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 같은 것이 내 심장 부근에서 확 끓어올랐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꽤 자주 그랬고, 갈수록 심해졌다. 당장이라도 큰 소리로 폭발할 것 같았지만, 그 화를 날것 그대로 남편에게 쏟지는 못했다. 그러기가 너무 창피했다. 비이성적인 분노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어서다.
화낸 후에는 분명히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할 게 뻔했다. 사과를 한다 해도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남편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 시간 낭비, 감정 낭비다.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이유도 아니었다. 안다. 아는데,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출산 호르몬의 횡포인가. 그것이 날뛰어 감정 제어 장치가 고장 났나 보다.
내 화는 결국 나갈 곳을 못 찾아서 내 몸속 장기 곳곳에 파고들었던 걸까? 그래서 매일 통증이 온몸에서 순회공연을 했는지도 모른다. 몸도 마음도 아픈 날들이었다.
연애 3년, 결혼 6년 동안 남편과 나는 소리를 높이며 싸운 적이 없다. 대화로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고 조율하는데 꽤 자신이 있었다. 부부싸움 단골 소재로 유명한 '치약 짜는 방법 차이', 혹은 '뒤집어진 양말을 세탁기에 넣기' 등은 우리에게 다소 간단한 문제였다.
치약은 각자 따로 쓴다. 내가 치약을 머리부터 짜도, 가운데에 새 구멍을 내서 짜도, 배우자에게 피해를 끼칠 일이 없다. 남편이 세탁기에 양말을 뒤집어 넣는지 나는 모른다. 그의 양말 상태에 내가 평정을 잃을 이유가 없다. 처음부터 본인 빨래는 본인이 했고, 옷 정리도 각자 알아서 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혼 극초반 외에는 한 이불을 써 본 적이 없다. 추위를 타는 내가 이불을 둘둘 말고 자서 그렇다. 같은 침대에서 자도 이불은 따로 덮는다. 누구도 밤새 추위에 떨 일이 없다. 밥은 누가 꼭 해야 하고 청소는 누가 해야 한다며 서로 압박하지 않는다. 자율성이 보장되므로 집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거의 이런 식이니, 우리는 생활 습관을 맞춘다고 다투며 날을 세운 경험이 없다.
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시작한 이래, 내 삶에서 가장 안온한 9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착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우리 사이의 어떤 갈등이든, 논리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하면 화낼 일이 없다고.
상대방 탓을 하는 건 이성적이지 않다고도 여겼다. 굳이 화를 내며 탓하고 지적하는 건, 상대방이 내 입맛대로 변했으면 하는 욕심이 내 안에 있어서가 아닐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배우자의 행동을 바꾸려 들고 싶지 않아."
그 대단한 이해심은 아기가 태어나고 몇 주일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신생아 육아, 그것은, 각자 따로 해내며 갈등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신생아 돌보기는 빨래와 달랐다. 그것은 반드시 둘이 함께 해야 하고, 서로 부딪치며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게다가 (3년이 지난 지금은 100% 동의하지 않지만) 잘 해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완벽한 성과에 대한 압박까지 있는 공동 과제였다.
남편은 아기를 잘 보는 편이다. 집안일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이라 여기며 성실하게 한다. 그러나 종종 내 속에서는 그를 향해 화, 섭섭함, 서운함 등 온갖 부정적인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는 격한 감정이었다. 별로 큰 이유도 아니어서 더 당황스럽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갈아놓은 아기 기저귀 밴드가 완전히 부착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침에 보니 아기 옷과 침대가 축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어? 기저귀가 샜네?" 하며 이불보를 갈면 그만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어제 사 와서 입힌 옷은 목 부분과 다리 부분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이걸 왜 밤잠 잘 때 입힌단 말인가? 불만 사항이 겹겹이 쌓이자 화가 나서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나는 간밤에 일어난 사실을 남편에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다음에는 한 번 더 확인하자고 개선사항까지 제안했다. 그래도 내 화는 가라앉지 못하고 갈 곳을 몰라했다. 삐뚤빼뚤한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남편과 교대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자고 일어난 뒤 내 마음이 좀 풀렸다. 나는 남편에게 불퉁하게 대한 일이 마음에 걸려 사과했다. 남편은 내가 화가 났는지 알지도 못했다며, 내가 그냥 피곤해하는 줄 알았다 한다. 아마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남편도 피로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남편에게 화를 표현하지 않으려는 내 노력이 성공했거나.
