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상자 벗어나기

by 양목수

누구를 사랑하려면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은 행동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계속 시도해도 부정적 결과만 얻게 되면 무기력에 빠진다. 후에 긍정심리학을 창시했던 마틴 셀리그만은 개를 대상을 한 전기충격 실험으로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이는 연구 실험을 했다. 개가 전기 충격을 받을 때 레버를 누르면 충격이 멈추는 걸 알게 된 개는 그런 충격을 다시 받으면 레버를 눌러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레버를 눌러도 계속 충격을 받은 개는 무기력을 학습하고 만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도 학업이나 취업, 사업에 계속 실패한 사람도 같은 문제에 빠지기 쉽다. 무기력을 학습하는 패턴을 이해할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문제 상자 속의 고양이

실험 목적은 달랐지만 학습된 무기력을 실험 심리실에서 직접 관찰한 적이 있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하지 않았던 나는 석사 과정에서 학부과목 몇을 선수과목으로 들어야 했다. 그중 하나는 학습 심리학이었다. 대다수 학습 심리학 교과서 저자들은 책의 앞부분에서 손다이크의 “문제상자” 실험을 다룬다. 김 모 교수가 학생들의 조별 문제상자 실험을 감독했다. 당시 국내 학자로서는 드물게 해외 학술지에 자주 논문을 올렸던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났다. 평소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는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차갑게 심리 실험실에 울렸다.


“체계적인 학습 심리 연구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손다이크(Edward Thorndike)이다. 이 수업에서 그가 약 100년 전에 실험한 것을 재현하고자 한다. 고양이가 들어갈 만한 상자 우리를 만들고 문을 달았다. 문 위에 끈을 달고 그 끈에 발판을 연결했다. 손다이크는 이 장치를 문제상자라고 명명했다. 실험자는 그 상자 바로 앞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생선을 놓아둔다. 고양이는 밖으로 나가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빗장에 연결된 끈을 물어 당기거나 끈에 달린 발판을 밟을 수 있다. 그러면 문은 열리고 그 고양이는 문 밖의 자유와 고기를 보상으로 먹을 수 있다.


탈출했던 고양이를 상자 속에 넣고 같은 시도를 반복하면, 고양이는 결국 문을 열리게 하는 동작과 탈출을 결합할 것이다. 생선과 자유는 이 결합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렇게 한 유기체가 주어진 자극에 대해 행동을 결합할 때 우리는 이를 학습이라 한다. 손다이크는 이를 “시행착오 학습”이라 불렀다. 자, 이제 문제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고양이가 볼 수 있게 문제상자 앞에 생선을 두라. 횟수 별로 도피 행동에 걸린 시간을 측정하기 바란다.”


대여섯 명씩 조별로 학생들은 교수 지시대로 교과서에 나온 실험을 재현해 보려 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상자에 갇힌 고양이들은 꿈쩍 하지 않았다. 생선을 우리 앞에 바짝 붙여도 이내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다. 그날 어느 실험조도 그날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김 교수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느라 애를 썼다. 동물 실험실이 없어 10여 개의 고양이 우리를 사회과학관 강의실 복도에 1주일가량 두자 심한 냄새가 퍼졌다. 타 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의 불평과 비난을 견디며 강행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김 교수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실험대상 고양이를 구입한 조교에게 고양이 구입경로를 물어 가능한 설명을 구성해봤다. 실험실 조교는 고양이들을 인근 시장에서 사 왔다. 상인은 고양이들이 고무 광주리 밖으로 기어 나오고자 할 때마다 파리채로 머리통을 때려 탈출 행동을 통제했을 것이다. 이 처벌을 반복하면 고양이의 움직이지 않는 행동이 강화된다. 김 교수나 초보 실험자들은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성급하게 고양이를 문제 상자에 넣고 끄집어내기를 반복했고, 그럴수록 고양이들은 더 좌절하고 움츠려 들었다. 결국 문제상자에 갇혔던 고양이 모두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시로 다양한 문제상자 속으로 내몰린다. 공부에서, 사업에서, 인간관계에서 하나를 벗어났다 싶으면 다른 것이 에워싸고 속박한다.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분명한 것은 상자 바깥이 있고, 그곳에는 상자를 벗어날 만한 보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의 시행착오 학습과 달리 우리는 해결 단계를 인지적으로 미리 구성해보고 행동할 수 있다. 실패 경험이 있으므로 오류를 제거하고 해답에 직진할 수도 있다. 이것을 통찰 학습이라 한다.


셀리그만은 무기력을 학습한 개들을 실험 상자로 다시 데려갔다. 전기자극이 오면 개를 끌어당겨 자극을 회피할 수 있게 했다. 회피 행동의 효과를 알게 되자 개들은 무기력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소음-회피 실험에서도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어떤 시도에도 소음을 통제하지 못해 좌절한 사람들에게 다음에는 통제 가능한 행동을 경험하는 기회를 주자 그들도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었다.


백조로 비상한 오리 새끼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도 편견의 문제상자가 여러 번 나온다. 다른 아기 오리보다 훨씬 늦게 알을 깨고 나왔다고 괴물 취급하는 상자가 있었다. 암탉은 어린 수놈 아기오리에게 ‘알을 못 낳으면 입 닥치고 가만있으라’ 했다. 고양이는 ‘그르렁대며 눈에서 빛을 쏘아 내지 못하면 다물고 가만있으라’고 억박질렀다. 미운 오리는 이런 문제상자에 갇혀 가만있지 않고 계속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얼어가는 겨울 연못에서도 발을 계속 움직임으로 무기력을 거부했다. 마침내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다른 백조들의 보고 마침내 백조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을 낳지 못해도 고양이 소리를 내지 못해도 오리는 오리이고 백조는 백조로서 존재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는 자기 기준과 다르면 상대를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교사나 상사, 심지어 부모일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들이 씌운 상자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 문제상자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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