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0일 차, 제왕절개 수술 직후 회복실에서 처음으로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시도했다. 내가 딱히 유도하지도 않았는데, 아기가 꼼지락거리며 먹을 게 나올 만한 곳을 찾아간다. 예쁜 아기동물 같다. 마법처럼 신비롭고 특별한 순간이다. 출산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모유는 하나도 안 나온다. 그냥 직수 연습을 한 거라 쳤다. 그날 밤 내내 아기가 울었고, 나는 두 시간마다 모유수유 자세를 잡고 시도했다.
출산 1일 차 이른 아침, 아기가 자꾸 게워내고 몸이 뜨끈하다. 싱글벙글하며 아기 목욕법을 가르치러 온 간호사가 산소 포화도 측정을 해 보더니, 지금은 목욕시킬 때가 아니라며 정밀측정을 하러 데려갔다. 그 후에 아기가 폐 문제로 니큐 (NICU,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입원했다는 말을 의사에게 전해 들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이런저런 의학적인 질문을 하다가, “그럼 아기는 뭘 먹냐고” 묻는데 돌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니큐에서 검사 중이라 모유수유는 허용이 안 돼도, 간호사들이 분유를 챙겨 줄 거예요." 의사가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잠시 뒤, 간호조무사 두 명이 들어와 내 샤워를 도와주었다. 끄읍 끄읍 하며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들에게, 우리 아기가 지금 니큐에 가서 우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내 어깨를 도닥이며 “아기는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해 줬다. 그 말을 듣고 울컥해서 또 눈물이 차올랐다.
아기의 갑작스러운 니큐행.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출장 산후조리사를 불렀으면 일정이 완전히 꼬여서 이거 조정하느라 또 기운을 엄청 뺐을 것이다. ‘타지 육아 중 조리사 없이 신생아 돌보기’의 장점 중 하나를 발견했다. 까다롭고 복잡하게 타인과의 일정을 조정할 일이 없다는 것. 다행이면서 씁쓸하다.
오후에 면회가 가능하게 되어 일단 남편이 니큐에 내려가 머물러 있고, 나는 저녁 8시쯤에 휠체어를 타고 내려갔다. 조그만 우리 아기가 온갖 의료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누워 있었다. 눈물을 참고 아기에게 한국어로 산토끼 동요를 불러주며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출산 2일 차. 남편이 니큐에 가서 간병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병실에서 유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도 하고, 유축 기계를 써 봐도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한참 짜서 방울방울 나온 초유를, 바늘 없는 주사기에 담아서 니큐에 가져다줬다. 전날과 달리 이번엔 휠체어 없이 걸어서 갔다.
내가 니큐 간호사에게 모유를 전해 줄 때, 간호사가 “이거는 아기 다 먹이고 난 주사기인가요?” 하고 내게 물어봤다. 한 번 짤 때마다 2ml, 5ml 이 정도밖에 안 될 때가 많으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 민망했지만 "우리 아기 먹을 거예요." 하고 최대한 당당하게 말했다.
주사기에 모이는 초유 양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이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모았다. 내가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았고, 이걸 먹이면 아기 아픈 것이 더 빨리 나을 것 같았다.
