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2주가 지났다. 모유수유가 여전히 괴롭다. 코로나 상황만 아니라면 진작 단유로 결론이 났을지 모른다. 코로나 상황이니까, 모유를 통해 아기의 면역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든다. 그런데 막연한 책임감만으로 버티기에 너무 어렵다. 어떤 보람도 성과도 찾을 수 없다.
모범생처럼 매일 3시간에 한 번씩 직접수유와 유축을 했건만, 안타깝게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결말은 없었다. 유축통에 모이는 모유양은 늘 고만고만했다. 아기의 니큐 입원 기간 동안 직수를 자주 못 해서 그런 걸까? 유축량이 40ml에서 전혀 늘지 않는다. 아기는 모유를 허겁지겁 먹다가, 금세 모자라다고 발버둥을 치며 운다. 그나마 곧이어 먹이는 분유 덕분에 아기가 매일 커진다. 분유 없는 시대에 태어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당시에 쓴 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모유수유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는 ‘슬픈 유두 증후군 (Sad Nipple Syndrome)’이라는 의학용어가 있다. 내가 지금 그 경우인 것 같다. 남들은 모유를 먹일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데 나는 아니다. 모유 먹는 아기 모습만 귀엽다. 그렇지만 그거 하나만 가지고 행복하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유수유에 대해서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한다. 모유를 먹는 우리 아기 모습은 너무 사랑스럽다. 하지만 모유가 새서 축축해지는 브라 패드를 차고 매일 자는 것, 서너 시간에 한 번씩 가슴이 아프고 땡땡해지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단유를 하기로 거의 마음을 굳힌 상태지만, 그래도 한 달까지는 모유수유를 하고 마무리하고 싶다."
기가 막힌다. 아니 지금 힘들어 죽겠다고 써 놨으면서, 한 달을 왜 채워? 당장 그만둬야지!
한국에서 퇴사할 때 "그래도 1년은 채워야지." 하던 버릇이 남아서 그랬나? 뭐든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을 때 당장 그만둘 용기를 갖추지 못했던 나는 20대 내내 엉뚱한 곳에서 힘 빼곤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다. 안쓰러울 지경이다. 숨이 턱 끝에 차도 무작정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던 분위기에서 자란 세대라서 그런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가 니큐에 있던 일주일, 간호사들이 아기를 돌봐줄 동안 나는 단유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편안한 환경에서 푹 쉬어야 했다. 머나먼 타지에서 남편 외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체력을 비축해 둬야 할 때에, 안 나오는 모유수유까지 하겠다고 덤볐던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수술 상처 회복을 위해서라도 8시간은 기본으로 쭉 자 줘야 했다. 내가 밤중에도 자다가 깨서 유축을 한 시간씩 하는 바람에, 초반부터 너무 지쳐버렸다.
모유가 건강에 좋은 건 나도 안다. 하지만 타지 육아는 체력전이다. 모유수유 때문에 몸이 상하면 안 된다. 내가 아프면 육아가 안 되는데, 아기 볼 사람이 없다. 모유가 수월하게 나오는 사람이라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산모가 치르는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
나에게 모유는 최고급 슈퍼카 수준의 비용이 드는 사치품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그 슈퍼카를 태워주려고, 없는 형편에 억지로 체력빚을 내며 아등바등 스스로를 소모했다. 그걸 안 태우면 아기가 위험에 빠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돼, 괜찮아."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굳이 초특급 슈퍼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웬만한 일반 중대형 자동차들도 안전하게 제 기능을 다 한다. 아기에게 꼭 최고급품만 줘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감당할 깜냥도 안 되는데 카푸어가 되면 곤란하다.
나처럼 아이가 니큐에 간다거나 하여 처음부터 직수가 불가능하고, 유축 양마저 적은 타지 육아 엄마라면, 하루라도 빨리 단유 해서 본인 몸을 아끼는 것을 권하고 싶다. 설령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모유수유 당사자가 단유를 원한다면 얼른 해야 하는 거다. 나는 단유를 응원한다.
내가 단유 생각을 너무 늦게 한 이유가, 병원 의료진의 강력한 모유수유 권유에 휩쓸려서 그런 면이 있다. 미국 병원에는 모유수유 권장을 넘어선 강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 병원에서 모유는 신앙 수준이었다. 흡연자의 모유가 분유보다는 낫다고 홍보할 정도다.
왜 그러는지는 이해한다. 모유의 성분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유수유 전도(?)에 성공할수록, 병원에서는 무료 분유 제공 비용도 아낄 수 있어 재정적으로도 유리할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그 분위기 때문인지 내가 유방울혈로 아무리 아픔을 호소해도, 의료진 중 그 누구도 '모유수유 중단'이나 '단유약 복용'이라는 선택지는 꺼내지도 않았다. 직접수유를 하면 해결된다는 원론적인 말 뿐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했지만, 모유수유만이 기본이고 정상이라는 전제부터가 누군가에게는 조금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그들에게는 산모의 고통 해소보다도 모유 수유 성공이 우선이었다. 때문에 나는 단유약의 존재조차 떠올릴 수 없었고,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만약 그때 단유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출산 당시의 나는 모유수유를 고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 방법들 중에 내가 고른 결과로 고생하는 것과, 그저 이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믿는 상황에서 헤매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같은 형태의 고생이라도,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깊은 절망과 무력감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 "언제든지 바로 그만둬도 된다"는 선택지와, 내가 쥘 수 있었던 통제권의 부재가 조금 아쉽다.
단유 할 결심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내 판단을 믿고 마음을 굳혔다. 결국 출산 한 달 만에 단유를 했다. 한국에서는 단유마사지라는 것을 받는다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그냥 서서히 수유 횟수를 줄이다가 끊는 방법을 썼다. "단유마사지 안 받으면 유방암 걸린다"는 협박 비슷한 말을 인터넷 어디에서 들어서 조금 겁먹었는데, 산부인과 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듣도 보도 못한 근거 없는 말"이라는 확인을 받아 안심했다.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다면 덜 고생했겠지만,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최선을 선택했다. 안 되는 모유수유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타지에서 고생한 그때의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애썼다. 수고 많았어, 라고.
주의사항: 글쓴이의 경험과 이 글의 방향이 모든 미국 병원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의학적인 부분은 반드시 본인의 의료진과 상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