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으며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아이를 돌보는 전업 주부'가 그것이다.
이 직업의 주된 업무는 크게 보육, 요리, 청소로 나뉜다. '아이를 돌보는' 부분에서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는데, 보통은 아이가 어릴수록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고, 특히 신생아인 경우에 어렵다. 몸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잠을 못 자 체력이 바닥을 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세 가지 업무 모두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보육> 요리> 청소 순이다. 신생아를 잘 돌보는 것을 최우선으로 놓고, 건강한 재료로 요리하려 노력하되 힘들 땐 언제든 밖에서 포장해 와서 먹었다. 청소는,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한다. 청소는 안 했다.
나는 사실 아기를 낳기 전에도 청소에 큰 열정을 가진 적이 없다. 누구는 청소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잡생각과 스트레스가 날아간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청소하면 땀나고 몸이 힘들어서 더 짜증 나는 거 아니었나?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또 누구는 하루라도 진공청소기를 안 돌리고 물걸레질을 안 하면 찝찝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한다. 나는 다음 생애에나 그 기분을 경험해 볼까 싶다.
신생아 육아 당시 살던 우리 집은, 바닥 전체에 카펫이 붙은 전형적인 미국식 바닥이라 물걸레질이 필수가 아니었다. 그런 집은 카펫 위의 먼지나 머리카락도 잘 안 보여서, 가끔 로봇 청소기나 슬슬 돌리고 물건 정리만 대충 해 두면 깔끔해 보인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카펫 바닥에 어떻게 적응할지 난감했는데, 생각보다 내 성격에 잘 맞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냄새가 난다거나, 다 쓴 기저귀와 과자 봉지가 굴러다니는 건 아니다. 우리는 한국식으로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다닌다. 버석거리는 부스러기나 눈에 띄는 쓰레기가 보이면 그때그때 치우고,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지킬 정도의 상태를 유지한다.
다만 매일 치워도 부질없이 또 내려앉을 먼지들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뿐이다. 그 먼지들이 집단을 이뤄 눈에 거슬릴 만큼 커지면 그때서야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랬던 내가, 아기를 낳고 개과천선(?) 하여 온 집안을 쓸고 닦고 소독하게 되었다는 미담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럴 리가.
물론 청소에 느슨한 기분이 아주 편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신기하게도, 결혼 전 직장 생활하면서 자취할 때는 더 지저분하게 살아도 아무 생각 없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 약간 불편한 기분이 생겼다. 남편이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가 청소를 몇 번 하든지 신경을 안 쓰고, 정 지저분하다 싶은 날이 있으면 본인이 한다.
그런데도 남들처럼 매일 청소를 뽀득뽀득 안 한다고 나 혼자 괜히 찔리는 이유는 뭘까?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전업주부=현모양처’의 이미지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국가 대표 현모양처로 알려진 신사임당은 과연 직접 청소를 했을까? 그는 집안에 백 명이 넘는 노비를 거느린 높은 신분의 여성이었다. 그가 아예 ‘빗자루 질과 걸레질을 할 줄 몰랐다’에 한 표 던진다. 시가에 비해 친정 가문의 힘이 대단했기에, 시부모를 섬겨 노동하는 시집살이도 딱히 안 했다. 요리를 직접 할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현모양처와 동의어처럼 불리는 위인의 상황도 저러했는데, 대체 누가 ‘현모양처’ 이 네 글자에 원 뜻보다 더 무거운 청소의 책임과 죄책감까지 얹어 놓았는가. 난가? 그냥 나 혼자 사서 찔려하는 건가?
현모양처, 즉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는, 이처럼 매일 청소를 안 해도 획득할 수 있는 지위이며 자격이다. 신사임당이 증인이다. 나의 경우 산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어진 아내’의 길은 아직 요원하지만 (미안해요, 여보!), ‘현명한 어머니’는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런 맥락에서, 신생아 시기에 나는 청소에서 아예 손을 놨다. 그게 내 상황에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후순위에 속한 청소 때문에 1순위인 아기 볼 체력을 낭비할 수 없었다. 낮잠 자는 신생아가 깰 까봐 일반 청소기는 물론 로봇 청소기도 돌리지 않았다. 온갖 수를 다 써서 재워 놨는데, 그깟 청소 하나 한답시고 소음을 내서 깨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으면 잘 자는 아기도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확인되면 진공청소기를 주야장천 틀어놔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시도조차 안 했다.
내가 한 청소는 ‘돌돌이’라고 부르는 의류 먼지 제거 도구(Lint roller)로 아기가 있는 방의 카펫 바닥 먼지를 때때로 제거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사용이 쉽고 편하고, 더러워진 부분을 한 겹 떼서 버리면 그만이니 뒷정리도 필요 없다. 조용하고 부담 없는 청소 방법이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빼곡히 붙은 종이를 떼어내며 은근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걸 매일 하면 아기가 나중에 기어 다니며 따라 한다. 그냥 혼자 노는 줄 알았는데, 내가 돌돌이로 뭘 어떻게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현기증 나는 귀여움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 있으니, 돌돌이질을 따라 할 독자는 주의를 요한다.
아기가 신생아를 졸업해 나의 기운이 조금 회복되면서, 나는 자루 부분이 길게 늘어나는 바닥 청소용 돌돌이(Mega Extendable Lint Roller)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른 키에 맞게 늘어나서, 소음과 허리 통증 없이 대충 후딱 바닥 청소가 가능하다.
이것은 아기가 걸어 다닐 때 즈음에 아기가 열광하는 장난감이 된다. 하루 종일 밀고 다닌다. 아기 키에 맞게 줄여 주면 아기가 알아서 바닥 청소를 해 주는 마법이 펼쳐진다. (단, 흥미가 지속될 동안만.)
그러다가 로봇 청소기를 한 번 돌려주면, 한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겪는 거대한 문화충격을 1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호기심에 쫓아가다가 공포심에 쫓겨 돌아온다. 박진감 넘치는 서스펜스 아기 동영상이 수십 개씩 나온다.
아기의 로봇청소기 사랑은 꽤 오래간다. 청소를 하기 싫어도 로봇청소기를 하루에 두세 번씩 돌리는 날이 온다. 본격적인 '아기 주도 청소'의 시작이었다.
신생아 보육 시기를 한참 지난 지금도, 나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보육> 요리> 청소 에서 변함이 없다. 이 글을 쓰며 각각의 요소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봤다. 내게 있어 보육은 남에게 안 맡기고 내 손으로 하고 싶은 것, 요리는 성취감이 높은 작업임에 비해, 청소는 의무일 뿐이다.
어떤 직업인이든 그 직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잘하는 부분을 무진장 잘하면 그만이다. 그저 로봇청소기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발명한 그 위인을 축복하며 자손 대대로 번창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