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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y 29. 2024

내가 사는 곳이 미국이 맞을까?

2024년 5월 17일(이주 658일 차)

사건 1.

얼마 전 요리 쇼츠를 올리시는 유튜버님의 영상을 보다가, 탕수육을 기가 막히게 만드시는 영상을 보고 따라 만들어 먹어보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해당 영상에 댓글을 남겼다.


‘미국에선 탕수육을 먹으려면 무조건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덕분에 맛있게 만들어 먹었어요. 레시피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의 댓글이었다. 사실이었다. 중화요릿집이 없는 우리 동네에서 짜장면이나 탕수육을 먹으려면 만들어 먹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 만들 수 있는 레시피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댓글에 대댓이 달렸다.


‘미국에서 탕수육 사 먹을 수 있어요’


사건 2.

한국 뉴스에 미국 악천후, 토네이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에서 이런 뉴스가 나면 대번에 지인으로부터 걱정하고 안위를 확인하는 메시지를 받곤 한다. 이번에 악천후나 토네이도 뉴스는 텍사스, 아이오와 등 다른 주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우리 지역은 괜찮아’


안심시키는 문자로 끝나는 이런 대화가 정말 많이 반복된다.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인 펜실베이니아 주는 대한민국의 영토보다 크다. 제1 도시인 필라델피아와 제2 도시인 피츠버그가 지역적으로 동부와 중서부로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묶일 정도다. 주의 동쪽 끝에 있는 제1 도시 필라델피아의 날씨는 우리 지역 뉴스엔 나오지도 않는다. 하물며 다른 주에 토네이도가 온다 해도 오히려 한국 뉴스를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가끔 의문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넓은 미국,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인문사회환경도 천양지차다.


기후와 지형 같은 자연환경의 차이가 무척 크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시절엔 겨울에도 눈을 본 적이 없다. 눈을 보려면 차로 네다섯 시간은 운전하고 가야 구경할 수 있었다. 그곳은 여름에도 덥지 않다. 비도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건조해서 산불이 잘 나고, 몇 년 전엔 그 산불로 인해 아포칼립스 분위기가 났을 정도였다. 지금 내가 사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는 3일에 한 번 꼴로 비가 오고 겨울엔 혹독하며 눈도 많이 온다. 하지만 토네이도와 같은 재해는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플로리다는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지만, 이따금씩 토네이도나 폭풍이 와서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하고, 텍사스는 건조한 날씨와 가혹한 여름 기온으로 고통스럽지만, 추위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1cm 눈이 쌓인 것으로 도심이 마비되고 전국 뉴스에 나올 정도니까.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인 인문사회 환경도 많이 다르다. 어느 산업이 발전했느냐에 따라 인구 구성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 가지고 있는 전통의 모양도 다르다.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국제화된 대도시 지역 같은 경우는 다인종 인구 구성에 미국 전통의 문화도 거의 사라졌다.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니다) 상업적인 목적의 기념일 챙기기 정도만 남아있을 뿐, 워낙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그런 미국식 기념일이 그런 날이다 이상의 의미를 잘 갖지 않는다. 하지만 대도시와 떨어진, 인구 구성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드웨스트나 남부 지역의 중소 도시의 외곽지역은 아직도 특정 기념일이 되면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곤 한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부활절이나 독립기념일이 되면 장난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인 이민자 사회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LA나 뉴욕, 그리고 최근 크게 팽창한 애틀랜타와 같이 한인 이민자 사회가 큰 지역과 같은 경우는 영어를 하지 않고도 사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각종 한국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즐비하고, 한인 이민자 사회의 문화가 별도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커뮤니티가 큰 편이다. 하지만 그보다 도시가 조금만 작아져도 한인 사회의 규모가 굉장히 작아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엔 대형 체인 한인 마트도 없고, 짜장면을 파는 중화요리 음식점도 없다. 가끔 방송에서 이민자 연예인, 일반인들의 이민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는 한인 이민자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도 많고, 한국인이 혼자인 곳에서 자랐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차이가 크다.


그러니 미국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이 누구에게는 사실이고, 누구에게는 거짓이다. 서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는 업타이트하고 고리타분한 미국 사람들의 허례허식에 놀란다는 사람들에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고, 동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미국 점원들이 늘 친절하고 스몰톡을 사랑해서 다소 불편하다는 말이 썩 이해가지 않는다. 동부와 서부로 그 분위기가 나뉜듯한 이런 사소한 차이는 동부 안에서도 동북부와 중서부, 서부에서도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소칼, 노칼에 따라 그 차이는 드러난다. 그러니 내가 경험하는 미국은 미국 전체를 커버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정말 큰 나라고, 이러한 지리적 특징은 많은 인문사회적 환경을 다르게 만든다. 한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문화적 차이를 만들고, 삶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니 단순히 미국에 산다는 말로 나의 이주 생활의 특징을 모두 설명할 수 없고,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에게 영향을 준다고 할 수도 없다.


처음 이곳으로 이주한 2년 전, 과거 십 년 전 유학 생활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쉽고 빠르게 정착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일부 연방법에 기초한 제도나 영어권 환경 등엔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지만, 각 주별로 상이한 여러 가지 제도나 인문 생활환경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환경도 많이 달랐고, 기후환경도 많이 달랐다. 내가 유학했던 캘리포니아보단 한국에 더 가까운 부분도 많았다. 미국은 이렇다는 말, 공감보단 불편함을 사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내가 유학하던 시기에 함께 미국에 와서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지역에만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주에서 주로, 도시에서 도시로 터전을 옮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미국도 사회가 많이 바뀌면서 뉴욕이나 LA, 혹은 뻔한 대도시들이 아닌, 더 다양한 도시나 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도 이주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문화충격들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를 통해 이런 이주 경험들을 접하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매우 자연스럽다.


나의 브런치스토리 제목이나, 책 제목, 유튜브 채널명, 영상 이름 등도 ‘미국 방구석 주부’, ‘와이프 따라 미국 온 남편’, ‘미국 정착 일기’ 등 모두 미국이라 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모두 바꾸려고 생각 중이다. 내가 지내고 있는 이 지역, 미국 중서부의 동쪽 끝,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에 붙어 있는, 세 개의 강이 합쳐져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미국 내 제철 산업이 융성하고, 일본과 한국의 제철 산업 중흥으로 쇠퇴했다가, 의료와 교육, 첨단 기술 산업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미국 러스트벨트의 유일한 재기에 성공한 중소도시. 독일계와 동유럽 이민자가 많고, 라틴계와 아시아계 이민자는 많지 않은, 아직도 전통적인 미국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도시의 외곽 주택가. 한인 마트도 없어서 중국 마트에서 파는 김치나 한국 음식에도 굉장히 감지덕지해야 하는 이곳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대표할 수 있는 제목과 이름을 고민 중이다. 이 도시의 이름이 LA나 뉴욕, 샌프란처럼 한국 사람들에게는 선명하거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아 고민이다. 그래도 내가 경험하는 이 스페셜한 삶을 관통할 수 있는 이름을 곧 지어 찾아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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