출산 3일 차, 울혈이 심하게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딱딱하고 뜨겁다. 불이 붙은 것 같은 아픔이다. 담당 간호사에게 호소했더니, 모유수유 상담 전문 간호사 (lactation consultant nurse)를 불러 주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마사지를 해 주고, 나에게 얼음찜질 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마사지를 받았다는 시원함은 없었다.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내가 받은 것은 마사지라기보다는 그냥 뭉친 곳을 꾹꾹 눌러주는 등의 아주 최소한의 접촉이었다. 마사지를 받는 시간보다 설명을 듣는 시간이 더 길었다. 모유수유 상담 간호사의 결론은, 아기에게 열심히 물려야 뭉친 부분이 가라앉고 모유가 돈다는 것이었다. 아기가 니큐에 있는 나에게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꽉 막힌 것처럼 아프기만 하고 모유는 거의 안 나오니 너무도 답답하고 괴로웠다. 한국에서는 모유 마사지 같은 것도 전문적으로 받는다는데, 나는 내가 혼자 다 해야 한다. 마사지도 내가 하고, 얼음찜질도 간호사에게 얼음만 받아서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남편은 종일 니큐에 가 있어 바쁘다. 병실에는 나 혼자뿐이다. 외부의 도움과 보살핌이 너무 간절했다. 나 혼자 미로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내가 여러 이유를 종합해서 선택한 타지 출산이었어도, 이건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오후에 드디어 직접 모유수유가 가능하다고 해서 서둘러 니큐 병실로 내려갔다. 어제보다 아기 몸에 연결된 장비들이 적어져 안심이다. 직접 수유는 아기와 나 둘 다 서툴러서 좀 더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일단 물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날, 나는 저녁을 먹고 퇴원을 했다. 울혈은 여전히 심하지만, 집에 와서 유축기를 사용해 보니 드디어 초유가 30ml 정도 모이기 시작했다. 이젠 주사기 말고 플라스틱 저장통에 찰랑찰랑하게 초유를 담을 수 있다. 언젠가 이 90ml짜리 통을 꽉 채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출산 4일 차. 아이를 낳고 집에 왔는데, 조용한 집에 나 혼자 있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너무 바쁘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놓고 밤낮으로 유축을 했다. 어떻게든 모유를 먹이겠다는 집념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하루 종일 비몽사몽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니큐에 가 있던 남편과 교대하고, 오후부터는 내가 갔다. 내가 가져간 유축분들을 순식간에 다 먹고, 엄마가 직접 수유한 모유까지 먹은 후에도 아기는 액상분유 60ml 한 통을 다 비운다. 대단한 먹성을 가진 아기다. 요 깜찍한 먹보 아기를 두고 집에 가는 발걸음을 떼기가 너무 무겁다.
출산 5일 차, 니큐에 상주하는 모유수유 상담 간호사 리즈의 마사지 덕분에 울혈이 꽤 가라앉았다. 모유수유 요령도 배웠다. 유축량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
내가 아기를 꼼꼼하게 돌봐줄 수 없는 게 마음이 아프다. 니큐에서 잘 돌봐주고 있는 것에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의료진이 너무 바빠서 우리 아기만 신경 써 줄 수는 없으니 그게 걱정이다. 낮에는 남편과 내가 기저귀도 직접 갈고 아기에게 말도 걸어주지만, 밤에는 그럴 수 없어서 초조하다.
드디어 아기 진단명이 나왔다. 출산 당시에 폐에 있는 점액들이 다 빠지지 않아 산소수치가 낮았던 것으로 보이며, 제왕절개시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이다.
출산 6일 차, 아기가 퇴원하는 날이다. 니큐 간호사들이 나와 남편을 강의실에(!) 데려가서 신생아 안전 교육을 했다. 그들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집에 갈 때 카시트 확인하고 자동차 문을 닫아주는 그 순간까지도 강조했던 것은 SIDS (영아 돌연사 증후군) 예방 수칙이었다.
아기 등을 대고 똑바로 눕혀 재우기
크립에 아기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기 (베개, 이불, 인형, 범퍼 등 금지)
얼마나 세뇌교육을 했던지, 나는 그들이 했던 말을 달달 외울 지경이었다. 아기 안전에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라 집에 가서도 철저히 지켰다. 아기 목욕법과 기저귀 가는 법, 속싸개 싸는 법도 모두 니큐 간호사들로부터 전수받았다. 한국 조리원에서 해 주는 것들이라기에 좀 부러웠는데, 니큐 간호사들 덕분에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집에 가는 길, 운전하는 내내 남편이 상기된 목소리로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기분이 어때?"
"지금 자동차에 탔어."
"우리는 집에 가고 있는 거야."
이 어색하면서도 감격스러운 공기라니.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나 채워진 카시트를 본다. 지금 나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 중 하나에 출연 중이구나. 훗날 주마등이라는 걸 겪게 되면 이 장면도 분명 포함되지 않을까. 아기가 왔다. 새로운 장(章)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