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이주 641일 차)
지난주부터 아내와 나는 숨죽이고 있다.
혹시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는지, 혹시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을는지, 내내 노심초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걱정도 된다. 이렇게 신경을 안 써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작년에야 이제 겨우 미국 온 지 1년이니 상관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조건, 같은 환경이다. 직접 비교될 수밖에 없다. 혹시, 부모가 신경 쓰지 않아서, 피해 보면 어떡하지? 무슨 이야기냐고? 일제고사 이야기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초등학교 3~5학년 학생들이 PSSA라는 시험을 치른다. 더 높은 학년의 학생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주 단위에서 치르는 영어, 수학, 과학 등의 주요 과목 시험. 점수도 꽤나 구체적으로 나오는 시험이다. 그냥 시험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잘 느낌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고전적인 단어인 일제고사라는 단어를 썼다.
일제고사라니. 줄 세우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가치관을 가진 미국의 공교육에서 일제고사는 낯설다. 혹시라도 미국에서도 이젠 많이 바뀌어서, 어려서부터 줄 세우기를 통해 아이들을 공부로 옥죄고 있는 것인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구제척인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느끼기에도 이 시험은 학생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시험이 아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이 시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시험 관련해서 당부하는 이메일이나 유인물엔 아이패드를 꼭 충전해 오라는 말 이외에는 없다. (시험은 아이패드로 치러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시험은 교사들과 학교를 평가하고 교육 제도와 커리큘럼을 점검 보완하는 작업을 하는 시험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아니,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교사와 학교 평가와 보완에 사용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하겠다.
미국 부동산 앱을 통해 집을 구하다 보면, 집이 위치한 지역의 교육구, 배정받는 초중고 학교, 그리고 그들의 평점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그 통계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학교의 학생 구성 인종, 소득 수준, 교과별 학업 성취도, 진학률 등을 아주 구체적인 도표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교육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지표의 근거 중에 하나로 이 시험이 사용된다.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왜곡되고 악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주로 아시안 부모들 사이에서 이 시험을 위해 독하게 공부를 시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미국에선 진학에 있어 학생들의 다양한 성취도가 활용되고, 교과는 정말 일부에 불과하고, 엘리트 교육을 위해서는 단순 교과 성적이 아니라, 월반이나 과목 승급을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기에 일제고사의 성적은 그렇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낀다)
아이에게서 이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낄 수 없다. 일단 본인이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 학교 수업을 성실하게 참여한다면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시험으로 느껴진다. 5학년은 영어와 수학에 대해서만 시험을 치르는데, 영어는 사흘간, 수학은 이틀간 시험을 치른다. 물론 4지선다 시험문제도 있지만, 에세이를 작성하는 문제도 있다. 종합적으로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성적도 바로 나오지 않는다. 작년의 시험 성적은 4~5개월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그 성적에 무언가 좌지우지되지도 않는다.
물론 수박 겉핥기로 목적 뒤에 숨은 치열한 경쟁과 진학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대외 활동과 스포츠 등의 과외활동을 요구하는 미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이 일제고사의 중요성 자체가 한국의 그것과 동일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학업성취도가 전부라는 것을. 미국에서도 그렇게 접근한다면, 전반적인 교육의 시스템 안에서 겉돌게 될 뿐 아니라, 진학 전쟁에서도 성공적이기 어렵다.
아이에게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 시험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 위해 눈치만 엄청 보면서 일주일 반을 보냈다. 정작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눈치껏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이 위와 같다. 결국 평가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냐에 따라 그 과정과 결과가 180도 다르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한다 해도 선생님들과 학교들을 줄 세우기 하거나 경쟁 탈락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제도를 개선하고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 보다 나은 환경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 느껴진다.
물론 단편적으로 내가 느끼는 부분이기에 미국 공교육의 전체라 확언할 수 없다. 주 별로도 너무나 다르고, 교육구 별로도 천양지차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런 환경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