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 그리고 잔다. 신생아의 하루는 단순하다. 하지만 양육자인 내게는 쉽지 않은 일과였다. 아기 재우기도 참 고되긴 했지만, 수유만큼 내 속을 썩이진 못했다. 수유가 단연 1순위다. 배가 고프면 잠을 못 자니, 수유가 망하면 잠도 망한다. ‘그냥 먹이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그냥’이 마음대로 된 적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모유수유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모유양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유축을 했다. 수유 직후에 유축을 하면 양이 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먹일 때마다 직접수유, 분유수유, 유축을 차례대로 다 했다.
이 3종 세트는, 1회에 70분 정도 걸린다.
하루에 8회 실시했다.
나 왜 그랬을까.
하루에 쌓이는 설거지 거리를 생각해 보라. 밤하늘의 별처럼 빼곡히 도열한 유축기 부품, 젖병 부품들을.
하루에 식기세척기를 두세 번은 돌렸다. 건조 기능이 있어도, 부품이 뒤집혀 고인 물기에는 소용이 없다. 하나하나 물기를 털어내고 수건 위에 정렬하는 것도 일이다. 쉴 수가 없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갈 수 있다면 당장 유축기를 다 빼앗아서 버려 버리고 싶다. 그 시간에 잠이나 자라고 강력히 주장하겠다. 유축만 안 했어도 수유 시간이 반의 반으로 줄었다. 모유양이 적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그냥 적게 나오는 대로 먹이고, 분유로 배 불려 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서서히 단유하면 그만이다.
그야말로 몇 주간 잠을 거의 안 자며 모유에 매달렸다. 모유 없이는 아기 생명이 위태로울 상황에나 할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분유가 발명된 지 오래인 시대에 나는 왜 그런 중노동을 자원했을까.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비합리적이다.
잠을 못 자고 못 쉬는 것 외에도, 나에게는 모유수유 자체가 직접적인 고통이었다. 만약에 큰 통증 없이 모유수유가 가능했다면 “이거 할 만한데?” 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모유 로또 당첨자 명단에 없었다. 수술한 뱃가죽이 찢어지게 아픈데, 가슴 통증까지 더해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세 시간에 한 번, 모유가 꽉 차면 겨드랑이부터 뻐근하게 아파 온다. 배고픈 아기가 앙 하며 허겁지겁 물어오면 매번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참을 정도로 쓰리고 따갑다. 아기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것 같다. 이도 안 난 갓난아기였는데도 그랬다. 한 달 남짓한 모유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모유수유 기간에 내가 제일 싫어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다. 평소 건강식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닌다는 인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여성들에게 모유수유를 종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모유가 더욱 편하고, 영양가 있으며, 더 좋고, 무료니까요.”
2016년 3월에 이 인터뷰의 내용과, 이를 비판하는 논설 기사를 봤을 때 나는, ‘모유가 좋은 건 맞는데, 남자가 조금 선 넘었네.’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4년 후 여름, 이를 뿌득 뿌득 갈며 그 치의 발언을 곱씹는 내가 있었다. 모 재벌 회장의 평전 제목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봐, 해봤어?”
아, 회장님.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제이미 올리버 이 사람, 될 때까지 해 본 것 맞나고요.
어디서 본 다른 해외토픽 중에, 한 아빠가 아기에게 직접 젖을 먹이고 싶어서 본인 가슴 마사지도 매일 하고 수시로 젖을 물리는 등 갖가지 시도를 많이 했지만 신체구조상 결국 실패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 요리사도 기본적으로 그 정도 노오력쯤은 해 보고 모유수유의 편함에 대해 논의해 주는 거겠지?
와, 편하다고 했다고? 남의 일이 쉬워 보이긴 하지. 아마 젖병이 필요 없다는 의미로 추측된다. 그렇게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편하다”라고 한다는 건 성급한 결론이다. 그가 간과한 사실들이 꽤 많다. 일단, 모유수유자라고 해서 젖병을 아예 안 쓰는 건 아니다. 저장해 둔 모유는 젖병으로 먹인다.
모유를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항상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밖에서도 수유해야 하는데,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편하게 수유할 수 있는가? 이상한 편견과 비난을 피해 화장실에 쭈그려 수유하면 편할까?
수유시간이라 모유가 꽉 차서 아파 죽겠는데 아기가 그 자리에 없는 상황을 생각해 봤는가? 짜내서 버리거나, 유축해서 모유저장팩에 담아 무려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편한가? 저장팩은 뭐 어디서 공짜로 주는가?
무료라고? 유방울혈, 유두균열, 유구염, 유선염 등을 흔히 동반하는 모유수유를 과연 무료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병원비와 마사지 비용은 안 쳐 주는가? 혹시 그런 게 있는 줄은 알고나 있나?
"이렇게 편하고 좋은 모유를 왜 안 먹여?" 하는 사회적 오해와 압력이 얼마나 산모들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안다면 그런 경솔한 말은 못 했을 것이다. 모유가 그렇게 간편하기만 했으면 분유가 도대체 왜 발명되었을까? 그 과도한 모유 찬양 분위기 덕분에 나처럼 잠 못 자고 유축하고, 그래도 안 느는 모유양에 절망하는 산모들의 정신건강은 생각해 봤는가?
그가 건강식을 홍보하려는 취지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본인의 영역 밖의 음식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의 고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아이 넷 있는 여성 전문의가 모유에 대해 의학적으로 설명하며 모유수유가 편하다고 했어도 반발이 나올 판에, 남자요리사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는 어쩌자고 이런 망발을 하였는지. 그야말로 용기 천재 박수를 드린다. 할 말은 많았지만 나는 단유한 지 꽤 되어 분노가 많이 사그라져서. 여기까지만 하겠다.
수많은 여성들이 모유를 먹이기도, 먹이지 않기도 한다. 거기에는 제이미 올리버가 든 네 가지 이유를 훌쩍 넘는, 출산한 여성 인구수만큼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중 많은 이들은 동의할 것이다. 내 시간과 체력과 노력이 만들어낸 그 모유수유가,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이었는지. 얼마나 비싸고 까다로운 사치품 같은 것인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