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깨어 있을 준비 됐어요?" 아기의 니큐 퇴원길을 축하해 주던 간호사 애쉴리가 눈을 찡긋 하며 장난스럽게 건넨 말이다. 재치 있는 농담인 줄 알고 하하 웃었다. 지나고 보니 재치는 있었으되 농담은 아니었다.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우리는 밤새 깨어 있어야 했으니.
요정같이 새근새근 잘 잘 것처럼 생긴 갓난아기들은, 의외로 잘 못 잔다.
이유인즉슨, 첫째, 배고파서 오래 못 잔다. 겨우 잠들었다가도 세 시간이면 깨어나서 운다.
둘째, 아기가 자다가 갑자기 팔다리가 제멋대로 펄떡 움직여 제 풀에 놀라 깨기도 한다. 이 현상에 '모로반사'라는 이름까지 있다.
셋째, 이유 없이 앙앙 우느라 잠 못 드는 경우도 많다. 특히 늦은 오후에는 무슨 일인지 더 많이 짜증을 낸다. 먹여줘도, 안아줘도, 모빌을 틀어줘도, 쉬쉬 소리를 내도, 뭘 해줘도 안 통한다. 계속 운다. 희한하게도, 조용한 밤에 오히려 울고 못 자고, 집 안팎이 어수선한 낮에 비교적 잠을 더 안정적으로 잔다.
저녁에는 아기가 뭐가 불편하기에 그렇게 악을 쓰고 울어대는 걸까. 인터넷 커뮤니티 엄마들 사이에서 이걸 ‘마녀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우리 아기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다른 아기들도 밤이 가까워지면 이유 없이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꼭 아기들끼리 짠 것처럼. 얘들이 대체 어디서 비밀 회동을 가진 거지?
온갖 장기들이 움직이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엄마 뱃속의 느낌을 찾는 걸까. 그래서 조용하면 더 불안해하고 못 자나? 아기의 생각과 느낌이 너무나 궁금했다. 아기 말 통역기가 나오면 정말 마녀시간에 왜 우는지부터 묻고 싶다. 왜 분유 먹다가 갑자기 통곡하는지도 묻고 싶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뭐가 답답해서 우는 건지도. 내가 괜찮게 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다.
"내가 너를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돌보고 있어? 뭘 해도 다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문제 해결을 하고 있는 내가, 너에게 그래도 의지할 만한 언덕이야? 완벽한 환경을 갖춘 멋진 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낙제점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팔다리를 펄떡거리며 잠 못 이루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나는 사각형으로 된 천 속싸개를 사용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속싸개 사용법을 익히고, 곰인형을 아기 삼아 연습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아기를 김밥 싸듯이 야무지게 말아서 재웠다. 좁디좁은 엄마 뱃속에 꽉 끼어 있을 때 느낌인가? 사지를 못 움직이게 전신을 감싸 주니까 편안해하는 아기 모습이 신기했다.
내가 천 속싸개만 사용한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고, 사실 잘 몰라서 그랬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개량 속싸개들의 종류와 장단점을, 모로 반사가 다 지나간 후에 알았다. 본의 아니게 전통적인 방법으로만 아기를 싸매서 재우게 됐다.
이렇듯 타지 육아를 하면 육아 정보에 뒤처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검색을 하고, 책을 읽고, 동영상을 찾아봐도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 때면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과 가까이 살며 함께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고립된 환경이 새삼스레 서글퍼질 때면, '일이 잘 안 풀리는 게 전부 다 타지 육아 탓은 아니다,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타지이든 아니든, 육아는 기본적으로 힘든 거다. 게다가 첫 아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춰 놓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힘내자,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고향을 떠나 아이를 키우며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천 속싸개만 사용한 것에 큰 후회는 없다. 일단 나도 모르게 돈이 절약되었고(웃음), 천이든 개량이든 아기를 못 움직이게 꼭 감싸는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우리가 두 달 동안 속싸개를 꾸준히 사용했기에 그나마 아기가 잠을 좀 잤다. 고마운 육아용품이다.
다만 벨크로(찍찍이)가 붙은 스와들미 제품을 몰랐던 것은 좀 아쉽다. 벨크로로 딱 붙여 주었다면, 자다가 헐거워지는 속싸개를 계속 고쳐 줄 필요가 없었겠지. 걱정거리가 하나라도 줄었을 텐데. 그러나 기저귀 갈다가 스와들미 찍찍이 떼는 소리에 아기가 깨서 울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역시 완벽한 육아용품은 없구나.
속싸개 때문에 남편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아기가 완전히 감싸여야 안 깨고 편히 잔다고 생각해서 항상 팔까지 꽁꽁 싸매서 재웠다. 반면 '바람 불면 날아갈 세라' 염려되어 아기를 살살 다루는 우리 남편은, 아기가 답답할 까봐 슬그머니 아기 팔을 속싸개 밖으로 빼주곤 했다.
그걸 본 내 가슴은 열탕이 되어 부글부글 끓었다. 이를 악물고 조용히 내 의견을 피력했으나, 남편은 남편대로 아기를 위하는 마음에 팔을 빼주는 거라서 결국 각자 방식대로 하기로 합의를 봤다.
팔이 자유로워진 아기가 모로반사에 놀라 깨서 울 경우, 달래는 건 오로지 남편 몫이었다. 그래서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 후처리를 내가 다 감당해야 했으면 널뛰는 산후 호르몬으로 (그 당시) 시방 위험한 짐승이었던 나는 기어이 남편을 향해 입에서 불을 뿜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약에 남편이 아닌 우리 아빠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아기 답답하다며 속싸개 풀어주고 가서 내가 아기 울음을 다 감당해야 했으면? 도와줘서 감사하긴 한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한동안 말 못 하고 끙끙 앓다가, 기어이 못 참고 말해서 싸해질 분위기가 빤히 보인다. 그 후에 오는 후회와 죄책감도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육아하면 이건 편하다. 사공이 둘밖에 없으니 배가 목적지까지 가는데 큰 풍파가 없다. 내 확신대로 육아방법을 정하고 실천하기 쉬운 편이다. 남편은 양육 권리와 책임을 반씩 나눠가진 동등한 존재이므로, 서로 자유로운 의견 투척과 조율이 가능하다.
속싸개에서 팔 빼주는 이 부분은 의사와 상의해 본 결과, 신생아 극초기에는 내 방법이 맞았고, 생후 한 달이 넘어가면서는 남편이 맞았다. 결국 둘 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그걸 몰라서 괜히 속 태웠네. 혼자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