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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y 16. 2024

갑작스러운 소화불량과 미국의 약들

2024년 5월 9일(이주 650일 차)

코스트코에서 구매한 삼겹살이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손질을 하고 소분을 해서 넣어놨기에 오래 두고 먹을 수는 있었지만,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싫었다. 주부로서 식재료가 잘 순환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이 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일부를 꺼내 저녁으로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 삼겹살로 돼지불고기를 해야지.


냉동실에서 삼겹살을 꺼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왁스페이퍼를 사이에 깔아가며 소분을 해 놓았는데, 붙어있는 고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왁스페이퍼가 있으니 고기와 고기 사이를 딱딱 떨어뜨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낭패다. 늘 식사시간에 닥쳐서 준비를 하려다 보니, 해동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 하는 수 없이 한꺼번에 미지근한 물로 해동해서 이틀 식사 분량을 통째로 요리를 해야겠다.


이틀 식사 분량을 모두 불고기로 만들 수는 없다. 그렇게 큰 프라이팬도 없고, 미리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기엔 삼겹살은 기름이 너무 많다. 좋아. 반은 찌개를 끓이고, 반은 불고기를 만들자. 그래서 그동안 매번 어설프게 성공했던 삼겹살 고추장찌개와 매운 삼겹살 불고기를 만들기로 했다. 찌개와 불고기는 식사준비를 하는 주부 입장에서는 환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재료 손질 때는 손이 많이 가지만, 일단 불에 올리고 나면 스스로 익혀지기 때문에, 주방에서 너무 바쁘게 분주할 필요가 없다.


요리는 성공적이었다. 맛도 제법 있게 잘 되었고, 아내도 잘 먹어주었다. 물론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불고기며 찌개며 양껏 먹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식사를 거의 마쳐갈 때 즈음, 더부룩함이 느껴졌다. 아, 너무 많이 먹었구나. 고기 2인분을 모두 요리해선 안 됐었는데. 다 요리했다고 지금 다 먹지는 말았어야 하는데. 워낙 식사를 빠르게 하다 보니, 늘 천천히 소식을 해야겠다 다짐하면서도 과식을 하고 만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오늘 저녁은 고생 좀 하겠구나.


미국에서 체하거나 소화 관련해서 아플 땐 한국과는 전혀 다른 약을 먹어야 한다. 여기엔 베아제도, 겔포스도, 정로환도 없으니까. 대신 배가 아플 때 만병통치약처럼 먹는 약이 있다. ‘펩토 비스몰’이라 불리는 이 약은 분홍색 물약으로 파스맛이 나는 약이라 먹을 때 매우 고통스러운 편이다. 그 기능이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워서, 속이 쓰릴 때는 마치 겔포스처럼, 배탈이 나면 정로환처럼 먹곤 한다. 보통 정로환을 대체해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나 같은 경우는 배탈이 나기보다는 소화불량인 경우가 많아, 이 약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평소 소화불량 때 내가 즐겨 찾는 약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알카셀처’라는 약이다. 이 약은 발포 비타민처럼 물에 타서 먹는 약인데, 동그란 모양의 태블릿을 물에 넣으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면서 약제로 변한다. 약간의 탄산이 들어간 씁쓸한 맛의 물을 들이켜는데, 마치 위가 멈춘 것처럼 소화가 되지 않고 두통이 동반될 때 잘 듣는 편이다. 약에 제산제 성분과 함께 탄산, 아스피린이 들어가 있어서 두통을 동반한 소화불량에 효과적이다.


가슴 통증을 동반한 속 쓰림에는 한국 사람들도 알고 있는 ‘개비스콘’이 있다. 한국의 ‘개비스콘’과는 다르게 직접 씹어먹는 태블릿 형태의 약으로 여러 가지 맛으로 되어 있다. 물약 형태보다 더 빠르게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편이다. 증상이 많이 심하지 않을 때는 ‘텀즈’라는 약을 먹는다. 얼핏 보기에는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비타민 같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씹어먹는 태블릿 형태인데,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의 색이 약이 난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약들이 있고, 최근에는 하나의 약에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추가해 출시하기도 한다. ‘씨브이에스’나 ‘월그린스’와 같은 약국에 가면 ‘오버 더카운터’라고 해서 처방 없이 먹을 수 있는 브랜드가 수도 없이 많다. 마치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르듯 약을 고른다. 두통약만 수십 가지 브랜들에 수백 가지 기능약들이 있고, 복통도 마찬가지다.


이번 소화불량은 어떤 방법으로도 쉽게 편해지지 않는다. 한 3일 동안 위에 말한 세 가지 종류의 약을 모두 먹어봤지만, 그때만 조금 내려가는 듯하고, 그때만 두통이 가라앉는 듯하더니 다시 제자리다. 신기한 건 소파나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불편함을 모르더라는 것이다. 그러다 일어나면 다시 더부룩함에 고통이 찾아온다. 보다 못한 아내가 손을 따주고 등을 밟아주기도 했는데, 여전히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죽을 끓여 먹고 자극적인 음식을 자제했다. 그랬더니 4일째가 되어서야 속이 조금 편해졌다.


40대가 지나고는 회복이 느려진다는 것을 제법 체감한다.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과식, 폭식을 피해야겠단 생각을 다시 한다. 연초에 키토식 다이어트에 한번 꽂힌 뒤로는 기름진 음식을 피한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뭐든 과유불급. 적당히, 과하지 않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다. 꼭꼭 씹어먹는 것도 잊지 말고.


아프지 말자. 늘그막에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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