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우리 경제를 통제하던 어렵던 시절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꽃을 받아 본 사연을 받고 있었다. 부산에서 전화를 건 어느 주부는 수줍게 그러나 반드시 그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는 어조로 말했다.
시골에서 살기 어려워 대도시로 나왔지만 우리는 마땅한 일을 얻지 못해 무척 고생했습니다. 힘들었던 어느 날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편이 갑자기 불쑥 장미 한 다발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요. 생뚱맞았지만 꽃다발을 준 남편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 뒤로 저희는 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있어요.
방송 시간의 제한 때문에 진행자가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는 게 아쉬웠다. 남편이 쥐어 준 꽃은 그녀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했고 결국 그들의 밥이 되었다.
용인시 수지 풍덕천동과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사이로 경부 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예전에는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좁은 지하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분당에서 수지 방향으로 차 한 대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지하굴을 나서면 양 옆 큰 길가에 꽃집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느 날부터 통로 한쪽에 붕어빵 수레에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세 살쯤 터울 져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곁에 붙어 서 있었다.
신호등 때문에 잠시 차들이 지하 굴 어귀에 멈춰 있을 때마다 두 아이는 명랑한 목소리로 “맛있는 붕어빵 먹어 보세요!”라고 차창을 향해 외쳤다. 어느 날 저녁, 여자아이는 붕어빵 고객에게 문득, “잠깐만 창문 내려보세요.”라고 하더니 장미 한 두 송이를 넣어 주었다. 그 가족이 옆에 있었던 비닐하우스 꽃집을 운영했는지 아니면, 그 꽃집에서 팔리지 않은 장미꽃 한 바구니를 얻어서 나눠 주었는지 모른다. ‘맛있는 붕어빵 먹어 보라’는 낭랑한 아이들 목소리에서 엄마를 돕고 있다는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치열하게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상대에게 꽃을 건넬 줄 아는 멋진 청년들이 되었을 것이다.
집에 가서 고소한 냄새나는 종이 봉지를 먼저 달려 나온 딸에게 주고 아내에게는 장미꽃을 건넸다. 영문도 모르는 아내는 “웬 꽃 이래?”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직장 그만두고 공부를 더할 시기와 사업을 시작했던 무렵, 아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꽃을 사 들고 갈 여력이 내게 적었다. 그런 날에는 문구점에서 꽃이 크게 그려진 카드를 사서 카드 여백에 손글씨를 채워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하곤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 날 아내의 작은 책꽂이 한편에 그 카드들이 아직도 꽂혀 있는 걸 봤다. 카드에 그려진 꽃들은 시들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서로에게 꽃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른을 위한 동화 쓴 “어린 왕자”는 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 생텍쥐페리는 그의 아내 콘수엘로를 자기를 자기 별에 남은 장미로, 자신을 장미에게 되돌아가야 하는 어린 왕자로 그렸다. 왕자 별에 씨앗 하나가 날아와 한 송이 장미꽃으로 피어났다. 장미가 원하는 대로 다해줬지만 꽃은 너무 까탈스러웠다. 힘들어하던 왕자는 결국 자기 별을 떠나고 만다. 지구별에 와서 한 정원에 5천 송이 장미가 있는 것을 보고 울었다. 자기 꽃은 저 밖에 없는 양 말했는데 한 정원에만 수천 송이가 있는 흔한 꽃일 뿐이라 생각하니 슬펐다. 사막에서 만난 여우는 말했다.
"다시 가서 장미꽃들을 봐. 네 꽃은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걸 알 수 있을 거야."
장미는 자기 몸에 난 네 개의 가시로 호랑이도 막을 수 있다며 허세를 부렸었다. 사실 꽃의 가시는 그가 약하고 예민하게 여기는 부분을 들키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별 뜻 없는 그런 말에 상처받은 왕자는 꽃의 향기를 맡을 줄도 몰랐다. 여우는 왕자에게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깨우쳐준다. 길들임은 상대를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행동이다. 상대가 단 하나의 나의 꽃이 되는 과정이다. 나도 아내의 작은 가시 품는 여유를 갖지 못해 자주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온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 길들여졌다.
우리 별에 두 개의 꽃씨가 차례로 날아와 새 식구가 되었다. 여느 집에서든 자식들은 꽃이다. 아이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매년 어버이날에 작은 손으로 색종이 카네이션을 만들어 준다. 그 종이꽃은 해가 갈수록 실재 카네이션 모양에 더 가까워진다. 뻔한 것이지만 아이가 그 꽃을 달아줄 때 부모 가슴에는 행복감이 차오른다. 아이들은 어린 왕자가 기러기들 떼를 타고 멀리 날아간 것처럼 언젠가는 부모를 떠난다. 시들지 않게 처리된 꽃이라며 카네이션 두 송이 묶음을 두고, 우리 아이들도 제 길 찾아갔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남긴 꽃은 십여 년이 지나도 생화 모습 그대로 우리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자식은 부모의 꽃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 해당한다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사춘기에는 아이가 하는 말마다 가시를 달고 있었다. 저게 누구 뱃속에서 나왔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매일같이 밥 먹어라 일어나라 수없이 말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몰라 당황할 때가 있었다. 물론 잊고 있었던 기념일 같은 날에 문득 꽃을 놓고 가는 이쁜 짓을 할 때도 있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부르고 사는지 모른다. 그리워서, 안쓰러워서, 미워서, 작은 소리로, 큰 소리로, 그렇게 부르며 산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했다. 내가 시인처럼 말한다면 “그 이름을 수없이 부르자 그는 내게 꽃이 되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그렇게 꽃이 되었다.