남편과 나의 육아 성향이 다른 것도 내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남편은 깨질 것 같은 유리를 다루듯 아기를 조심스럽게 다뤘고, 나는 비교적 대범한 편이었다. 아기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의 원인을 안 뒤에도, 아기 몸에서 때때로 냄새가 났다. 남편이 아기 목욕을 시킬 때 아이를 다치게 할 까봐 너무 조심해서 그런 면도 있다. 아이를 간지럽히나 싶을 정도로 살살 만진다.
'아, 한 마디 하고 싶어서 미치겠다!'
나는 그 충동을 못 이겨서 남편한테 "아이를 좀 빡빡 씻겨도 괜찮잖아요."라고 말하고 또 후회했다. 그게 남편의 스타일인데, 왜 난 남편을 바꾸고 싶어 할까? 남편이 아기의 안전을 위해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데, 나는 왜 또 화가 났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사실 내가 너무 아기를 거침없이 다뤄서 아기가 여기저기 부딪치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래도 남편은 나한테 잔소리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만.
나는 정말 잔소리가 싫다. 내가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고, 내가 남에게 하는 것도 싫다. 나는 남편의 의견과 행동을 존중한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내가 남편의 행동을 지적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중대한 공동 과제인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고 신생아의 상태만 눈에 보인다. 계속 남편에게 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거기까지만 하면 괜찮은데, 그러고 나서 나는 죄책감을 갖는다. 평소라면 화가 가라앉고 나서 남편의 손을 잡고 이 복잡한 감정의 흐름에 대해 설명하며 푸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졌다. 시간이 나도, 둘 다 부족한 잠을 채우기만 급급했다. 우리에겐 서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남편과 지내며 이렇게까지 대화의 부족함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참 낯설고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공동업무를 하면 겪게 되는 일인 걸까. 그렇다기엔 결혼 전에 영어 학원에서 같이 동료로 일했을 때는 정말 괜찮았던 기억밖에 없다. 직업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영어강사의 핵심 업무는 수업 준비와 진행, 학부모 상담이다. 대부분 나 혼자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기에 같은 직장에서 일했어도 우리가 서로의 업무 성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일은 없었다. 당시 갓 사귀기 시작했던 남편과 내가 업무상 부딪칠 일은, 수업 방향이나 학생들의 태도, 성적 등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주로 쉬는 시간에 간식을 나눠먹고, 퇴근 후 고깃집에서 때늦은 식사를 하곤 했던 아기자기한 나날들이었다.
타지에서 남편과 신생아 육아를 하는 어려움은, 아마 캠퍼스 커플이 까다로운 조별과제를 했을 때 겪는 고초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 다른 조원들은 모두 휴학, 수강취소, 잠수 등의 사유로 부재중, 남은 인력은 오로지 두 연인뿐. 내가 실수하면 상대가 다 뒤집어쓴다. 상대가 할 일을 안 하면 내가 잠도 못 자고 죽어난다. 급기야 상대가 맡은 부분의 진행상황을 시간 단위로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한다. 각자 과제하며 도서관 데이트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상대의 세부사항에 대한 집착과 잔소리꾼의 면모를 발견하고야 마는데....... 과연 그들의 학점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단둘이 '신생아 육아' 조별과제를 완수한 우리의 학점은 몇 점쯤 될까? 신생아 졸업 시기쯤 아기가 무탈하고 안전했으니 알파벳은 일단 A로 못 박아 놓겠다. 거기에 0을 붙일지, -나 +를 붙일지는, 아내의 호르몬 폭풍 속에 듬직하게 버티며 과제를 성실히 이행한 남편의 선택에 따르기로 하겠다. 어쨌든 그 누구도 이탈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공동과제를 해낸 것에 큰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