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시 Aug 30. 2023

갓난아기가 이럴 줄은

신생아 실물 영접 후기

    니큐에서 퇴원한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차 안에서 잠든 아기를 바구니 카시트째로 집으로 들고 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깨워서 먹여야 하나? 그냥 자게 둬야 하나?


    우왕좌왕하는 부모와 달리, 아기는 한동안 새근새근 잘 잤다. 덕분에 우리는 집안을 치우고 아기가 깨서 울 때를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우리끼리만 아기를 돌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기가 빨리 깼으면 좋겠다. 아니, 조금 더 있다가 깼으면 좋겠다. 이 상반되는 감정은 뭐지? 시험 보는 기분이다.


    “왜앵! 왜앵!” 드디어 아기가 잠에서 깼다.


    “안녕. 장소가 바뀌어서 놀랐어? 여기가 우리 집이야.”


    배고파 우는 아기를 일단 먹이고 아기에게 집 구경을 시켜줬다. 남편이 집 안을 한 바퀴 돌며 영어로 안내하고, 다시 내가 넘겨받아 한국어로 투어를 이어갔다. 각자 서로의 모국어로 아기와 대화하기. 우리 집의 이 단순한 규칙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여기는 네 방이야. 앞으로 여기서 코 자는 거야."

    "여기는 부엌인데, 맛있는 맘마를 만드는 곳이야."


    투어 가이드 경험이 없는 나와 남편은 열정 하나로 온 집안을 누비며 설명했다. 당연히 아기에게선 별 반응이 없었지만, 아기를 온 마음으로 환영하는 우리의 뜻은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 이제야 정식으로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태어나서 신생아와 이렇게 가까이 살아 본 적은 처음이다. 나는 막내고, 남편은 한 살 터울 동생의 신생아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신생아의 특징이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몰랐던 부분이 참 많았다.


    신생아는 머리가 말랑하다. 부드러운 아기 정수리가 콩닥콩닥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별에서 날아온 귀여운 아기 외계인 같다. 머리로 숨 쉰다.


    아기가 머리를 한쪽으로만 돌려서 자면, 그 부분이 눌려서 납작해진다. 우리 아기도 머리가 눌린 콘헤드 시절 사진이 남아 있다. 한동안 반대쪽으로 눕혀 재우면 균형이 다시 맞춰진다. 세상에 이런 일이! 사람 머리 모양이 막 변하다니. 찰흙 인형인가? 신비로운 생명체다.


    우리 아기만 유독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생아는 생각보다 무표정이었다. 각종 매체에서 환하게 웃는 아기들만 보다가 이 근엄한 얼굴을 보니 적응이 안 됐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화났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얘가 그걸 쏙 닮았는지 표정이 매우 심각해 보인다. 억울한 표정 같기도 하다.


    그랬던 아기가 생후 36일 차에 모빌을 보고 처음 웃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모빌 뒤에 뛰어가 서서 웃음 동냥을 했다. 어쩌다 한두 번 얻어걸리는 미소가 너무 예뻤다. 반짝이는 보석과 황금보다도 빛나는 귀한 웃음이었다. 햇빛 같다.


    그 사랑스러운 갓난아기에게서 때로 노숙자 냄새가 난다(!). 진짜다. 남편이 매일 아기 목욕을 열심히 시키는데도 아기에게서 시큼한 내가 났다. 알고 보니 포동포동한 아기의 팔다리 살이 접히는 부분에 하얀 때가 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


    접히는 팔꿈치 안, 무릎 뒤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런 관절 부분은 이미 신경 써서 닦았다. 놀랍게도 신생아는 미쉐린 타이어 로고 캐릭터처럼 '살' 자체가 접힌다. 그걸 꼼꼼하게 하나하나 펴서 안쪽을 닦아야 했다. 그렇게 해도 쉰내가 조금씩 나는 날도 있다. 미쉐린 맨에게 그런 남모를 고충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의외로 신생아 피부에 뭐가 많이 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기 두피에 노란 딱지들이 내려앉는다. 한 달이 지나도 똑같다. 눈썹에도 딱지가 일자로 덕지덕지 붙었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 아기에게 흔한 지루성 피부염(infant seborrheic dermatitis; cradle cap)이라며, 베이비오일을 발라 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쇠똥이 앉았다'라고도 표현한다.


    이런 게 있을 줄 알았나. 심지어 아기 얼굴에 여드름까지 생기다 말다 한다. 놀람의 연속이다. 신생아 피부는 다 백옥같이 깨끗할 줄 알았지. 아기에게선 향긋한 아기 냄새만 날 줄 알았다. 매체에서 묘사하는 신생아와 실물의 괴리는 컸다. (하지만 그 어떤 아기도 우리 아기보다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산후 조리사가 있었으면 미리 얘기를 들었거나 금세 정답이 나왔을 일들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각종 상황들에 부딪쳐 가며 몸소 배웠다.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나씩 터득해 가는 성취감이 있었다.


    아기의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들은 이미 니큐 간호사들에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고. 이런 소소한 것들은 그때 그때 해결하면서 알아가도 되었다. 별 문제는 없었다.  

    

    진짜 문제는, 남편과 내가 좀비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었다.



이전 11화 단유 할 결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