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이주 638일 차)
토요일 아침은 고요하다. 일주일 동안 학교 생활에 지친 두 모녀가 모처럼 늦잠을 자는 날이다. 아내는 그렇다 해도, 딸내미는 주말이든 휴일이든 절대 늦잠을 자는 일이 없었는데, 이젠 고학년이 되기도 했고, 미국 학교 생활이 꽤나 피곤한지, 토요일만 되면 깨울 때까지 늦잠을 자는 날이 꽤나 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 집 반려견 디디가 새벽 댓바람부터 자신을 데리고 나가라고 낑낑대며 성화다. 상전이 따로 없다.
아침 일곱 시부터 반려견 산책을 나가 야외 배변까지 마치고 돌아와 간단히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토요일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간다. 주말엔 마트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일부 식재료가 일찍 동나기도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선다. 한국에서야 마트가 열시나 넘어야 문을 열지만, 여기서는 여덟 시만 되면 문을 연다. 서두르기만 하면 아침 열 시가 되기도 전에 장 보는 일까지 마치고 주말을 보낼 수 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반려견 산책을 마친 뒤 장을 보러 나섰다. 어제 늦게까지 아내와 즐겨보는 드라마를 보고 잤던 터라 조금 늦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반려견이 소변 실수 하기 전에 일어나서 산책과 실외 배변을 시켰다. 그러고 나니 벌써 마트가 문을 연 시간이다. 비몽사몽인 아이와 아내에게 마트에 다녀오겠노라 언질을 주고 서둘러 장을 보러 나섰다.
이젠 전업(?) 주부도 만 2년이 되어가니, 장을 보는 루틴이 거의 정해진다. 마트에서 물건을 담는 것이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매일 삼시세끼 요리를 하다 보면, 집에 어떤 재료가 떨어졌는지 굳이 냉장고를 열어보지 않아도 안다. 무의식으로 장을 보고 나면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사실 내 전화기는 더 이상 전화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주 기능은 유튜브 영상용 카메라, 유튜브 시청용 기기에 가깝다. 다른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 온 뒤 아는 사람이 많이 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세상은 더 이상 전화 통화를 통해 돌아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통화를 하는 때가 한 번도 없는 적이 더 많다. 그런데 전화가 울린다. 아내다.
‘이모가 돌아가셨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아내. 새벽에 처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단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다고 하는데, 연락을 자주 하고 살지는 못해서 소식을 잘 몰랐다. 결혼하기 전까지 아내는 이모와 꽤나 활발하게 왕래를 했었기에, 슬픔이 더욱 컸다. 나는 일단 잘 달래고 어서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가겠노라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야 결혼 전후로 두세 번 뵀던 것이 다 인데도,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미국에 이주해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이었다면 소식을 듣기 전에도 몇 번 찾아뵐 수도 있었을 거고, 설사 소식을 듣게 되면 바로 조문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멀디 먼 타국에 살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에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해도 물리적으로 어렵다. 당장 오늘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구해도 그 시간이 제한되고, 직항이 없는 곳에서 대도시를 경유해 한국에 가면 비행시간만 20시간에 가깝게 걸린다. 거기에 시차로 인해 날짜도 하루가 더해지기에,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뒤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기로 하는 경우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가기로 하는 그 결정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 생활 안에서도 생업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 서로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또 한국을 오고 가는 비행기표값도 비싸고, 체류비도 생각해야 한다.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라면 가고, 누구라면 못 가는,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이 이렇게 일생일대의 결정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두세 시간 (혹은 거리가 멀다면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이) 시간을 내어 조문하고 오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은 시간을 내어야 할 일, 쉽게 가겠노라 결정하기 어렵다.
못 간다 한들, 마음은 편하겠는가. 돈 몇 푼 때문에, 혹은 뭐 얼마나 바쁘다고, 그렇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의 경조사에 참석을 못하는가, 하며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이주인들의 공통적인 경험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그 반대 경험도 있을 거다. 조부모님 세대의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상가를 지키고 있다 보면, 미국 이모, 호주 고모 등 해외에 거주하시는 친척분들이 뒤늦게 상가를 찾아오시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여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신 걸 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이런 슬픈 소식을 들을 일이 점점 많아진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점점 많은 추억과 기억을 공유했던 이전 세대 사람들이 점차 희미해진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단 이유로 희미해지는 기억과 관계에 작별인사를 잘 고할 수 없다는 것이 맘을 무겁게 하는 것 같다.
아내는 소식 이후, 홀로 마음 깊이 자신의 소중한 관계, 추억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잠시의 틈만 생기면 눈물을 쏟는다. 부디 떠나신 이모님의 명복을 빌며, 아내도 어서 빨리 맘을 잘 추스르길 기도한다.
사진: Unsplash의Rhodi Lop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