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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Nov 22. 2023

부모의 관점을 바꾸게 한 아이의 선언

2023년 11월 18일(이주 477일 차) 엄마, 아빠 할 말이 있어요

미국에서 어린이가 학교 생활 하는 모습은 우리 눈에 보기에는 천국과도 같다. 아이는 매일매일 학교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복도에 있는 라커에 가방을 정리하고 책을 가지고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체육은 잘 갖추어진 체육관에서 마치 놀이를 하듯 수업을 하고, 악기를 배우는 시간, 다양한 지율 활동을 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방과 후엔 수학, 영어 등 학과목 학원 뺑뺑이를 도는 대신 체스 교실이나 운동, 밴드 활동을 주로 한다. 


미국에선 이런 비교과 활동이 무척 중요하다. 여러 활동들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을 우선적인 교육의 목표로 두기도 한다. 물론 교괴목 수업이 뒤쳐져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과 수업에만 집중하는 교육은 확실히 아니다.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를 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나가고, 아이는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을 반정도 끝내가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 6학년이 중학교여서 반학기만 더 지나면 초등학교 졸업이다. 아이가 미국식 교육과정에 완전히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와 아내는 딸아이가 미국 학교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게 운동 한 가지, 악기 한 가지를 시키려고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온 가정의 경우 대부분 아이들에게 운동은 축구, 악기는 바이올린, 첼로를 많이 시키는 것 같아 보였다. 신기하다.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똑같이 그렇게 시키는지. 우리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기로 마음먹고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 


“하기 싫어.”


능동적인 활동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미국 학교 생활이라,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건 큰 걱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운동하랴, 악기 하랴, 방과 후에도 너무 바쁜데, 우리 아이만 집에 앉아만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학기 초에 가까스로 설득해서 밴드(관현악)에서 퍼커션을 하게 한 것만이 유일한 수확이었다.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는 것은 나의 숙원에 가까웠다. 아마추어라도 운동 팀에 소속돼서 협동심과 희생정신, 그리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화 보면 멋있었다) 그래서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개인 운동보다는 가급적이면 팀운동을 하길 원했다. 하지만 딱히 하고 싶다는 운동이 없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 싫다고만 했다. 축구? 싫어. 농구? 싫어. 배구? 싫어. 다 싫다고만 하니 죽을 맛이었다. 근데 요놈의 기지배가 또 시키면 그렇게 싫다고 하다가도 막상 하면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켜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 


마침 지난주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나누었고 선생님께서 몇 개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셨다. 축구와 농구 인하우스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이에게 반 강제적으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친구랑 같이 하면 되지 않냐며 같이 할 만한 운동을 고르라고 했고, 결국 아이는 축구를 골랐다. 그런데 축구는 또 봄부터 시즌이 시작이다. 그러면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너무 늦춰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겨울에 할 만한 운동을 찾아보다가 겨울 스포츠가 인기 있는 지역인 만큼 스케이트를 배워보자 생각하고 지역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이는 스케이트가 하기 싫다고 했다. 이유는 마땅히 없었다. 다 하기 싫다고만 하는 통에 이러다간 진짜 아무 것도 안 하겠다 싶어 이번엔 그냥 하는 거라 했는데, 아이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표정 짓는 거 아냐!”


아이는 알았다 하고는 팽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나와 아내에게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왜 아까 표정이 그랬냐면.. “


으로 시작한 아이는 운동을 이것저것 자꾸 하라고만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하나만 하면 된다면서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하니까 마음만 불편해진다는 것. 특히 어렵게 축구를 하겠다고 했는데도, 또 다른 스포츠를 계속해야 할 것만 같았단다. 자기는 하기 싫은데. 아이는 약간의 억지도 있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비교적 감정을 잘 누르고 자신의 의견을 나와 아내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흥분하지 않았고, 눈물이 나오려는 듯했지만 잘 참았다.


정말 대견했다.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말도 안 꺼내거나 하는 비뚤어진 태도와 행동을 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부모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아내는 완전히 녹아버렸다. 


아이가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부모로서 우리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은 이해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충분한 이해와 동의 없이 이 운동 저 운동을 시켜보려고 했던 시도들에 대해서 사과했다. 아이가 흥미를 가지고 할 만한 한 가지 운동을 찾겠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이것저것 시키려는 시도가 딸아이를 많이 불편하게 한 것은 분명 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교육을 위해서 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종목을 빠르게 정하지 못하면 같이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처질 수 있는데, 딸아이가 경쟁심이 있는 편이어서 그런 부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으니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운동 종목을 잘 정해보자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아이도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아는 터라 충분히 납득하고 협조하기로 했다.


아이가 제법 컸구나 싶다. 놀랐다. 불편함과 문제를 직면했을 때 감정이 올라옴에도 잘 추스르면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정말 정말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런 아이에게 (이미 등록한 몇몇 활동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아이의 요청에 잘 들어주고 수용해 주고 또 필요한 부분은 잘 알려준 나 자신도 조금 칭찬해 주고 싶다. ㅎㅎ


Photo by James X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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