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을 배려하는 사랑

by 양목수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면 상대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한 데 붙은 채로 있고 싶어 한다. 젊은 사람들은 커플 티를 맞추어 입고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한다. 사랑이 도망 못 가게 자물쇠 달린 사슬로 묶어 두려 한다. 시인 안도현의 시, "간격"은 인간관계에 적절한 간격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린다.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사람 관계임을 깨닫기 어렵다. 여느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산불이 여러 차례 지나간다.


기어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간격” 부분, 안도현)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부부는 이 간격 유지의 지혜를 어떻게 체득했는지 보여준다. 카터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나 전직으로 물러난 후에도 모든 사회 활동을 그의 부인 로잘린과 함께 했다. 로잘린은 국정 운영에 조언자로 백악관의 주요 회의에도 참여했고, 은퇴 후 카터 센터를 통한 사회 활동이나 외국 방문에도 함께 했다. 카터 재선 실패 후 고향인 조지아 플레인스로 돌아가서 단둘이 살아야 했을 때, 그들 부부는 서로에게 좀 더 개인적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차고를 개조해서 카터의 서재로 쓰고 아들이 있던 방을 아내 로잘린이 사용하면서 서로 일하는 동안 상대의 공간을 침범(?) 하지 않기로 했다.

지미 카터는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에서 은퇴 후 서로 건강한 간격을 유지하며 사는 생활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나는 일하면서 클래식 음악이나 컨트리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일하기를 좋아한다. 따로 일하는 우리 두 사람이 하루 중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식사 때나, 오후 늦게 운동을 할 때, 연못에서 고기를 잡아 저녁 식사 거리로 요리를 할 때 등이다. 오랜 경험에서 의견의 불일치도 가끔은 괜찮은 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부부 싸움이 몇 주 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한다 여전히 의견 차이를 보이고 때로는 꽤 심각하게 다투기도 하지만, 카터 부부는 이런 차이에 대해 예전처럼 집착하지 않는다 했다. 비교적 짧은 냉각기를 거친 후 두 사람은 의견 차이를 접어 두고 서로를 솔직하게 바라보며 문제를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했다.


카터는 75번째 결혼기념일을 즈음한 인터뷰에서 그들 부부의 결혼 생활이 “충만한 파트너십”이었다고 말했다. 서로의 독립된 인격과 견해를 존중할 때 파트너십이 가능하다. 상대의 공간을 배려할 때 파트너 간 하모니가 일어난다. 카터 부부는 1961년 지은 방 2개짜리 집에서 살아왔다. 충분한 심리적 간격에 큰 물리적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상대에게 배려해야 할 심리적 간격은 성격, 가치, 능력 등의 차이이다. 통계청 인구조사 자료에 의하면 가장 빈도 높은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로 거의 매년 약 45% 비율로 꼽혔다. 배우자나 파트너 간 관계에서 성격차이를 간과하면 불화가 생긴다. 며칠 전 연예 프로그램에서 인기 아나운서 출신 부부가 딸아이 가구를 사면서 성향 차이를 보이는 상황을 보였다. 남편은 크고 화려한 가구를, 아내는 작고 실용적인 것을 고르면서 서로 티격태격했다. 작은 가구가 아니라 가정의 주요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선호의 차이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평적이고 논리적인 사람과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 파트너인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갈등하기 쉽다. 즉흥적이고 계획성이 덜한 사람과 세밀하게 계획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준비과정부터 싸우기 쉽다. 주택구입이나 투자 등 주요한 재정 결정을 내릴 때는 세밀하고 자료 논리에 근거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정보가 적고 긴급히 판단해야 할 때 이런 성향은 빨리 잡아야 하는 기회를 놓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상대의 긍정적 기능을 수용하고 부정적 기능을 보완하려는 행동이 적정 간격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일찍이 플라톤은 이성, 욕구, 기개에 대한 개인차를 중요하게 인식했다. 카터 부부에서 보듯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노력을 절제하고 가르쳤다. 그는 절제를 수동적으로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닌, 심포니아와 하모니아를 이루는 노력이며 합의라고 봤다. 심포니아를 구성하는 음절에서 심(Sym)은 “함께”를, 포네(phone)는 “소리 혹은 울림”을 뜻한다. 중세 이후 발달된 심포니는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들로 하나의 질서에 따르는 음악 형식이다. 여러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가 어우러져 내는 울림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모니는 음색이 다른 목소리들을 동시에 내어 새로운 질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저음에서 강한 사람, 높은음에서 더 잘하는 사람이 상대를 배려하여 자기 음을 조절할 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와 서로 다름으로 얻는 심포니와 하모니의 기회를 함께 누리는 것이 지혜이다. 이 지혜는 대인관계의 적정 간격으로 얻는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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