레임도  버려 매트리스만 깔고 잤다. 새벽 여섯 시가 되자 밝은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평소라면 커튼이나 베란다에 널은 빨래들이 적당히 빛을 가려줬겠지만 침대가 없어 시선은  낮아졌는데 아무것도 빛을 가려주지 못한다. 딸아이는 새벽빛에 잠을 깨서  안이 울린다며 계속 이런저런 소리를  본다.


밤새 뒤척이던 나와 아내는 아이의 소리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린다. 결국 일곱 시부터 남은 쓰레기와 짐을 정리한다. 결국 장장 두 달에 거친 이주 준비와 홀로 이사 작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짐의 무게를 확인하고, 가방 싸는 것도 끝났다. 어제까지 거의 근 한 달 동안 쓰레기를 그렇게 버렸는데 또 쓰레기장을 네 번이나 더 다녀왔다.


아홉 시. 콜밴은 열두 시에 온다고 해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마실을 나왔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그렇게 일을 했더니 너무 더워서 커피를 거의 1L 마셨다. 에어컨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단 하루인데도 에어컨 없는 집에 살았더니 약간 집착하게 된다.


카페에서 아마존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벌써 집에 배송이 온 물건이 있단다! 이런. 우린 아직 여기 대한민국에 있는데! 자세히 보니 아마존 박스가 있고 거기에 비번이 있어서 비번을 넣으면 꺼내갈 수 있단다. 오. 신박하다. 그런데 문제는 부피가 다소 큰 청소기와 커피 머신이 집 현관 앞에 있단다. 이런. 아까는 심장이 벌렁벌렁 했는데 지금은 반 포기 상태다.


정리 마무리를 위해 집에 돌아와 보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서 이케아 배달 주문에 도전했다. 다른 건 다 됐는데, 결제가 안된다. 이유인즉슨 결제 주소를 한국 주소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으윽. 만약 오늘 결제만 할 수 있었으면 집에 도착한 당일에 모든 가구를 드 받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 아내의 페이팔로 결제하려다 결제는 안되고 아내의 카드는 결제가 되어버렸다. 이런. 물론 당연하 결제는 안 된 거겠지만 괜스레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환장의 파티구나.


그 난리를 치다 보니 콜밴이 올 시간이 됐다. 집주인에게 감사 카톡을 보내고 주차장으로 짐을 끌고 갔다. 밖엔 비가 온다. 만약 평소의 이사였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오늘은 상관없었다. 스타렉스 한 대에 미국에서 우리가 의지할 물건들이 다 담겼다. 전에도 그랬지만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다. 세 명의 사람과 세 개의 이민 가방, 세 개의 중대형 캐리어, 세 개의 소형 캐리어, 그리고 세 개의 배낭이 전부다. 물론 세보면 무척 많지만, 그게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다. 세 명의 한 식구가 가진 전부.


비를 뚫고 인천으로 향한다. 하룻밤 영종도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사실 예약할 때는 잘 몰랐는데, 7월 31일, 8월 1일이면 여름휴가 성수기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특히 선착장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온 적이 없었는데, 완전 관광지 분위기인 게 신기했다.


제법 그럴싸한 호텔이었다. 나름 오션뷰이기도 하고. 물론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특별히 뷰가 좋을 건 없지만, 날씨가 좋았으면 멋졌겠다 싶다. 점심은 조개구이집에서 해물 칼국수와 라면을 먹고, 저녁은 편도로 때웠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었겠지만, 이주 준비에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아내는 비행 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거의 5 만에 장거리 비행이다. 앞에 있는 작은 장애물 하나하나부터 넘어가면서  여정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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