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의 작은 도시에 산다. 여기서 출산하기로 결심한 순간, 산후조리원은 ‘내가 경험할 일 없는 미지의 것’이 되었다. 아기 돌보는 법을 조리원에서 배우고 조리원 동기도 만든다는데,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다. 다른 사람이 한식을 매끼 해주니, 그건 참 좋겠다.
거대한 한인사회가 있는 대도시에는 한국식 산후조리원이 있다고 들었다. 엘에이나 뉴욕 등이다. 하지만 내가 만일 그런 곳에 살았어도, 여전히 조리원은 못 갔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 때문이었다.
출산 당시에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대부분의 대면 서비스 시설이 문을 닫았다. 정 급한 사람은 비행기 삯을 대면서 출장 산후조리사를 부른단다. 썩 내키지 않았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할 때였다. 전염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
남편이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서 장을 봐 오는 것조차 불안한 시기였다. 하물며 공항을 비롯한 수많은 장소를 거쳐 도착할 조리사의 손에, 신생아를 맡길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리사가 자가 격리를 한다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거니와, 출장비용이 말도 못 하게 뛴다. 기본 비용만 해도 엄청난데, 불안감과 추가비용까지 감수하며 조리사를 초청할 수는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남편이 6주간 휴가를 내서 같이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급 출산휴가라, 남편이 그동안 모은 휴가와 병가 일수를 전부 다 몰아넣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산후 조리사 없이 어떻게든 남편과 둘이서 신생아를 돌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 개인이 산후조리원에 안 갔다고 해서, 내가 산후조리원 무용론에 힘을 싣는 것은 절대로 아님을 밝힌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산후조리원은 정말 유용한 시설이라고 생각한다. 육아 노동이 부모에게만 집중된 핵가족 시대에, 몇 주간 신생아를 전담해서 돌봐 주는 시설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도움이다.
물론 내가 조리원을 안 겪어 봤으니 환상을 가지고 장점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산후조리원이 불편해서 일찍 퇴소한 산모들의 이야기도 읽어 봤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한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신생아 육아는 두 사람이 24시간 달라붙어도 여유가 없어 허덕이고, 잠을 못 자 좀비가 되는 험난한 공동과제였다. 돌봄 인력이 오로지 남편과 나뿐인 상황인지라, 그 과제를 어떻게든 단둘이 해내고야 말았다.
양심상 이걸 남들에게도 하라고는 못 하겠다. 만약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음, 행운을 빈다.
제목에 ‘산후조리사 없는 산후조리’라고 썼지만, 사실 내가 산후조리란 걸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산후조리’의 사전적인 뜻은 ‘출산 후에 허약해진 몸의 기력을 회복하도록 보살피는 일’이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내가 한 건 그냥 밤낮 없는 신생아 돌보기였다. 내 제왕절개 상처가 붙고 회복된 이유는, 몸조리를 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는 내 몸이 회복되도록 보살피거나 쉰 기억이 없다. 내가 내 몸을 위해 한 일은, 산모용 영양제를 챙겨 먹은 것 정도다. (임신 준비 중, 임신 중, 출산 후에도 먹을 수 있는 3 in 1 영양제였다) 내 생각에 진정한 의미의 산후조리는, 신생아를 집중적으로 돌볼 인원만 최소 세 명은 확보해야 가능하다. 3교대 필수다. 두 명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주변에 돌봄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타지육아인들에게는 특히 조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리원이 없으면 출장 산후조리사를 추천한다. 신생아 시기에 산모가 잠깐이라도 쉬기 위해서는 단 한 사람의 도움도 절실하다.
또한 한 사람이 신생아를 돌보는 시간이 너무 길면 위험하다. 돌봄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스트레스를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양육자와 아기 모두에 좋지 않다. 해외에 사는데 한인 도우미를 못 구하면, 현지인 중에서 아기 돌보미를 하루에 두세 시간만이라도 고용하고 아기 보는 일에서 잠시라도 손을 떼기를 권한다. 그래야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다.
나는 산후 마사지나 모유 마사지 등, 임신과 출산 관련해서 그 어떤 마사지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건 꽤 아쉽다. 마사지에 어떤 극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기보단, 그 시간에 잠시나마 산모가 온전한 돌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온 힘을 다해 돌보다 보면, 나 자신도 누가 돌보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 한 번이라도 마사지를 받았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아마도 정신건강에 더 좋지 않았을까.
산후조리를 자칫 잘못하면 뼈 시림을 겪거나 만성 통증을 얻기도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의 경우는 출산 후 처음 2년 동안은 온몸의 부위가 돌아가며 매일 꾸준히 아팠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운동으로 다졌던 근육이 손실되고 체력도 떨어져 쉽게 지치곤 한다. 관절도 자주 아프다. 정신적인 부담 또한 생각보다 컸는지, 아기 첫돌 이후에는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내가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걸까?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출산하면 흔히 겪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일 수도 있다. 다만, 산후조리사가 있었다면 의지할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으니, 분명 체력 보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식을 먹고,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고, 한국어로 빠르게 대화할 수 있는 점도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았을 것이다. 성격이 잘 맞았다면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도 나눌 수 있어 즐거웠겠다.
운이 나빴다면 그 반대였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에 나와 성격이 상극인 사람이 왔다면, 거금을 내고 스트레스를 샀다는 원통함에 더 고통받았을 수도 있다. 정 넘치는 중장년 산후조리사의 선 넘는 오지랖에 울화통이 터져 갈등을 빚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겪어 보지 않은 일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나는 그저 남편과 둘이서 그 인고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음에 안도한다.
나의 산후조리 과정에서 남편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남편 덕분에 나는 3주 동안 분유수유, 아기 목욕, 요리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기저귀 갈기도 웬만하면 그가 다 했다.
그의 배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고, 아기 돌봄에 의욕을 더할 수 있었다. 내가 백 퍼센트 신뢰하는 나의 산후조리사, 나의 동지, 내 비빌 언덕. 그것은 바로 우리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