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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시 Sep 17. 2023

안 한 것이 더 많은 신생아 육아

저거 다 했으면 쓰러져서 못 일어났다

    육아에 관한 말들 중 유독 신생아 시기에 ‘~해라’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신생아가 연약하여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기에 이런저런 권고사항이 많은 것으로 이해한다. 신생아라는 작고 신비한 존재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보호본능이 조언으로 표현되어 쌓인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조언들이 왜 나왔는지는 이해했으나,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상황에 적합한 맞춤형 ‘현모’가 되려면, 쏟아지는 정보들을 검증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흔하게 보고 들었던 조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아기는 항상 따뜻하게 해 주고 양말을 신겨야 한다

여름에 태어난 아기라 밖에서 따뜻하게 해 줄 이유가 없다. 이미 날씨가 뜨겁고 습하다.

집에서는 신생아 실내 적정 온도 (20~22°C)를 유지했다. 긴 시간 동안 속싸개에 싸여 지내는 아기는 괜찮으나, 산모는 추울 수 있으니 긴팔옷을 챙겨 입는다.


2. 아기 젖병과 손수건들은 매일 끓는 물에 열탕 소독을 해야 한다 

유리젖병 사용설명서에 나온 대로, 최초 사용 전에만 열탕소독을 했다.

21세기 수돗물의 위생 상태를 신뢰하기에 딱히 세균 번식 걱정은 없었다.

젖병은 식기세척기에, 손수건은 건조기에 돌리면 뜨거운 바람에 살균이 완료된다.


3. 아기 분유물은 따로 끓여서 줘야 한다

아기 분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액상으로만 먹였다. 따뜻하게 안 줘도 된다. 지나치게 차갑지만 않으면 된다.

물을 끓였다가, 식혔다가, 그걸로 분유를 탈 시간도 체력도 아까웠다.

아기 역시 가루분유보다 액상분유를 선호했고, 배앓이도 덜했다.

액상의 가격이 부담되긴 했지만, 조리원이나 산후조리사 비용이 안 나가는 대신 이런 걸로 호사를 누렸다.


4. 아기 손수건과 의류는 사자마자 세 번은 빨아야 한다

아주 부드럽다는 특정 자연 소재 손수건을 빨면 먼지가 많이 나와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내 비싼 노동이 추가되는 부드러움을 굳이 구입할 생각이 없어서, 나는 그 소재 손수건 말고 평범한 순면 손수건을 구입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적당히 부드럽다.

임신 때는 아기옷을 두세 번씩 빨아서 준비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남아돌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5. 아기 손수건과 의류를 빨고 나서 플라스틱 지퍼백에 넣어서 보관해야 한다

옷을 보관하는 서랍장 표면에 아기 옷이 닿아서 오염(?)될까 봐 나온 이야기 같은데, 서랍장이 아기에게 해를 끼칠 정도로 더럽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임신 시절 아기 옷을 넣기 전에 서랍장 안을 깨끗한 천으로 한번 닦은 것으로 해결했다.


6. 아기 빨래는 따로 하고 아기 전용 세제를 사용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정비소 등에서 일하며 옷에 기름때가 항상 묻거나, 연구 실험실에서 위험한 물질을 묻혀 오지 않는 한, 어른 빨래에 크게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어른과 아기 옷을 구분해서 빨래한 적이 없다.

아기 세제는 따로 안 썼으나, 예민한 피부를 위한 무향 친환경 액체 세제를 다 같이 사용했다.


7. 쪽쪽이나 치발기, 식기 등 아기 입이 닿는 것은 자외선 소독기에 넣어 살균해야 한다

내가 미국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봤을 때, 아기 식기는 세척기에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식기세척기에 기본적으로 스팀 살균 기능이 있으니, 자외선 소독기 사용이 흔하지 않다.

주위에서 자외선 소독기를 사용했다는 집이 없기 때문에, 나만 사용을 안 해서 느끼는 불안감은 없었다.

아기 입에 넣는 쪽쪽이 등은 먼지나 때가 많이 묻었을 때 가끔 씻어줘도 충분했다.


8. 아기 장난감은 항균 티슈로 닦거나 스프레이를 뿌려 소독해야 한다

코로나 상황이라 더 이런 말이 많았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잔류할 소독제 성분이  신경 쓰여, 화장실 청소할 때 외에는 항균제품 사용을 최소화다.

처음 포장을 뜯어서 아기에게 주기 직전이나, 표면에 아주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 이상 장난감을 따로 씻거나 소독한 적은 없다.

 



    조언 목록을 써 놓고 보니 주로 아기 주변의 청결에 관한 이야기다.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보호하는 차원이라 생각하고 읽으면 그럴듯하다. 아기를 위해서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항목에 공통점이 있다.


    엄마의 정신과 체력을 소모한다.


    당장 신생아 육아가 내 일이 되자, 더 이상 남 일 보듯 고개를 끄덕거릴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분석하고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21세기의 위생 상태에 맞는 방식인가? 이걸 안 했을 때 닥칠 위험성은 무엇인가?


    당시에 젖병은 하루 10병, 손수건은 30장 이상씩 썼다. 수십 개의 유축기 부품을 씻고 말리는 데만도 이미 탈진 상태다. 거기에 더해 매일 큰 솥 가득 물을 끓여 열탕을 한다고? 사람 잡을 일 있나, 절대 안 한다.


    요즘 시대에 열탕이나 소독 안 한다고 신생아의 건강이 위태로워지는 거였으면, 진작에 의사나 간호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의료진에게 그런 경고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들은 의학적 경고는 신생아에게 생후 6개월 전에 물을 주거나, 12개월 전에 꿀을 먹이면 위험하다는 것 등이었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불필요한 노동을 추가하지 말자. 그 조언들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한 귀로 흘리자고 다짐했다.


    안 그래도 잠 못 자고 바쁜 신생아 육아 생활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육아 인력이 제한된 타지 육아에서 부모의 체력 보전은 절대적이다. 안 해도 괜찮을 일에 낭비할 여력이 없다. 최대한 맨 정신을 지키며 아기를 돌봐야 하기에.




    나는, 신생아시기에 이렇게 살았던 엄마가 있다고 꼭 한 번 공개적으로 써보고 싶었다. 저런 걸 하나도 안 했다고.


    그리고 나는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도 아이를 돌보고 있다.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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